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척하는 거야. 외롭지 않은 게 아니라.
내 이름은 김도담.
오늘은 나와 동거하는 집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냐.
해가 뜨면 집사가 손에서 놓지 못하는 네모난 접시가 빽빽 울기 시작해냥. 집사는 한참을 침대에서 뭉기적 대다가 빽빽 울어대는 접시를 쓰다듬어주면 접시가 조용해진다냐. 그리고는 일어나서 나랑 동생들한테 냠냐를 준다냐. 이번에 바꾼 냠냐 맛있다냥. 그리고 정신없이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마구 뽀뽀하고, 안아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준다냐. 그러고 나면 집사는 한동안 나가서 안 들어온다냐. 노란 동생은 그럴 때마다 집사가 어디 간다고 울면서 쫓아다니던데, 나는 그런 거에 일희일비하는 고양이가 아니 다냥. 나가도 반드시 돌아오는 집사다냥. 그러니까 도담이는 한잠 자고 오겠다냥.
도담이는 평소에도 외출 준비를 할 때 아토나 홍구처럼 쫓아다니는 편은 아니고 진득이 캣타워 위에 앉아서 돌아다니는 걸 쳐다보는 편이다. 그럼 나는 돌아다니다가 방앗간 들리는 참새처럼 한 번씩 쓰담쓰담, 뽀뽀, 쯉쯉 하고. 아토나 홍구는 적극적으로 가지 말라는 듯이 안아달라, (정말 안아달라고 사람 아이가 안아달라는 것처럼 앞발을 어깨에 걸쳐댄다) 봐달라, 칭얼대는 편인데, 도담이는 득도한 거마냥 캣타워 위에서 쳐다보고 있다. 하긴, 아침에 바쁜 건 나지. 너희들은 아니긴 하지. 그렇지만 가끔가다 칭얼대지 않는다고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까? 싶긴 하다.
근데 오늘은 집사가 안 들어온다냐. 원래 밖이 어두워지고 쫌만 기다리면 왔는데,, 이상하다냥. 밥도 다 먹었다냥. 집사 안 돌아오면 어쩌지. 불안하니까 냠냐가 들어있는 봉지를 뜯어야겠다냥.
기다리다가 잠들었다냥. 집사가 아직도 안왔다냥. 속이 미슥거린다냥.. 토할꺼다냥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유달리 야근하는 날에는 사고를 쳐 둔 빈도수가 높은데, 평소에는 건드리지도 않던 간식들을 다 뜯어놓는다거나, 모래 봉지를 뜯어둔다거나, 공복 구토를 해둔다거나 하는데, 월요일처럼 새벽 2시에 퇴근하고 상기 현장을 목격한다면…. 역시 빠른 퇴근은 고양이의 정신건강에도, 내 정신건강에도 이로운 것임이 틀림없다.
맨날 집사가 나가는 네모난 문에서 삑삑 소리가 난다냐! 집사가 왔나보다냥! 잔소리해야겠다냥!!
그렇지만 반가우니까 일단 반가움의 표시도 좀 하고, 밥그릇 비었다고 알려도 줘야 한다냐!
정시 퇴근할 때는 아토와 홍구만 문 앞에서 대기를 하는데, 야근하고 돌아오는 날은 꼭 도담이도 나와서 반겨주는데(반겨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왠지 밥그릇이 비었다고 호통치는 건 내 기분 탓이겠지.
집사가 온몸에 찬 공기를 두르고 들어와서는 아침처럼 정신없이 움직이면서 동생들이랑 나한테 냠냐도 주고 토해둔 것도 치우고 냠냠 봉지도 치운다냐. 화장실도 깨끗해졌다냥. 이제 시원하게 볼일을 봐야겠다냥.! 집사가 평소보다 늦게 들어와서 미안한지 맛있는 간식도 줬다냥. 간식도 좋고, 냠냐 준 것도 좋지만 집사가 집에 오래 있는 게 더 좋다냥. 그러니까 오늘은 집사한테 붙어서 잘꺼다냥. 내일은 일찍 들어와라냥.
왠지 야근하고 돌아온 날은 미안해서 더 안아주고 더 이뻐해 주고 간식도 주려고 하는 편인데, 월요일은 새벽 2시에 퇴근하고 화요일은 저녁 10시에 퇴근했더니 어째서인지 도담이가 옆에서 붙어서 자고 있더라. 역시 외롭지 않은 게 아니라 외롭지 않은 ‘척’ 하는 거였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반려인은 반려동물의 세상이고 신이라고. 단 하나의 존재. 다른 사람은 대체 불가능한. 그런 존재가 부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나는 감히 상상도 못 하겠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부재인 것이 외롭지 않을 리가. 그래서 있는 힘껏 외롭지 않은 ‘척’, 시크한 ‘척’ 하고 있지만, 나 사실은 외로워, 혼자 오래 두지 마 하고 은근한 눈빛으로, 은근슬쩍 몸을 기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였다.
누군가 그랬지. 고양이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 동물이라고. 그래서 키우기 편하다고. 저 말을 처음 한 사람은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 집을 비우고 돌아오면 밥도 마다하고 안아달라고 자길 봐달라고 그렇게 애처롭게 울어대며 쫓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은 못할 텐데 말이다. (물론, 너무 장기간 집을 비우면 모르는 ‘척’ 하긴 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정말 까먹은 거 아니지?)
손도 많이 가고 해줘야 할 것도 많은, 상상치도 못한 사고도 치는 고양이를 하나도 아니고 셋을 반려한다고 하면 다들 어떻게 키우냐, 힘들지 않냐, 너무 많다고, 앞서 걱정하고 걱정한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고 완성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어디 가서 누군가에게 오롯한 단 하나의 존재가 될 수 있겠나. 어느 누가 내가 없어졌다고 구토까지 하면서 날 기다려주겠나. (그렇지만 토는 안 했으면 좋겠다. 토해놓으면 들어가서 치우려고 하면 말라서 바닥에 붙..흠흠) 고양이를 키우기 전보다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게 더 많아서, 그리고 그 고양이가 셋이라서, 너무 완벽하고 다행이다. 하나도, 둘도 넷도 아닌 셋이라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