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캉스와 인도 이야기
너무 시원하다~
그러게. 에어컨 있고 없고 가 이 정도였다니~
호캉스를 하겠다는 당신의 선택은 항상 옳다!
50일간의 긴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됐다.
집 안은 공기반 수분반에서 뜨거운 공기반 더 뜨거운 공기반으로 바꿨다.
아내는 짧은 연휴 동안 지방으로 휴가를 가기에는 돈과 시간과 많이 들 것 같아 호텔 2박을 예약했다.
서울도심은 코로나와 휴가철이 겹치면서 생각보다 한적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에어컨을 틀었다.
이 맛에 호텔 오는 거지.
에어컨 켜 놓고 두툼한 이불속에 들어가 책 읽다가 스르르~ 잠드는 거
난 이게 그렇게 좋더라고~ 행복감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커엉~ 커엉~
5월 초, 나와 아내의 회사 중간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28년 된 14평 아파트.
아이 없는 딩크족에게는 딱 맞는 크기였다.
인테리어도 새로 해 신혼부부 집 느낌이 났다(우린 제외).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에어컨을 살지 말지 고민했던 게.
올해 여름도 덥겠지?
선풍기 두 대로 버틸 수 있으려나?
어차피 조금 있으면 여름이 오는데 지금 에어컨을 살까?
그 시기에 세계여행할 때 만났던 부부 집에 초대를 받아 놀러 갔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거실 한구석에 장군처럼 떡하니 서 있는 에어컨 한 대가 보였다.
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나오는 에어컨 앞에 멍하니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너무 시원하다.
잠시라도 에어컨과 한 몸이 되고 싶다.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처럼 나도 에어컨에 달라붙어 매미가 되고 싶다.
맴~ 맴~ 맴~
요즘엔 무풍 에어컨이 인기라더니만 왜 그런지 알겠네. 소리도 안 나네~
그날 집주인 부부는 돈도 없는 것도 아닌데 하나 장만하라고 했고
우린 그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에어컨을 사기 위해 네이버, 쿠팡 등을 휘젓고 다녔다.
60~70만 원 정도면 벽걸이형 에어컨을 살 수 있겠네. 이걸로 할까?
그러나 나와 아내는 선뜻 사자!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에어컨이 좋고 시원한 것은 알겠는데...
우린 왜 여전히 망설이는 걸까?
일단 돈은 아니고.
전세라서? 나중에 설치했다가 제거하는데 귀찮아서?(조금 공감)
아니면 버틸만해서? 빙고!
에어컨을 대체할 만한 것들을 찾아봤다.
선풍기, 에어쿨러, 이동식 에어컨...
머리 아프다.
그냥. 더울 때마다 선풍기 하나씩 살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각자 시원하게 한잔씩 들이켰다.
그리고 결정!
지금 이대로 살자. 당신도 지금까지 줄곳 에어컨 없이 살아서 버틸만하다고 했고
나도 에어컨 없이 지금까지 살아서 이 정도는 괜찮아.
그래. 오빠. 우리가 지금까지 에어컨을 사지 않는 이유는 버틸만해서 그런 것 같아.
우리가 정말 필요한 거였다면 당장 샀을 거야.
아내 말이 맞다.
우린 몇 번 고민하다가 이거다 싶으면 직진하는 스타일이다.
걱정이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밍기적 거리는 것은 아직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배낭여행 때와 비교하는 것은 여행과 생활이라 무리가 있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우린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에어컨 이야기가 나오면 부록처럼 딸려 나오는 인도 이야기.
그날은 40도가 훌쩍 넘는 날씨였다.
노점에서 산 수박과 사탕수수를 쉴 새 없이 입에 넣어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 무더운 날씨였다.
예약한 숙소에는 에어컨 방과 에어쿨러 방(물을 넣고 돌리는 기계로 약간의 차가운 바람과 함께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에어컨 방이 훨씬 시원하다)이 있었다.
처음에는 한화 5천 원 더 주고 에어컨 방을 선택하려고 했는데
이전 도시에서 원숭이들이 전선 타고 놀다가(?) 전깃줄을 끊어버려서
비싸게 지불한 에어컨 방에서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했던 가슴 아픈 사연 때문에
우린 얼마간 망설였고
죽기밖에 더하겠냐! 는 심정으로 에어쿨러 방을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그건 최악의 악수였고
그날 우린 정말이지 그 방에서 산채로 마른오징어가 될 뻔했다.
한밤 중에 끝도 없는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를 뛰는 기분이었고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마음속으로 펑펑 울었던 날이었다.
오죽하면 동이 트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가게에
쳐들어가(?) 돈을 던지듯 주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을까!
고문 그 자체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땐 천원도 깎는 상황이라 5천 원이면 고민되는 액수였다.
이제는 그 불가마 같았던 그날 밤도 술 한잔 하면서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됐고
우린 지금 집에서 잠시 피신해 호캉스를 즐기고 있다.
에어컨 바람을 온몸으로 빵빵 맞으며 말이다.
내일은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치맥? 아니면 보쌈에 소주?
어떤 선택을 해도 우린 행복할 것이다.
왜? 이곳엔 에어컨은 있지만 주방과 세탁기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모든 집안일을 잠시동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된다.
Salud!(건배)
월세부부 블로그: https://blog.naver.com/chita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