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검사 후기
샤워 중에 전화가 울렸다. 일요일에 누구지? 호기심에 전화를 받고 싶었지만 온몸이 비누거품이라 그럴 수 없었다. 그나저나 아내가 산 바디워시, 정말 거품 잘 만들어지네. 앞이 하나도 안 보여~ 사워를 마치고 아이폰을 봤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일요일에 모르는 전화번호? 이건... 십.중.팔.구! 회사 누군가의 전화번호일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조직장에게 문자가 왔다. 회사에 코로나 확진자가 생겼으나 로그인해서 메시지를 확인하라고.
메신저에 로그인해보니 이미 다른 동료들이 쓴 '헉!' 메시지들이 주르륵 올라갔다. 나도 헉!이었다. 일요일에 이게 무슨 일이지! 일단 내일부터 완전 재택이라고 했다. 이전에는 코로나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만 나갔는데 이제는 일주일 내내 재택을 하란 말이었다. 얼마 후 전사 공지방에 확진자 정보와 동선이 공유됐다. 서둘러 아이디를 조회에 프로필 사진을 봤다. 아! 이 사람... 얼굴이 익숙하다. 같은 층 사람인데... 동선을 확인했다. 다행히 겹치지 않았다. 조직장은 같은 층에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오늘 내로 코로나 검사를 시행하라고 했다.
조직장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대화방에 질문이 쏟아졌다.
장인어른 칠순이라 내일 지방에 내려가야 하는데 지금 검사하면 결과가 언제 나올까요?
일요일에 보건소 여나요?
법인카드는 지원되나요?
1399에 전화를 해봐야 하나요?
가족들도 검사를 받아야 하나요?
법인카드 가족도 지워되나요?
오늘 가족 모임 있는데 취소해야겠죠?
전사 공지방에 검사 대상자 결과가 모두 나올 때까지 전사 재택근무로 전환하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보건소 리스트가 올라왔다. 그러나 일요일이라 그런지 보건소는 대부분 닫혔거나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제부터 몸살기가 있었던 나로서는 모든 것이 귀찮고 좀 짜증이 났다. 왜, 하필! 이 조용한 일요일 오전부터! 곧이어 전사 공지방에 각 지역별 선별 진료소들이 업데이트됐고 실 대화방에는 검사를 받기 위해 이제 나갈 준비한다는 메시지들이 오고 갔다. 다들 처음이라 우왕좌왕 난리였다.
오빠! 나도 받아야 해요?
아니. 그런데 난 오늘 코로나 검사받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괜찮아요?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요.
괜찮아요. 그냥 몸살이야. 코로나는 아닐 거예요.
설마 코로나?
지금까지 마스크도 잘 쓰고 다녔고 확진자와 접촉한 적 없으니 코로나는 아닐 거야. 그럴 리가.
단순 몸살일 거야.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무뚝뚝했고 라디오 소리는 컸다. 라디오 소리 좀 줄여달라고 할까? 아니다. 그럴 필요까지 있나? 그런데 몸살 때문에 그런가? 오늘따라 라디오 소리가 거슬렸다.
40분 만에 택시에서 내려 병원 입구로 들어가려고 하자 한 남자 직원이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려고 한다고 하니 오른쪽 계단 위쪽으로 올라가라고 했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큼지막하게 '선별 진료소' 글자가 보였다. 임시 천막에 들어가자 대기표를 뽑고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 동안 전사 공지방을 확인해보니 법인카드로 검사비와 택시비 지원 여부에 대해 여러 사람이 묻고 있었다. 이게 무슨 난리여. 참.
얼마 후 누군가 내 대기번호를 불렀다. 내가 두리번거리자 접수처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리고 전화가 울렸다. 뭐지? 하면서 전화를 받자 상냥한 직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접수를 할 테니 주민번호와 휴대폰 번호를... 코로나 검사를 많이 듣긴 했지만 접수부터 비대면인지는 몰랐다. 순간 국정원 직원이 돼서 누군가에 지령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접수를 마치고 체온을 체크하러 들어갔다. 접수처처럼 전화기가 보였다. 전화기가 울렸고 난 또 받았다. 내 건너편에 있는 남자 직원은 개인정보를 묻고 체온을 잴 거라고 하면서 팔을 들라고 했다. 팔? 이마나 목이 아니라 팔이라고? 그는 내 눈빛을 읽은 것처럼 자신처럼 팔을 들라고 했다.
난 수화기를 왼쪽으로 잡고 그를 따라서 오른팔을 똑같이 들자 그는 당황한 듯 오른팔 말고 왼쪽 팔로 자신처럼 팔을 들라고 했다. 잠시 후 투명창이 열리면서 체온계로 내 왼팔의 체온을 측정하고 재빨리 투명창을 닫았다. 아~ 이럴 거면 처음부터 '팔에다 체온을 측정!' 한다고 말하지. 원숭이처럼 이유도 모른 채 따라 하기만 했네.
수납까지 완료 후 검사 방에 들어가니 귓가에 두둥~ 소리와 함께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눈 앞에 나타났다. 아... 저 반대편에서 의사가 두 팔을 넣고 내 입과 코에서 면봉을 찔러 넣고 체액을 채취하는 거구나. 코로나 이 정도였나? 왜 갑자기 난 에일리언처럼 느껴지고 반대편 의사가 진짜 인간처럼 보이는 걸까? 기분 탓이겠지?
의사는 친절했다. 내가 받아온 검사기 뚜껑을 열고 입을 벌리라고 했다. 의사는 면봉을 내 입안 깊숙이 넣고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말하며 반복적으로 돌렸다. 곧이어 의사는 이번엔 코에도 동일한 방법으로 넣을 거라고 했다. 내가 입을 벌리자 입은 벌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좀 더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리고 콧속으로 쑤욱~ 앗! 깊숙이 들어오네. 하나, 둘, 셋, 넷, 다섯. 의사는 검사가 끝났으니 뒤에 있는 냉장고에 검사기를 넣고 퇴장하라고 했다.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친절했고 라디오 소리는 그전 기사님보다 컸다. 이번엔 진짜 라디오 소리 좀 줄여달라고 할까? 아니다. 이번에도 참아보자. 집에 도착해 대화방을 확인해보니 나를 포함해 다들 검사를 마친 것 같았다.
다음날, 회사 메신저로 출근한 후 대화방에 들어가 보니 검사 결과 인증샷들이 보였다. 음성. 음성. 음성. 나도 음성이겠지. 졸린 눈을 비비며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결과는 음성. 당연한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기분이 좋았다. 몸살... 맞았구나.
뉴스에서 떠들어 댈 때는 코로나를 체감할 수 없다가 실제 검사를 받고 나니 코로나가 얼마나 우리 삶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지 확 느껴졌다. 미세바늘로 100번을 찔러도 원상 복귀하고 90도 열에 10분간 지져도 끄떡없는 코로나바이러스.
넌 도대체 어디서 왔니?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가 전 세계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인간 문명을 '혁신'하고 있다.
문득,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바깥공기를 마셨던 작년 가을이 무척이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