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고서 수집가의 기이한 책 이야기》
담화님 안녕~~~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 아침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춥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담화님이 소개해주신 책은 분명 제목이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이었지요? 제목에서부터 줄거리가 아주 살짝 예상되는 제목이긴 합니다만, 무척 재미있어 보이긴 하네요. 눈 뜨자마자 아이돌로 데뷔하지 않는다면 죽는다는 미션을 받다니!!! 눈뜨자마자 트리플로 얻어맞은 기분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단 데뷔하면 적어도 살아 있는 상태에서 팬들의 무조건적인 큰 사랑을 받으니 행복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이십 대에 좋아했던 아이돌이 있었습니다만, 아름다운 미모(?)에 반해 행실이 좋지 않으셨던 분이라 눈물 머금고 이하생략 하겠습니다. (크흑)
얼마나 구독자가 많은 작품일까 생각하다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 중에서 [Circles in a Circle]이라는 작품을 올려주신 것을 보고 저 진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아 인간의 연상력이란 진짜... 근데 그날 이후로 저도 이 그림이 화려한 스테이지로 보입니다. (어쩔 거예요? 책임지세요.)
애정 담뿍, 좋아하는 마음.
그것이 오롯이 문장의 행간에서 뿜어져 나오더군요. 역시 좋아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나 봐요.
담화님은 소개해주실 책을 통해서 ‘진정성, 좋아하는 마음의 순수함’을 느꼈다고 해주셨죠. 바로 이런 부분이 제가 지난주에 읽은 책과 좀 맥락이 통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바로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입니다.
사실 저는 시간이 얼마 없어서 도서관에서 보려고 했던 책들만 쑥쑥 빼가지고 나오는 길에 이 책을 발견했단 말이죠? 그런데 정말 눈길을 끄는 제목이지 않습니까? 하여 ‘흠. 소설과 경제라... 진짜 안 어울리지만 뭔가 있나 보지?’라는 생각으로 정말 마진이 얼마나 남는지 계산하는 책인 줄 알고 급하게 들고 나왔단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알’ 톤으로 읽어주세요.)
이것은 말이죠. 23명의 소설가들의 ‘소설에 대한 생각’을 그러모은 책이고, 이 제목은 그 중 한 분인 오한기 작가가 쓴 글의 제목일 뿐이었습니다.
이 책은 비교적 판형도 작고, 23명이나 쓴 글이기 때문에 한 편 한 편이 짧기도 해요. 그럼에도 이 책을 펼치면 17층 사는 제가 지상 1층까지 뚝 떨어지는 기분도 좀 들어서 쉬이 읽히진 않았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구구절절이 쓴 글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리고 소설가로서의 자신을 소설 속 등장인물 삼아 짧은 단편을 쓰신 분들도 계셨고, 글을 쓰기 시작했던 날에 대한 회고를 쓴 분도 있었고,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정리한 분도 계셨죠.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고충을 끌어안고도 이들이 작가로의 길을 계속 걷는 동력은 무엇일까?’
이야기를 좋아하는 마음. 소설을 쓰는 마음. 쓰고 싶은 마음. 어쩐지 못 쓰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 자기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이 소설가들의 글답게 정말로 이 책에는 인용하고 싶은 문장의 형태로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그냥 길가의 꽃을 뽑아다가 거실에 꽂아두기만 하면 될 수준으로 말이죠.
“소설을 쓰는 데에는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소설가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정체성 같은 것이어서 오래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자격이 유지된다. p. 96 임 현. 공백의 소설 쓰기 중.
”소설을 쓴다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 상의 시간을 삶으로 채워 넣는 일이고, 삶을 감각하는 일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풍경과 느낌을 아는 사람이 당신만은 아니라고.. 나도 알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독자를 안아주는 일이다. - p.122. 정소현. 쉽게 배운 글은 쉽게 글을 쓰지 못하게 한다. 중.
”소설을 쓰는 일은 맞거나 틀리거나 하지 않는다. 옳거나 그르거나, 이기거나 지거나 하지 않는다. 뭔가 의미 있는 형태를 만들어 옆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조용한 작업. 나는 이런 일에 나 자신을 종사시키고 싶었다. 누구를 만나도, 어떤 새롭고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 빠졌어도 반평생을 지속적으로 좋아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가닿고 싶은 유일한 것이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이 되었다. 점점 더 그렇게 되었고 지금보다 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소설을 잘 쓰는 일, 좋은 소설을 쓰는 일. 이제 그런 욕망에서도 나는 멀어졌다.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할 뿐이다. 생각하고 듣고 보고 읽고 쓰는 일. 다만 내가 쓰는 글이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한다면, 하는 불안만은 여전히 버릴 수 없다. p. 151 조경란 ‘작가의 말’과 신발 중.
이 정도면 그 ‘좋아하는 마음’ 너머에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드시죠?
저는 가끔 유튜브로 먹방을 봅니다. ‘입짧은햇님’과 ‘히밥’님 두 분 걸 보곤 하는데,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사람들은 먹방에 집중하게 되는 걸까?’라고요. 한 10년? 15년 전 일본에서도 먹방이 상당히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식 먹방과는 약간 분위기가 다르긴 하지만요. 그 때도 ‘왜 저런 것이 유행을 할까?‘ 궁금하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밤도 저는 빨래를 개키면서 먹방을 틀어두고 있었죠. 그 때 먹방이 주는 '즉각적인 욕망의 해소'라는 걸 생각해 보게 되었죠.
먹방은 그야말로 단시간에 구독자들의 욕망을 해소해 줍니다. 짧은 시간에 다량의 음식을 먹어치움으로써 ‘저런 음식 챌린지를 누가 할까?’ 했던 궁금증을 풀어주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라면 더 먹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 욕망을 대신 풀어주고,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고민도 할 필요없이 다 먹어치워 줌으로써 구독자들의 내적 갈등을 일시에 시원하게 해소해 주는 거죠. (실제로 항암 치료로 식사를 잘 못하는 분들이 많이 보시고 힘을 얻는다고도 하더군요.)
먹방과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소설가들은 소설을 좋아하는 자신의 욕망을 글로써 풀어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와 동시에 소설에 푹 녹아 있는 소설가들의 욕망에센스를 함께 공유하고 공명해주는 독자들도 있죠.
그러니 이 좋아하는 마음은 공명이 많을수록 소설가들은 성장해갈 수밖에 없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을 수 없는 더 큰 내적 욕망을 가지게 되는 일종의 순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덕심도 마찬가지겠지요.
저는 요즘 《고서 수집가의 기이한 책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세도리 남작(부친의 남작 칭호를 이어받았죠.)이 어린 시절에 고서를 접한 이후로 오래된 고문서, 고서적, 그림 등을 수집하는 이야기죠. 마흔 후반이 되도록 그는 결혼을 하지 않고 심지어 동정입니다. 그럼에도 수년 간 찾던 책을 찾으면 바지를 적실 정도로 고서 수집에 진심이고 전심전력입니다. 그야말로 '좋아하는 마음'이 흘러넘치지요. 이 분 같은 경우엔 내용도 내용이지만, 고서적이라는 물체 자체와 사랑에 빠진 것 같아 보일 정도예요. 아니 그걸 사고팔고, 소장함으로써 갖게 되는 마진 때문일까요..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드려 볼게요. 한 세트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누락된 책을 찾아다니던 세도리 남작은 그중의 한 권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분의 이런 에너지를 아는 사람은 알게 된 모양인지, 그걸 소장하고 있던 미망인이 협상을 시도합니다.
“귀하는 어느 책 한 권을 구하시느라 혈안이라던데...“
하고 말을 꺼내더군요.
“네. 사실입니다만.”
이렇게 대답하자 미망인은 기품 있는 얼굴을 아름답게 진정시키며 나지막이,
“실은 나도 귀하가 간직하고 있는 어떤 하나를 구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p.50
네 그 미망인은 세도리 남작의 순결(?)을 원하고 있던 것이에요. (어떻게 되었는지는 비밀입니다.)
하여튼 이 좋아하는 마음이란 게 참 요물이기도 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대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마음은 우리의 삶을 경쾌하게도 해주고, 생을 지탱해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하여 연말을 앞두고, 2024년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이 때에 저는 내년에도 ’좋아하는 일‘을 더 즐겁게 하자는 생각을 했죠. 담화님도 그렇겠지만요.
필사도 즐겁게 하고, 늘 잉졸(하도 안 써서 만년필의 잉크가 졸아들었다는 말)인 만년필도 아껴주고, 우리 고양이랑 산책도 하고, 부지런히 읽고 쓰기도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참으로 소박하기 그지 없지만, 뭐 괜찮지 않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거니까요.
담화님도 내년엔 여전히 좋아하는 일로 불태우시기라 생각합니다. 내년에도 기대할게요. 그리고 응원합니다.
아 그나저나,
지난 주에 뭐 읽으셨어요?
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