고양이를 키우며 포기하게 된 것들 -1-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의 또 하나의 취미는 식물 키우기였었다. 각종 열대식물과 커피나무, 블루베리, 각종 허브와 다육식물. 꽃이 피고 싱그러운 초록 잎, 겨울이 지나고 새순이 돋아나는 경이로움. 나는 자연이 주는 초록의 힘에 한껏 심취해 있었다. 각종 원예 정보를 찾아보고 좋다는 장비를 찾고 화분을 구입하며, 한때는 꿈이 화원을 차리는 것이기도 했다.
근데 왜 과거형이냐고?
처음으로 나를 이 길로 끌어들인, 그러니까 세 마리의 소악마들과의 동거를 만들어낸,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첫째 라온이는 참 똑똑한 고양이였다.
라온이는 아침에 나를 깨우려면 화분을 엎어야 된다는 걸 알았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내가 비몽사몽 침대에서 헤매고 있으면 창틀에 놓인 화분 앞에 다소곳이 앉아서는 꿀에 빠진 개미처럼 침대에 달라붙어있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었다. ‘안돼, 하면 혼나. 하지 마.”라는 잠이 덜 깬 나의 외침은 나와 정확히 눈을 마주치며 화문을 톡톡 치다가 냅따 후려쳐서 바닥으로 낙하를 시키는 라온이 덕분에 비명으로 바뀌기 일수였고. (물론 라온이는 ‘뭐야, 뭐가 불만인데, 깨워줬잖아’ 라며 태연하게 그루밍했었다) 덕분에 화분을 몇 개를 깼고 몇 개를 엎었으며 몇 종류의 식물을 저 멀리로 보냈는지.(자연의 신이 있다면 나는 아마 천벌을 받을 거다)
100여 개까지 늘어났던 화분은 고양이와 함께한 시간만큼 이사와 이사를 거듭하며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라온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에도 화분을 늘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정말… 다 큰 고양이로 인정받으려면 화분을 멋지게 해치우는 자격증이라도 따야 하는 걸까?
그렇게 식물 키우기에 대한 열망이 줄어들었고, 고양이가 세 마리가 되고 몇 번의 겨울이 지나는 동안 화분을 집안에 들여놨는데, 어라? 또또구 삼형제가 화분에 관심이 없다. 옳타구나 하고 예쁜 사계장미와 커피나무 묘목을 샀다. 어울리는 작은 화분도. 그리고 침대 머리맡 창가에 두고 애지중지 물을 주고 낙엽을 따주었다.
하지만 또또구 브라더스들이 누구던가.
엄마의 관심이 자기들 말고 다른 곳에 쏠리는 건 수염 하나만큼의 양도 못 참는 고양이들이 아니던가.
2019년 12월 26일. 피곤해서 침대에 누워있는데, 뭔가 향긋한 풀내음이 코를 간질인다. 뭐지 싶어서 머리 위를 본 순간. 너무 예쁘게 앉아있는 김도담씨. 움쮸쮸 뽀뽀하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잎에 덩그러니 물려 있는 장미 잎사귀 하나. (미안하다. 바로 전 글에서 쓴 사고 안치는 김도담씨는 취소하겠다.)
그렇다. 이 작은 악마들은 엄마의 관심을 받는 초록 뭉치들을 먹어 없애기로 마음먹은 것임이 틀림없던 것이다. 그 뒤로 잠시만 방심하면 잘근잘근, 아삭아삭, 콰직콰직. 너무나도 맛있게도 장미 잎을 씹어 대고 커피나무 잎을 씹어 댄다. 심지어 레몬나무까지. (레몬나무는 잎에서도 레몬향이 난다) 분명 싫은 게 분명하게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열심히 씹어댄다. 마치 츄르라도 잎에 발라놓은 거 마냥. 도담이만 그러냐고? 그럴 리가. 홍구는 커피나무가 주 타겟이고 노랑둥이 아토는 장미가 타겟이더라.
풍성하던 장미화분은 잎이라곤 온데간데없고, 가득 달려있던 꽃봉오리는 이미 기억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반질반질 커피 잎은 이미 너덜너덜 구멍투성이에 반토막.
얼씨구. 신나게 잎 물어뜯어 놓고서 저기 구석에서 잎을 토하고 있다.
확실해졌다. 고양이들은 사람 몰래 화분 부수기, 식물 씹어먹기 정규 의무교육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