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 이야기
오빠! 나 이 뱃살 좀 빼고 싶어요.
뱃살에는 줄넘기가 최고지.
그래? 그럼 나 줄넘기해볼까?
Sure! why not?
아내는 답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이소에 가서 줄넘기 두 개를 샀다. 아. 나도 하는 거였구나. 3천 원짜리 치고는 잘 만들었네. 1년은 거뜬하겠는걸?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갔다. 저기가 딱 좋긴 한데 아저씨가 혼자서 담배 피우고 있으니... 저기~ 놀이터 괜찮네. 놀이터에서 몸을 푸는데 미끄럼 위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이. 깜짝이야. 고양이들이었구나! 미안~ 둘이서 사이좋게 그루밍하고 있는데 우리가 방해를 했네.
아내가 호기 좋게 먼저 줄넘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폼이 이상했다. 토끼처럼 앞꿈치를 이용해 캉캉 거리는 게 옛날 옛적에 탔던 스카이콩콩이 생각났다. 당신 그러면 나중에 발목, 종아리 다 아프니까 토끼처럼 앞으로 콩콩 거리지 말고 가급적 발바닥이 좀 많이 닿을 수 있도록 뛰어요.
그리고 너무 높이 뛰지 않아도 돼. 그러다 날아가겠어요~
오케이. 그런데 몇 개 하면 되는 거예요?
1000개는 해야죠. 30분 안에 다 할 수 있을 거예요.
아내에게 줄넘기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나도 줄넘기를 잡았다. 도대체 이게 몇 년 만이지. 40대 중반에 줄넘기라니. 국민학교 2학년 때인가? 어머니는 공장일을 마칠 때까지 공장 앞에서 줄넘기를 하며 기다리라고 했다. 나와 동생은 어머니 말을 철석같이 믿고 가로등 불빛 아래서 열심히, 시계를 보며, 언제 오시지 하며 줄넘기를 넘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예상보다 1시간 늦게 나왔고 덕분에 우린 그 사이 홀쭉해졌다. 물론 그날 저녁에 모든 것이 되돌아오긴 했지만.
와아. 이거 진짜 힘드네. 오빠 나 땀 봐. 장난 아니지.
그러네. 유산소에는 이게 최고야. 꾸준히만 하면.
아내는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헉헉거리면서도 꾸준히 1000개를 채워나갔다. 살 빼고 싶은 욕구가 이 정도였나? 둘이서 열심히 줄넘기를 넘고 있는데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미끄럼틀 반대편에서 자연스럽게 몸을 풀더니 대뜸 줄넘기를 넘었다. 아~ 우리보다 선배님이셨구나! 그를 보자 나도 모르게 동료 의식이 생기면서 힘이 났다. 다들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위해 이렇게 조용한 밤에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더니! 이 참에 이 지역에 줄넘기 동호회라도 만들어야 하나? 이름은 뭘로 짓지? 출렁이? 줄렁이? 줄줄이?
1000개를 다하고 땀을 닦고 있는 아내에게 이단 뛰기를 보여줬다.
휘리릭~ 휘리릭~ 휘리릭~
이것은 입에서 소리가 나는 게 아냐. 입은 가만 있자녀. 입은 가만 있자녀!
하하. 오빠. 이단 뛰기 잘하네.
칭찬은 고래를, 남자를, 남편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이번에는 비장의 무기인 X자 뛰기를 보여줬다.
아내는 와아~ 하면서 놀랐고,
난 이 정도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X자 뛰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방전.
다음날, 우린 둘 다 종아리가 땡겨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어제 무리했네. 이제 좀 살살해야겠다. 당신은 좀 어때?
나도 종아리가 너무 아파. 그런데 기분은 좋아.
그런데 오빠. 이 참에 제대로 몸 만들어 볼까?
뭐. 20대들처럼 바디 프로필을 찍는다는 것은 아니구.
건강한 몸을 만든다는 거지. 음식도 지금처럼 먹고. 대신 이전보다는 적당량을 먹으면서 말이야.
좋지. 그런데... 나도... 하는 거지?
당연하지. 오빠도 같이 해야지. 부부인데... 요양원까지 함께 갈 요양원 동기이기도 하고.
전날 줄넘기를 했을 뿐인데 우린 각자 몸무게와 체지방률을 정하고 올해 말까지 건강한 몸을 만들어보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뭐지. 이 번갯불은? 그리고 곧바로 덤벨 주문.
덤벨은 각 kg별로 택배가 왔다. 택배 기사님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 후 끙끙거리며 덤벨들을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언박싱. 중량에 비해 좀 큰데? 고무 냄새도 나고. 그래도 좋네. 묵직하니. 호기심과 의심이 동시에 발동해 저울에 각 덤벨들 무게를 쟀는데 정확했다. 와아~ 우리나라는 진짜 물건 팔려면 정확해야 하는구나! 이런 거 보면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야. 중남미, 인도, 말해 뭐해.
팔꿈치가 움직이면 팔운동이 제대로 안되니까 팔꿈치는 붙이고, 내릴 때는 천천히, 올릴 때는 빠르게 올려야 돼. 그리고 숨은 올린 후에 내쉬어야지. 반대로 하지말구요. 그렇지. 잘하네. 아내는 몇 분만에 땀을 흘렸고 생각 외로 지시하는 대로 잘 따라왔다.
이 정도였나? 아내가 살을 빼고 싶어 하는 욕구가?
하긴 코로나 터지기 전엔 아내가 수영 마스터 반이었는데 그 많은 에너지를 지금까지 쓰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네. 이제는 그 에너지가 더 이상 몸에 쌓이지 않도록 그 어려운 걸 제가 좀 도와 드리겠습니다. 흐흐
며칠간 운동을 하다 보니 운동일지를 쓸 물건, 화이트보드가 필요했다. 검색에 검색을 한 끝에 가성비가 무지하게 좋은 화이트보드를 샀다. 그리고 일지 작성. 좋네~. 역시 눈에 보여야 돼. 그렇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니까. 아내의 뱃살 빼기로 시작한 줄넘기는 나비효과처럼 덤벨, 화이트보드까지 소환시켰다. 그리고 덤으로 나까지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목표는 올해 말까지 몸무게를 빼고 체지방율을 낮추고 근육을 키우는 건데... 이게 말은 쉽지. 사실 무지하게 어려운 거다.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다 알듯. 우리나라에 맛있게 얼마나 많은가? 365일 전국을 돌아다녀도 다 못 먹을 정도로 많다. 심지어 요즘엔 배달도 총알처럼 빠르다. 그리고 술은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땡기는지.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그러고 보니 다 땡기네.
예전 같았으면 목표를 위해 막, 미친 듯이, 무조건 이런 식으로 돌진했을 텐데... 나와 아내는 운 좋게도 조기 은퇴를 해본 경험이 있다.
그러니까, 고속도로라는 메인스트림을 떠나 갓길을 다니며 나비도 보고, 꽃 냄새도 맡아보고, 미꾸라지도 잡아보고,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수많은 별들을 보며 3년간 놀다가 다시 메인스트림으로 돌아왔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목표도 중요하지만 무언가를 얻어가는 과정도 좋아하고 즐긴다. 그리고 설사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하루하루가 즐겁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빡! 뒤통수 때리는 게 인생 아니던가? 오늘따라 베네수엘라 밤하늘이 생각난다. 손가락 만한 반딧불과 별들이 섞여 어떤 것이 별인지 반딧불인지 구분이 안 갔던,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것 같았던 그 아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