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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세부부 Aug 14. 2020

우린 변했고, 변하지 않았다.

네이버-썸랩 인터뷰했던 날

여행 때 거의 매일 블로그를 썼다.

876일간 여행을 했는데 800여 개 글을 썼다면 얼마나 전투적으로 썼는지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쿠바에서는 여행 중에 인터넷이 안돼서 매일마다 윈도우 노트패드에 글을 썼고

베네수엘라에서는 노트북을 도둑맞아 한동안 PC방에서 글을 썼다.

그 PC방 주인이 내가 중국인인 줄 알고

돈을 낼 때마다 경멸했던 그 눈빛, 그 얼굴 지금도 생생하다

(제법 유창하게 스페인어를 해도 소용없었다. 차라리 중국어를 할 걸 그랬나?).


작년 봄, 네이버 썸랩(별별부부코너)과 운 좋게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메일로 질문, 답변을 주고받는 형식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그 글이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여행이 그리웠고,

또 다른 이유는 정말 여행이 그리웠고,

마지막 이유는 그때 답변했던 내용 중에 일부 내용을 브런치에 소개하고 싶었다.

혹여나 우리에 대해서 궁금해 할까봐~

참. 이럴 때는 과하게 친절하다.

참고로 이글 대표 사진은 여행 2주년 때 멕시코-메리다에서 처남이 찍어준 사진인데

카메라 기능이 별로였던 아이폰5로 참 잘 찍어줬다. 처남 고마워~


보통 부부가 세계여행을 하면 닉네임을 정하는데 우린 '월세부부'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상가에서 월세(임대료) 받는 부부!


그때 상가 한 칸 사고 여행 떠나려고 참... 독하게 살았다.

한 쌍의 쥐처럼 냉장고 파먹고, 걸어 다니고,

주말에 투잡하고... 그리고 드디어 상가 매매!

월급 이외에 임대료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욕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생긴 시기였다.

떠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2015년 1월에 한국을 떠났다.

미련 없이. 훨훨~ 잘가~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을 마치기 며칠 전,

태국에서 아내가 귀국해서 백수로 있으면 심심하다고 반복적으로 잔소리를 내 귀에 때려박아

밀린 숙제 하듯 잡코리에 정말 성의 없이, 자기소개서란에 '안랩(구 안철수연구소)에서 악성코드를 분석했음.'이라고 달랑 한 줄 쓰고 이력서를 올렸다. 그런데 운이 얼마나 좋았는지 한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고 귀국 한지 한 달 반 만에 취업이 돼버렸다.


3년 놀다가 취업하는 기분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으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 아무나 붙잡고 수십 번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 다시 월급 받을 수 있다! 만세~

(캐나다) 체리피킹 같은거 하지 않아도 된다!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반면에 블로그 이웃이나 지인들은 왜 다시 취업을 하냐고!

어서 빨리 한국에서 재충전하고 다시 여행을 떠나라고 했다.

대리만족이 끝나면 안 된다나? 뭐라나~

(우리가 무슨 여행 기계도 아니고~)


그러나 우린 떠날 당시 회사가 싫어서 도피성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직장생활)과 더 좋은 것(여행) 중에 더 좋은 것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일장춘몽 같은 여행이 끝났으니 우리가 직장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2017년 6월 귀국

귀국 후,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은

다들 예상했던 것처럼

그래서 얼마 들었어? 였어와 

어디가 가장 좋았어? 였다. 


첫 번째 질문은 숫자만 알려주면 되니까 답변이 쉬웠는데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묻는 질문에는 좀처럼 대답하기 어려웠다. 각 나라마다 언어, 문화, 음식 등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 라고 평가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전국 여행을 몇 년 간 한 사람에게 우리나라 중에 어느 지역이 가장 좋았어?라고 물어보면 곧바로 답변할 수 있겠는가?

대신, 다시 가고 싶은 나라는 몇 개 있긴 하다. 아이슬란드, 캐나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지금은 위험해서 갈 수 없지만 천연광물과 자연이 끝내주는 보석 같은 나라다)다.


세 번째로 많이 했던 질문은 여행 전, 후 무엇이 변화됐는지 였는데

그게 신기하게도 근본적으로, 외관으로는 바뀐 것은 전혀 없었다

(주름은 그냥 넘어가자!).


다만, 좀 더 겸손해졌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관대해졌고,

나를 알게 됐고,

우리 여행이 개인 신변잡기일 뿐 타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됐다.


네팔 랑탕 트레킹을 하다가 60대 중반 등산객 무리들에게 느닷없이 털린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여행을 오래 좀 했다고 하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녀 계획부터 시작해 한국 경제에 발전에 이바지하라는 내용을 엿가락처럼 쭉쭉 뽑아냈다.  

그때 알았다. 장기여행한 것이 다른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안 좋은 쪽으로다가~


돌이켜보면 결국 우리에게 여행은 나를 찾는 여행이었고,

내 안에 있는 나와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즐겁게 대화하는 시간이었고,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삶에서 큰 쉼표 같은 것이었다.

우린 변했고, 변하지 않았다.



원문: https://blog.naver.com/sum-lab/22149440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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