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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화 Jan 11. 2024

추억은 무슨 맛이었던가...

《고양이 식당, 추억을 요리합니다.》《생강빵과 진저브레드》

담화님 안녕~

결국 그 책을 사고야 말았군요. 《죽이는 화학》 흥미로워 보이긴 했습니다. 담화님이 사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죠. 언젠간 추리물을 쓰시려나요? 후후훗 아시다시피 저 추리물 좋아하니깐 제1독자 시켜주세요. 아 그리고 아가사 크리스티 빨간 전집 다 읽었죠. 무섭진 않았지만, 어린이의 어깨가 뻣뻣해질 정도로 긴장하며 읽기는 했네요.(무서웠던 걸까요..)



저는 지난 주에 《고양이 식당, 추억을 요리합니다.》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다카하시 유타라는 분이 쓴 책으로 ‘추억’과 ‘행복’ 두 권이 시리즈에요. 내용은 아주 심플합니다. 고양이 식당에 ‘추억 밥상’을 주문하면 자기가 만나고 싶은 고인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추억식단의 메뉴는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이거나 주문자와 함께 먹었던 음식이고, 음식이 식으면 고인은 사라지고 말지요. 옴니버스 구성인지라 각각의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그리웠던 이에게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애절한 마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어릴 때 엄마가 “사람이 친해지는 게 두 곳인데, 하나는 식탁이고, 그 다음이 잠자리다.”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는 그야말로 '엥? 뭔 소리야?'했더랬죠. 하지만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는 식사 자리와 민낯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침실, 이 두 자리의 상징이 실체로 다가오는 나이가 된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추억이 담긴 음식”에 대한 얘기입니다.



담화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보통의 사람들이 애정해마지 않는 화합물인 술은 종류를 마다 않고 단 1g도 못 마시지만, 차 종류는 무척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자주 이것저것 여러 브랜드와 종류를 넘나들며 시도해보곤 합니다. 어제도 낮에 눈이 하얗게 쌓였길래 허니앤손스의 루이보스 차이 틴을 뜯어 한 잔 우려 마셨습니다. 창 밖에 보이는 산에 가득 쌓인 눈을 보며 마시다 보니 저도 어린이들처럼 눈밭에 나가 뛰어놀고 들어와서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하지만 이제 감기가 더 걱정되는 어른이니까 나가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제가 블로그에 티에 대한 사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올린 적이 있답니다. 담화님도 보셨을 듯 한데요, 다 써놓고 보니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보통의 티 마니아들은 각 차의 유래, 성분, 맛의 특징, 마시는 방법, 같이 먹으면 좋은 티푸드 등등에 대해서 상당히 전문가적인 견해를 서술하겠지만!


저는 문법 없이 그저 감각으로 즐기는 사람이다 보니 ‘이 차는 언제, 어디서, 누구랑 마셨는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에만 집중해 썼더라고요. 예를 들면, 프레스센터 지하의 다만프레르 티하우스에 갔다가 나이 들면 이런 티하우스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첫 직장 보스인 HJ랑 나누었다든지, 제게 홍차를 처음 소개해준 친구와 함께 연희동 딜마 하우스에 자주 갔었다는 둥, 거기 티푸드인 누가 케이크가 정말 맛있었는데 없어져서 슬프다는 둥, 우리가 말술 먹게 생겨서 알콜은 1g도 못 마시고 티만 홀짝거리는 걸 누가 알겠냐는 둥의 수다를 나누었다는 얘기. 혹은 후쿠오카 여행 갔다가 야매차(八女茶. 일본 녹차 중 하나)를 소개 받은 일, 료칸 직원이랑 호지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이라든지, 히로시마 호텔 앞 커피집 주인장과 커피에 대한 수다를 떨었던 추억에 대해서만 적어두었더란 말이죠. 그러니 제게 티Tea는 그저 ‘추억’의 한 보퉁이, 혹은 추억이라는 회에 곁들여지는 초장이나 다름없지 뭡니까..



담화님의 추억의 요리는 무엇인가요?

저는 음.. 엄마가 해주셨던 칼국수요. 제 기억 속 엄마는 동네 사람들 불러다가 먹이는 분이셨거든요. 겉절이라도 담그는 날은 아침 일찍 칼국수 반죽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시죠. 그리고 오전 내내 겉절이를 담그고 칼국수 반죽을 꺼내어 밀대로 밀고 챱챱챱 썰어서 뜨거운 멸치국물에 퐁당! 이윽고 부산스럽게 들어오는 이웃들과 함께 후루룩 짭짭 먹고, 2:2:2의 황금비율 커피를 마시며 하하하호호호 수다를 떨다가 모두들 돌아가는 길에 겉절이 한 통씩 손에 들려 보냈던 엄마의 모습이 아주 선명합니다. 요즘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엄마의 요리 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것은 바로 이 칼국수인 것 같아요.



제가 2주간 내내 손에 들고 찬찬히 읽고 있는 책 중에 김지현씨의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에 요리가 나왔던 부분의 인용구와 함께 그 음식의 유래와 얽힌 이야기들, 소설의 이야기들을 담아두었는데, 삽화가 무척 예뻐서 보는 즐거움이 있더군요. 생강빵과 진저브레드가 같은 음식임에도 이 걸 제목으로 하여 한국어와 영어로 서술한 데서 얼마나 진지하게 번역을 하시는 분인지도 느낄 수 있었고 말이죠.



이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말이죠. 바로 ‘햄과 그레이비’로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함께 소개하는 부분입니다.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스칼렛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당차게 살아가는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스칼렛의 생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바로 이 햄과 그레이비로 드러내어 주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스칼렛이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 바로 그녀의 먹성이다. 스칼렛은 정말 잘 먹는다. (중략) 코르셋을 힘껏 조이고 초록빛 잔나뭇가지 무늬가 들어간 열두 폭의 무명 포슬린 드레스를 입고는, 그레이비에 담긴 햄부터 야금야금 먹는다. 햄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스칼렛은 좋아하는 음식을 아껴 먹기보다는 가장 먼저 먹어치우는 사람이다. p.107~108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싫은 일을 먼저 하는 신중한 스타일(pleasuredelayer)이 아니라 욕구를 먼저 충족시키는 에너지 넘치는 스칼렛의 모습이, 폐허가 된 집 현관문 앞에서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라고 외치던 장면에서의 그 결의에 찬 표정과 오버랩되며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그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장애물이 나타나면 강인하게 맞서 싸우며 돌파해나간다. 그저 인간답게, 자유롭게 살기 위해. p.112



그러고 보니 요리는 그 요리를 즐겨먹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주는 상징 같기도 하네요. 햄과 그레이비를 먹는 스칼렛을 보면서 그녀의 성정을 떠올리게 되는 걸 보면 말이죠. 저는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를 읽으면서 음식이 등장인물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작가가 사용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네요. 담화님도 이 책 가지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아 그나저나 담화님은 어떤 요리를 좋아하시나요? 요리도 잘 하시니까 좋아하는 요리도 많으실 것 같아요. 저는… 음.. 샤브샤브? 아.. 어디라도 꼭 맛집을 찾아가서 사오는 걸 보면 빵일까요?? 네, 이거 좀 고찰해봐야 하는 주제일까요? 아님 대충 아무거나 먹을까요?


아무튼 저는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읽어보며 연말연시 재미나게 보내고 있답니다. 소설 속에 얼마나 많은 요리가 등장하는지 새삼 깨달으면서 말이죠.


담화님은 지난 주에 뭐 읽으셨나요?

듣기로는 2023년 한 해 244권이나 읽으셨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12월 마지막주에 담화님이 읽은 책을 소개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필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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