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세부부 Aug 14. 2020

사실, 나도 다른 팀장들과 다르지 않다.

내가 겪었던 팀장 이야기

미겔은 다른 리더들과 좀 다른 것 같아요.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영어 닉네임을 쓴다. 

입사 전, 닉네임을 알려달라고 해서 코코(애니메이션) 주인공 '미겔'이 떠올라 그 이름으로 정했다. 엄밀히 말하면 영어로는 미구엘이었지만 중남미와 스페인어를 좋아해 미겔을 사용하기로 했다. 코코는 멕시코 배경이었는데 멕시코 여행을 4개월 정도 했을 때 봤던 도시들이 나와 아내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화면에 들어갈 듯 몰입했고 난 끝내 눈물 흘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애니메이션을 '아~ 뼈다귀 나오는 영화!라고 기억하고 있어 좀 놀라긴 했다.


현재 난 실무를 병행하는 파트장이다.

입사하고 한동안은 모두 동료라 격 없이 지냈다. 그러나 직장생활이 마냥 즐겁고 편할 수는 없는 법.

내가 몸 담은 실은 점점 커졌고 결국 조직장이 업무 효율성과 기타 등등의 이유로 각 파트 리더, 

즉 파트장을 지정했다. 실 내에 몇 명이 파트장이 됐고 나 또한 파트장이 됐다.


내가 안됐으면 하는 솔직한 마음이 있었지만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 중에 내가 가장 나이가 제일 많았고, 

그래. 그거다! 

내가 가장 나이가 제일 많았고, 

팀장, 리더 경험도 가장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돼버렸다.

난 조용히 실무만 하면서 하루하루 배우며 살아가고 싶었는데...

인생은, 세상은, 회사는 대부분은 내 생각과 반대로 움직인다.


난 사람 '관리'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당연히 영어로 살짝 바꾼 매니지먼트라는 단어도 싫어한다.

차라리 지원, 서포트(support)라는 단어가 훨씬 어감이 좋다.

누가 누굴 관리하는가? 

어차피 회사 밖으로 나가면 명함은 한낱 종이 쪼가리일 뿐인데...


10년 전, 30명이 넘는 팀에 팀장을 한 적이 있다. 

목표는 명확했다.

팀장으로 인정받으며 멋진 팀을 만들고 싶다! 였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그런 목표가 팀을 이끄는데 커다란 ''이 된다는 것을.


회의는 많았고 내가 상대할 사람들은 더 많았다.

팀에는 팀원들이 있었고 

옆으로는 유관 부서들의 팀장들이 있었으며 위에는 실장이 있었다.

이해관계는 복잡했고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파벌이 생겼다.

경험 있는 팀장이라면, 노련한 팀장이라면

곪아있는 부분을 빠르게 짜고 도려냈을 텐데 난 자신감만 앞선 경험 없는 팀장일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인기관리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맞는 것은 맞다고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난 욕먹기가 두려웠고 칭찬에 목말라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팀원들에게 

일관성 없는 팀장,

신중하지 못한 팀장,

소통이 부족한 팀장이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억울했다. 난 지금껏 팀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난 내 고민을 눈에 보이는 팀원들에게 종종 털어놨다

덕분에 난 신뢰할 수 없는 팀장이라는 딱지까지 추가하게 됐다.


잘하고 싶었다. 정말 팀장이라는 직책을 보란 듯이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뭐랄까? 춤을 잘 추고 싶어서 열심히 움직였는데 계속해서 스탭이 꼬였달까?


한 번은 해외 출장 때 연구소장과 술을 한잔하며 팀장 자리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며

어떻게 팀을 이끌어야 하는지 조언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연구소장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건 나도 몰라. 그건 이 팀장이 방법을 찾아야지. 

자기 만의 스타일로 말이야.


뭔가 근사한 조언이 나올 줄 기대했던 나로는 허탈했다.

모른다니. 내 스타일로 방법을 찾으라니!

2년 만에 팀장을 그만두고 비장한 각오로 실장에게 사직서를 내밀었다.

실장은 내 얼굴을 잠시 동안 보다가 한번 씨익~ 웃더니 사직서를 곧바로 파쇄기에 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칼국수 면발처럼 길게 잘린 사직서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거 보여? 

사직서 쓰려면 바탕화면에 최소한 1년 정도는 깔아놔야지! 

이 팀장은 아직 때가 아냐.

그리고 지금 몸 아픈데 있어? 아뇨.

그럼 뭐가 문제야?

아니 제가 팀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것 같아서요.

하하. 무슨 개뼛다귀 같은 소리야. 그 정도면 잘한 거야.

무슨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팀장 된 줄 아나 보네.


생각해보니 실장 말이 맞았다.

그래. 난 자신감만 충분했고 감정이 앞섰던 어설픈 팀장이었어.

팀장으로 부족함 투성이었는데 무슨 생각으로 멋진 팀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지?

돌이켜보면 그건 나에게 '꿈'같은 목표였다.


그 후, 2년 반 세계여행을 하고 귀국 후 다른 회사에 입사해 팀장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욕먹을 각오가 되어 있었고,

희생을 위해 착한 사람보다는 나쁜 사람이 될 각오가 되어 있었고,

나에게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실망 줄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아무리 중요한 회사일도 지구를 멸망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달았다.


라이언. 사실 나도 다른 팀장들과 다르지 않아요.

다만, 이전에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나일 뿐이에요.


혹시 지금 팀장인데 팀원들 때문에 탈모 또는 불면증 상태인가?

내 노하우 일부를 부록으로 써 놓았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필요 없으면 버리시고.


----------------------------------------- 절취선 ----------------------------------------------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혼밥 하자(괜찮으면 세 번도 O.K).

팀장이라면 외로운 게 훨씬 낫다. 

쓸데없이 자신의 고민을 팀원들에게 털어놓으면 

하한가 맞는 주식처럼 신뢰가 뚝뚝 떨어진다.

입 닫고 외로운 늑대처럼 홀로 지내자. 메신저도 필요한 말만.

팀원을 그냥! 믿어라.

사람들은 정확하다. 

믿는 만큼'' 일한다. 진짜다. 머릿속으로 계산하지 말자. 

그들 머릿속에도 계산기가 있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의 경험과 잣대로 성급하게 팀원들의 능력을 '판단'하지 말자.

그럴 시간 있으면 각 팀원들이 긍정적인 행동 할 수 있는 부스터 버튼을 찾자. 

용인술은 아는 만큼 보인다.

결국 당신 문제다.

팀장. 힘든 게 정상이다.

누가 팀장 하라고 등 떠민 적 없다.

억울하면 당장 오늘이라도 팀장에서 내려오면 된다.

다음날부터 쾌변이 나오고 탈모가 없어질 것이다.

선 넘지 말자.

팀원 지적할 때 제발~ 업무만 지적하자. 

태도나 가치관을 말하면 그건... 선을 넘은 거다.

부모도, 자기 자신도 알지만 지금까지 못 바꾼 인생이다. 

그걸 당신이 할 수 있다고? 꿈도 꾸지 말자.

똑똑하기보다는 차라리 친절하자.

아는 척 그만하자. 당신이 똑똑한 거,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인 거 다 안다.

괜히 바쁘게 혀만 놀리면 결국 니 똥 굵다가 결론이 된다.

그럴 시간에 자신의 감정을 친절하게 전달하는 연습이나 열 번 더 하자.


----------------------------------------- 여기까지 ----------------------------------------------



월세부부 블로그: https://blog.naver.com/chita000 

이전 07화 난 아직 회사 다니는 게 좋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