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Round] 나만 없어, 고양이

《고양이 가장의 기묘한 돈벌이》《서재 결혼시키기》

by 필화

안녕, 필화님!


잘 지내죠?

날씨가 점점 '잘' 지내기 힘들게 만들지만, 굴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는 굳건한 의지의 인간이니까(라고 믿고 싶습니다)요. 그런데 왜 눈물이 날까요...


각설하고.




저는 정말로 놀라고 말았습니다! 친구들과 이메일이라니!! 이 얼마나 놀라운, 디지털적 아날로그 감성의 실천 현장이란 말입니까? 맹세컨대 저는 친구와 이메일을 주고받는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자고로 친구와는 카톡이라든가, 인별 디엠이라든가, 혹은 텔레그램, 그것도 아니면 왓츠앱으로 소식을 전하는 게 국룰 아닙니까? (미안합니다, 이 국룰 감성 지나치게 강압적인 뉘앙스가 있어서 좋아하진 않지만 정말이지 지금 이 기분을 전달하기에 이 이상 찰떡같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네요)


물론 이건 순전히 저만의 견해일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제 편협한 세계가 한층 넓어진 기분이에요. ‘그렇구나, 이메일을 친구 하고도 주고받는 거구나…’ (흐릿한 시선처리 요망)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 네, 저는 이 표현을 즐겨 씁니다 - 에 개인의 감정적 해석이라는 필터를 거치면 벌써 이렇게나 큰 의미의 격차가 발생하고야 마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묘합니다.


아무리 소통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오해라는 것을 전제로 두고 있다지만, 그렇다지만... 느낌의 낙차에서 태어난 감정이 기묘함이라니, 이것 역시 저라는 인간의 개체적 시스템 연산 결과겠지만요. 필화 님은 그런 '차이'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 궁금합니다. 긍정적 감정일까요, 부정적 감정일까요.





느낌과 감정에 대해서 적자니 최근 읽었던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느끼고 아는 존재》라는 책이 먼저 생각나지만 사실 오늘은 무엇에 대해 쓸지 내심 정해둔 터라 이 책은 언급만 하고 넘어갈게요.


다마지오는 우리가 별반 큰 차이를 두지 않고 혼용하는 느낌과 감정이라는 것의 섬세한 결을 더듬어 밝힙니다. 더불어 자아와 의식이 어디에서 발현하는지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이론을 제안하는데 특히 뇌과학과 AI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필독할만한 저작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원래 또 이렇게 '떨어뜨리기 힘든' 개념을 곱게 분리하는 이론에 환장하는 성향이 있지 않겠습니까. 연신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짜증낼 사람도 많겠다는 생각도 하면서요.





여하간, 지난 메일에서 소중한 고양이에 대해 지나가듯 언급하셨지만 저는 그걸 물고 늘어질 생각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우연이긴 한데 많지도 않은 제 친구들 중에는 유난히 고양이 집사가 많습니다. 제가 유달리 영희 씨들의 집사 스타일과 코드가 잘 맞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것 역시 기묘한 우연이지요.



그래서 오늘의 제 키워드는 ‘고양이’와 ‘기묘함’입니다.

그리고 장담컨대 오늘 제가 들고 온 책의 장르는 절대 필화 님이 예상치 못했을 거라는 데 뭘 걸라고 하면 걸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내기는 건전하지 못한 취미이니 여기서는 삼가도록 하죠).


제목 하여 《고양이 가장의 기묘한 돈벌이》라는 기막히게 재미있는 동화입니다. 문학동네에서 나오는 초등학생 대상의 문고본 브랜드가 있어요. 초승달 문고는 저학년, 반달은 중학년, 보름달은 고학년 대상이지요.

이 책은 보름달 문고에 들어 있는 세 권짜리 소설입니다.



각 권의 부제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여우양복점>, <황천택배 헬택배>, <박스시티공장>


제목만 봐도 궁금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랬습니다. 제가 이 책을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죠. 서점에서 빠르게 훑어보던 저는 수천 권(고백건대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의 책을 사들여 본 감식안으로 순식간에 결정을 내립니다. 어머, 이건 사야 해.


그리고 제 결정은 옳았습니다. 브라보.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간혹 제게 어린 친구들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종종 있어 왔는데(요즘은 다들 자라서 그런가 그런 일이 잘 없어요), 당연히 처참할 정도로 실패한 일도 적잖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만큼은 소개할 때마다 늘 대 흥행이었습니다. 열광적인 반응이 뒤따랐어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생활력이라고는 1도 없는 대책 없는 아빠가 어린 딸에게 이젠 네가 이 집의 가장이라며 막중한 책임을 떠넘깁니다(소설적 허용이라고 넘어갑시다). 아빠라는 사람의 무책임한 작태에 딸도 짜증이 나는 게 인지상정이겠지요. 어처구니를 상실한 딸은 집에서 기르던 검은 고양이 꽃님이에게 “네가 가장해라!”라고 떠넘기는데, 갑자기 꽃님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좋소이다. 이 몸이 한번 해보겠소이다. 그럼 내일부터는 꽃님이가 가장이니 그리 알고 계시오."



그리고 꽃님이는 어디서 정체 모를 말하는 여우 재봉사를 세입자로 데려오는데 이 여우는 재벌 3세인지 뭔지 주인공 부녀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거금을 월세로 지불하기로 약속하죠. 그리고 이야기라면 반드시 등장하는 금제가 나오고 당연하게도 주인공 부녀는 그 금제를 어기며 한바탕 난리가 벌어집니다.




특히 저 예스러운 말투와 꽃님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미스매치에서 오는 캐릭터의 매력이 상당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꽂히는(!) 고양이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질투가 날 정도로요.


순식간에 읽던 사람의 멱살을 낚아채서 이야기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는데 단 1분도 안 걸리는 쾌속 전개에 스토리 얼개는 단단하고 야무집니다. 게다가 그 소재의 신박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설명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그냥 잡솨봐.



아, 그리고 이건 절대 메롱의 의도는 아닌데 말입니다,

저 필화님이 소개한 책 갖고 있어요. 하하하하하하

왠지 즐거워져서 소리 내어 웃고 싶었어요. 음, 미안합니다. 구석에 가서 손들고 있을게요.





트렙베트테르에 대해서 말씀하신 바에는 적극 동의합니다. 특히 밤에 이불킥 하고 싶어 지는 상황이 올 때면 더 그렇겠지요.


그건 그렇고, 츤도쿠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생각난 것은 저의 최근 경험인데요. 저는 아무리 책을 많이 산대도 그렇지, 본인이 구입했던 책을 기억도 못 하고 또 산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냐 생각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거만을 떨던 자는, 새로 도착한 책 택배를 뜯다가 불과 한 달 전에 사놓고 읽지 못했던 책과 같은 표지의 책이 박스에서 얼굴을 내민 것을 보고 흡사 우물에서 기어 나오는 사다코를 맞닥뜨린 듯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이만 총총.









안녕~ 담화님



‘느낌의 낙차에서 태어난 감정이 기묘함이라니, 이것 역시 저라는 인간의 개체적 시스템 연산 결과겠지만요. 필화님은 그런 차이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 궁금합니다.’라고 질문을 주셨군요.


개론인지, 각론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저는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아~ 저 이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는 짧은 소감만 남긴 채 잊어버립니다.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만 아니라면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여러 가지 분야와 차원에서 볼 때, 느낌의 낙차에서 오는 감정은 좌절일 수도 있고, 희망일 수도 있고, 기쁨 혹은 고통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백인백색 아니겠습니까?


적당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엄마가 사람마다 입맛이 다른 거라고 했잖아.”라는 약간은 얄미운 아이들의 반찬 투정도 군말 없이 넘어가줍니다.




그나저나 고양이가 돈을 벌어오는 이야기가 있다니요???

심지어 제목도 《고양이 가장의 기묘한 돈벌이》 라뇨?

이건 또 고양이 집사로서 제가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무려 세 문장이 물음표를 가장한 느낌표입니다. = 저는 지금 흥분 모드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읽자마자,

‘아 이것은 나처럼 할 일은 산처럼 쌓여 있지만, 손대고 싶지 않은 게을러빠진 어느 망상가가 ‘아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겠군.’이라고 생각하다가 ‘아니지, 고양이가 돈을 벌어오면 더 좋을 거야!’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간 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종종 그런 상상을 하기 때문이죠. “호야~ 그 잘생긴 얼굴로 돈 좀 벌어와 봐.”라며 저희 고양이에게 어이없는 소리를 하긴 합니다. 그러면 고양이님은 본 척도 안 하고 밥이나 내놓으라고 제 발 뒤꿈치를 물어뜯거나 싱크대 앞에서 점프를 하곤 하십니다.


그런데 작가님께서는 어마어마한 상상력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셔서 결국은 고양이가 돈을 벌어오셨고, 저는 망상만 연속하고 있다는 씁쓸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큰 차이가 요단강처럼 존재하고 있군요. 여하튼 그래서 저는 이 책을 꼭 빌려다 보겠습니다.





아니 그리고 우리 담화님...

저에게 추억의 사다코를 소환해 주셔서 제가 길바닥에서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사다코라니요... 저에겐 마치 도시괴담과도 같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인 사다코는 그냥 쭈욱- 우물에 계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서가에 꽂힌 책을 또 사는 일도 없으면 좋겠고요.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의 개정판이 나오면서 표지를 바꾸는 바람에 똑같은 책을 또 사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제가 이런 걸 왜 적겠습니까... 이하 생략...)




여하튼 똑같은 책과 책을 얹어보는 이미지를 떠올리니 이 책이 떠오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라는 책입니다.



책과 글을 사랑하는 환경에서 자란 저자의 그야말로 ‘책 사랑’에 관한 이야기 18편을 담고 있답니다.


시작은 결혼 후 자신의 책과 남편의 책을 합치는 에피소드로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책을 다루고 대하는 태도에 대한 논쟁과, 어휘력 실력을 앞다투던 가족들 이야기, 또 할머니와 지인들이 보내온 책에 대한 이야기 등 애장서에 얽힌 추억과 기억으로 채워집니다.



결혼 전에 이 책을 읽고 기대에 부풀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혼하면 근사한 서재에 남편과 내 책을 합칠 수 있겠지? 그 사람이 가진 책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나날들이 있었습니다. 과연 서재를 결혼시키고 보니 작은 집에 책만 너무 많아서 압도되었던 기억도 있고, 우리가 가진 공통의 책들이 많아서 좋아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왜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애감정의 연장이랄까요? ‘아 이 사람도 이 책이 있구나!’라는 두근거림 같은 게.....)



바로 그 ‘서재 결혼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한 단락을 뚝 떼어서 보내봅니다.


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이까지 하나 낳은 뒤, 조지와 나는 마침에 우리가 장서합병이라는 좀 더 깊은 수준의 친밀함을 이룰 준비가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영국식 정원 운영 방법과 나의 프랑스식 정원 운영 방법 사이에서 어떤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다. … 우리는 주제에 따라 정리하기로 합의했다. 역사, 심리, 자연, 여행 등. 문학은 다시 국적에 따라 세분하기로 했다. …


그러나 기본 규칙을 정한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는 곧 난관에 부딪혔는데, 내가 영국문학을 연대순으로, 그러나 미국 문학은 저자 이름순으로 정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나의 논리는 이런 식이었다. 우리의 영문학 책들은 6백 년에 걸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연대순으로 꽂아 놓으면 우리 앞에서 문학의 넓은 지평이 펼쳐지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작가들은 한 몸이다. 그들을 분리시켜 놓는다는 것은 이산가족을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


반면 우리 미국문학 책들은 대부분 20세기 것인 데다가 많은 수는 또 아주 최근 것이어서 그것을 연대순으로 구별하려면 탈무드 편집자처럼 쫀쫀하게 따져야 한다. 따라서 결론은 작가 이름 순. 결국 조지는 굴복하고 말았는데, 진심으로 내 논리에 감복했다기보다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내 셰익스피어 책들을 한 책꽂이에서 다른 책꽂이로 옮기는 것을 보고 내가 “그 작품들은 꼭 연대순으로 꽂아야 돼!”하고 소리치는 순간 그만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한 작가 내에서도 연대순으로 가잔 말이야?” 그는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쓴 연도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도 않았잖아!” 나는 밀리지 않고 몰아붙였다. “그래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폭풍》보다 먼저 썼다는 것을 알잖아.”


조지는 나와 결혼해 살면서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거의 없는데 그때만은 달랐다고 했다. (P.19~20)




저자의 꼼꼼한 책사랑과 지조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답니다. 물론 다 발췌하지는 못하지만, 저 에피소드는 통째로 읽어주고 싶을 만큼 재미가 있어요. 책 정리하느라 고생깨나 해 본 사람이라면 웃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지요.



저희 부부는 둘의 관심사와 전공이 다른 관계로 책 정리로 골치 아플 일은 없었습니다만, 부부 둘 다 가지고 있는 책의 존치 여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갑론을박했습니다. 더 깨끗한 것을 보관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다가 결국은 각자의 책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존중하여 두 권 다 가지고 있기로 합의를 보았지요.




그런데 담화님! 담화님도 어마무시하게 많은 책을 보유하고 계신데 남편 분과의 ‘서재 결혼시키기’는 어떠셨나요? 아니 그 이후로도 그 수많은 책들을 지금까지 잘 관리하는 규칙이 있으신지도 궁금하네요.


그리고 이 책장담화가 ‘서재 결혼시키기’까지는 아니어도, 저희 둘에게 그리고 혹시 모를 독자님들에게도 ‘서재 맞선보이기’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살포시 해봅니다



필화의 두 번째 답장-








혹시나 이 책이 궁금하여 구매하시고 싶은 분들을 위해 알라딘 온라인 서점의 구매 링크를 걸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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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가장의 기묘한 돈벌이》

《서재 결혼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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