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세부부 Aug 19. 2020

세상엔 공짜는 없다.

반고흐 전시회 투자 이야기

10년 전, 사기를 당했다.

난 6천만 원을 날렸고 내 친구는 1억을 날렸다.

사기의 시발점은 창업이었다.

당시 난 결혼자금이 부족했고, 내 친구는 둘째가 막 나온 터라 돈이 필요했다.

월급 하나로 돈을 모으기에는 미래는 캄캄했다.


우린 신사역 근처 한 창투사(창업투자회사)에서 '반고흐 전시회'라는 곳에 투자했다.

회사 대표이사는 매월 수익금을 따박따박 준다고 했고

나중에는 원금도 보장해준다고, 즉, 돌려준다고 했다.

지금 이런 말을 들으면 '유사수신'이네. 사기잖아. 말하며 자리를 툭툭 털며

일어날 수 있는 연륜이 생겼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돈을 벌고 싶은 '욕망'만 넘쳐나는 애송이였고,

호구 중에 호구였다. 물론 내 친구도.

반고흐 전시회 투자 계획서 일부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안 것은 수익금을 세 달 째 받은 후였다.

휴가를 쓰고 그 창투사에 찾아가 보니 우리와 투자 계획서를 쓴 사장은 이미 잠적한 상태였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대표이사가 앉아 있었다. 딱 봐도 돈 받고 일하는 바지사장이었다.

우린 그에게 돈을 달라고 따져 물었고 그는 미리 수차례 연습했던 대본대로 

자신은 모른다고, 자기도 그 사장한테 사기당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내 돈 6천만 원이 날아갔는데 따져 물을 단 사람이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반고흐 전시회'에 투자사기를 당한 사람은 우리 말고도 8명이 더 있었다. 그들은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 있었으며 1억에서 2억을 투자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분은 선생님이었고 어떤 분은 자영업자였고 어떤 분은 우리처럼 직장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돈을 정말 돌려받을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자책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폭음이 늘었고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을 자는 내가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렸고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어느 날인가 사기당한 사람들이 모여 관할 경찰서에 사기 사건을 접수했는데 형사는 이렇게 말했다. 

10억 정도는 소액 사기라... 지금 100억대 사기도 많거든요. 아무튼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사기 사건 접수를 하면 곧바로 경찰이 사기꾼을 잡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경찰서도 인력부족이 심했다.


6천만 원.

매월 100만 원씩 저축해도 5년이 꼬박 걸리는 돈을, 

새벽까지 날을 새워가며 번 돈을, 

매월 수익금을 주고 1년 후에는 원금까지 돌려준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이렇게 허무하게 다 날려버리다니.

난 바보였고, 무지했고, 그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몇 개월 만에 광역수사대에서 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갔던 그 사기꾼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기당한 사람들은 오랜만에 모두 모여 열띤 토론을 했다.

의견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의견: 원금을 다 날려도 좋으니 그 사기꾼 놈을 감방에서 최대한 길게 썩게 한다.

두 번째 의견: 그놈이 죽도록 싫지만 탄원서를 작성해 일단 구치소에서 나오게 한 후 매월 돈을 벌어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갚게 한다.


얼마 후 한동안 보지 못했던 그 사기꾼이 사기당한 10명 앞에서 여자 친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둘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번만 봐주면 매월 몇 백만 원이라도 꼭 갚겠다고 이야기했다.

진심은 연기처럼 보였고 눈물은 악어의 눈물처럼 보였으나 

우린 한번 더 믿어보기로 하고(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원금을 되돌려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커서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 사기꾼이 구치소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탄원서를 작성해줬다.

며칠 후 사기꾼은 풀려났고 곧바로 태국으로 도주했다.


이후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창투사 건물 보증금과 유체동산들(집기류 등)을 압류했다.

압류 집행일에 맞춰 휴가를 쓴 난 집행관들이 TV, 책상, 소파 등에 빨간딱지들을 붙이는 과정을 

무덤덤하게 참관했고 이후 집기류들을 팔아 압류 요청한 사람들과 손해비용 크기에 따라 돈을 나눠가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사기꾼은 우리 돈으로 강남 룸살롱에서 한 달에 몇 천만 원씩 썼고 

사기당한 사람들 중에 50대 초반 형님은 이번 투자 실패로 인해 이혼당했다.


처음에 사기를 당했을 때는 그 사기꾼을 무지하게 욕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나도 49%는 잘못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투자에 무지했고

난 그들을 너무 믿었고

난 그들에게 내 욕망과 욕심을 너무 솔직하게 보여줬다.

사기꾼은 돈을 벌겠다는 욕망만 있는 호구들에게 들러붙어 거머리처럼 피를 빤다.

그때 알았다. 모르는 것과 의심하지 않은 것은 때론 큰 죄란 것을.


창투사 투자 사기는 나에게 두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 번째, 내 통장에서 나간 돈은 내 돈이 아니다.

빌린 돈, 주식에 들어간 돈, 부동산, 투자한 돈들 모두 내 통장에 다시 들어오기 전까지는 내 돈이 아니다. 

두 번째, 돈은 땀 흘려 벌어야 소중하게 대한다.

그 사기꾼들은 아니 불, 땀 한, 무리 당을 쓰는 전형적인 불한당 같은 놈들이었다.

그런데 나 또한 그 불한당처럼 땀 흘리지 않고 쉽게 돈을 별려고 하다가 사기를 당했다.


지금도 가끔 강남 신사역 근처가 생각난다.

프랜차이즈 창업, 부동산 투자, 광물 투자 등을 말하며 분주하게 커피숍을 돌아다는 양복 입은 젊은 사람들이. 

그들이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 굽신거리며 호구들의 피를 빨 타이밍을 재고 있는 날카로운 눈빛을.


그거 아는가? 

공무원, 엔지니어 직종 사람들이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호구 중에 호구라는 것을.


혹시 창업(프렌차이즈 양도/양수 포함)이나 투자를 하게 된다면 

자신의 돈을 지킬 지식과 경험과 있는지 먼저 확인해보길 바란다.


진짜 좋은 투자정보는 일부 특권층에게만 공유되고

진짜 좋은 상가나 아파트는 부동산에 종이가 붙기 전에 부동산 중개인이 사거나 그 중개인 지인들이 산다.

그런 정보가 나에게 들어왔다면 대박!이라고 외치기 전에 의심부터 해보시길~

세상엔 공짜는 없다.






이전 10화 에어컨, 살까? 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