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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세부부 Aug 12. 2020

난 아직 회사 다니는 게 좋다.

나와 아내의 재택근무 이야기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아침 알람을 끄기 위해 아내와 난 동시에 일어난다.


8시 50분.


우리가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이다.

서로 아침인사를 하고 각자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그 사이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잠을 깬다.

아내는 윈도우 노트북으로 난 맥북으로 회사 네트워크에 접속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몇 개월 만에 전 세계를 홀라당, 

말 그대로 강제로 혁신시켜버렸다.

이게 바로 예전에 이건희 회장이 말했던 아내 빼고 모두 바꿔라! 같은 느낌인 건가?


세상은 변했고 우린 IT 분야에서 일하는 덕분에 강제로 '재택근무'를 맞보고 있다.

뭐랄까? 기존 회사를 다니다가 재택근무인 회사로 살짝 이직한 느낌이랄까?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다. 심지어 아내가 옆에서 모니터를 보며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까지도.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재택근무 전에도 딱히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었다. 

단순히 한 달 동안 일해야 하는 시간만 다 채우면 끝이다. 


그러니까 월요일에 4시간 일하다가 수, 목에 feel 받아서 10시간씩 일해도 되고 

금요일에 개인 사정이 있으면 오프해도 된다(휴가를 쓰지 않고 8시간 쉬는 개념)

만약 근무 시간이 모자라면? 

시간 단위로 휴가를 쓰거나 그것도 싫으면 월급에서 차감하면 된다.

반대로 근무 시간을 초과하면? 

반차 또는 오프(휴가를 쓰지 않고 남은 시간으로 하루를 쉼)를 해서 쉬면 된다.


재택근무 전에도 회사 복지제도가 좋다고,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는데 

재택근무를 하니 누군가 나에게 묻지도 않았는데 장점이 머릿속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1. 늦잠 잘 수 있다. 

즉, 출퇴근을 위해 시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아내의 경우는 출근 전에 화장까지 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2. 쓸 때 없는 회의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물론 꼭 필요한 회의는 화상으로 참여하지만 재택 이전보다 회의가 줄었다.

3.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 일의 능률이 오른다.

처음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으니까 대충 일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집중 잘된다.

4. 그 밖에 소소하게 식비, 교통비, 커피값 등을 절약할 수 있다.


단점도 있다.


1. 그래도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코로나 초반에는 일주일 전부를 재택 했었다. 

다행히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자유롭게 출근하는 상황이라 동료들을 만나면 그냥 반갑다.

2. 아내와 24시간을 전부 함께 한다.

세계여행 다닐 때 2년 반 동안 24시간 붙어 있었다. 그게 어떤 느낌이냐면...

그래 오늘도 수고했어. 잘 자~ 하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내가 잘 잤어? 하고, 

내일도, 모레도 계속 같은 장면이 무한 반복된다. 

서로 좀비처럼 죽지 않고 매일 붙어있다. 

둘 다 회사를 가지 않으니 붙어있는 게 당연한데 그게 처음에는 적응이 안된다.


덜커덩 거리는 야간 버스에서 배낭을 부여잡고 함께 몸을 흔들고, 

같이 산을 오르고, 같이 바다를 들어가고, 

같이 배낭을 메고 뛴다. 

이 정도면 군대 전우조는 명함도 못 내미는 요양원 동기급이다.


그런데 이번에 재택근무하면서 여행할 때 기분이 살짝 들었다.

서로 다시 좀비가 되어 가는 건가? 죽지도 않고? 

매일마다 아침 인사하고, 밥 먹고, 커피 먹고, 밥 먹고, 잘 자~하면서.

아내가 이 글을 읽으면 서운하겠지만 글은 솔직하게 써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 맞다. 이게 남자의 문제다. 

쓸데없는 것에 쓸데없이 솔직한 거. 

3.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새롭게 안 사실이 있다면 

아내가 동료, 상사, 외주직원들과 어떤 식으로 업무를 하는지 눈과 귀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몇 개월 지켜본 바로 내 결론은...

내가 아내 부서 후배 직원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나에게 살갑게 대해서 회사에서도 그런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겨울왕국 엘사보다 더 차갑고 냉철하다. 

가끔 직원과 통화하는 것을 듣다 보면 에어컨이 필요 없다. 방안에 냉기가 가득하다.

물론 이렇게 일을 해서 상사, 팀장이 좋아하는 것이겠지?!

예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팀장님이 나보고 '군인'같데요. 일단 미션을 던지면 어떻게든 해낸다고.

암. 그건 내가 자알~ 알지.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 겪으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오전 업무를 끝내면 살짝 노트북을 치우면 책상이 밥상이 된다.

간단히 반찬을 만들어서 서로 옆에 앉아 대화를 하며 가끔 벽을 보며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나면 집 근처 산책하고 들어와 침대에서 20~30분 정도 누워 있다가 오후 업무를 시작한다.

오후 3~4시 사이에 선물 받은 원두를 갈아 커피 한잔을 마신다.

정확하게 6시가 되면 노트북을 닫고 서로에게 오늘도 수고했습니다~라고 말한 후 업무를 마친다.

책상이자 밥상

요즘 부쩍 느끼는 거지만 재택근무하면서 회사에서 따박따박 월급 받은 것이 매우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살짝 미안해지기도 한다.

아무튼, 난 아직 회사 다니는 게 좋다. 

하루하루 배울 것도 있고.



월세부부 블로그: https://blog.naver.com/chita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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