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썸랩 인터뷰했던 날
여행 때 거의 매일 블로그를 썼다.
876일간 여행을 했는데 800여 개 글을 썼다면 얼마나 전투적으로 썼는지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쿠바에서는 여행 중에 인터넷이 안돼서 매일마다 윈도우 노트패드에 글을 썼고
베네수엘라에서는 노트북을 도둑맞아 한동안 PC방에서 글을 썼다.
그 PC방 주인이 내가 중국인인 줄 알고
돈을 낼 때마다 경멸했던 그 눈빛, 그 얼굴 지금도 생생하다
(제법 유창하게 스페인어를 해도 소용없었다. 차라리 중국어를 할 걸 그랬나?).
작년 봄, 네이버 썸랩(별별부부코너)과 운 좋게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메일로 질문, 답변을 주고받는 형식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그 글이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여행이 그리웠고,
또 다른 이유는 정말 여행이 그리웠고,
마지막 이유는 그때 답변했던 내용 중에 일부 내용을 브런치에 소개하고 싶었다.
혹여나 우리에 대해서 궁금해 할까봐~
참. 이럴 때는 과하게 친절하다.
참고로 이글 대표 사진은 여행 2주년 때 멕시코-메리다에서 처남이 찍어준 사진인데
카메라 기능이 별로였던 아이폰5로 참 잘 찍어줬다. 처남 고마워~
보통 부부가 세계여행을 하면 닉네임을 정하는데 우린 '월세부부'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상가에서 월세(임대료) 받는 부부!
그때 상가 한 칸 사고 여행 떠나려고 참... 독하게 살았다.
한 쌍의 쥐처럼 냉장고 파먹고, 걸어 다니고,
주말에 투잡하고... 그리고 드디어 상가 매매!
월급 이외에 임대료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욕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생긴 시기였다.
떠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2015년 1월에 한국을 떠났다.
미련 없이. 훨훨~ 잘가~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을 마치기 며칠 전,
태국에서 아내가 귀국해서 백수로 있으면 심심하다고 반복적으로 잔소리를 내 귀에 때려박아
밀린 숙제 하듯 잡코리에 정말 성의 없이, 자기소개서란에 '안랩(구 안철수연구소)에서 악성코드를 분석했음.'이라고 달랑 한 줄 쓰고 이력서를 올렸다. 그런데 운이 얼마나 좋았는지 한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고 귀국 한지 한 달 반 만에 취업이 돼버렸다.
3년 놀다가 취업하는 기분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으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 아무나 붙잡고 수십 번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 다시 월급 받을 수 있다! 만세~
(캐나다) 체리피킹 같은거 하지 않아도 된다!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반면에 블로그 이웃이나 지인들은 왜 다시 취업을 하냐고!
어서 빨리 한국에서 재충전하고 다시 여행을 떠나라고 했다.
대리만족이 끝나면 안 된다나? 뭐라나~
(우리가 무슨 여행 기계도 아니고~)
그러나 우린 떠날 당시 회사가 싫어서 도피성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직장생활)과 더 좋은 것(여행) 중에 더 좋은 것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일장춘몽 같은 여행이 끝났으니 우리가 직장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귀국 후,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은
다들 예상했던 것처럼
그래서 얼마 들었어? 였어와
어디가 가장 좋았어? 였다.
첫 번째 질문은 숫자만 알려주면 되니까 답변이 쉬웠는데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묻는 질문에는 좀처럼 대답하기 어려웠다. 각 나라마다 언어, 문화, 음식 등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 라고 평가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전국 여행을 몇 년 간 한 사람에게 우리나라 중에 어느 지역이 가장 좋았어?라고 물어보면 곧바로 답변할 수 있겠는가?
대신, 다시 가고 싶은 나라는 몇 개 있긴 하다. 아이슬란드, 캐나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지금은 위험해서 갈 수 없지만 천연광물과 자연이 끝내주는 보석 같은 나라다)다.
세 번째로 많이 했던 질문은 여행 전, 후 무엇이 변화됐는지 였는데
그게 신기하게도 근본적으로, 외관으로는 바뀐 것은 전혀 없었다
(주름은 그냥 넘어가자!).
다만, 좀 더 겸손해졌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관대해졌고,
나를 알게 됐고,
우리 여행이 개인 신변잡기일 뿐 타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됐다.
네팔 랑탕 트레킹을 하다가 60대 중반 등산객 무리들에게 느닷없이 털린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여행을 오래 좀 했다고 하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녀 계획부터 시작해 한국 경제에 발전에 이바지하라는 내용을 엿가락처럼 쭉쭉 뽑아냈다.
그때 알았다. 장기여행한 것이 다른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안 좋은 쪽으로다가~
돌이켜보면 결국 우리에게 여행은 나를 찾는 여행이었고,
내 안에 있는 나와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즐겁게 대화하는 시간이었고,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삶에서 큰 쉼표 같은 것이었다.
우린 변했고,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