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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화 Jan 18. 2024

알고 싶다, 이 남자.

《백석 평전》


담화님 안녕~

레터가 무척 늦어졌지요? 미안합니다. 어린이들이 방학이라 삼시 세끼 집밥과 간식을 해먹이느라고 매우 고된 날들을 보내고 있는 탓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좀 해보겠습니다.



담화님의 이번 레터는 뭐랄까,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느꼈던 느긋한 평화로움과 따뜻하고 잔잔한 애정이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읽었습니다. 포근하네요. :)



참고로 그 프랑스 소녀가 좋아했던 동화적인 다락방,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 방은 삼면으로 둘러진 예쁜 창문도 로맨틱 해보이고, 책으로 가득 차 있어서 천장이 높은데도 굉장히 아늑한 느낌이 들었어요. 멋진 방이지요. 저는 그 방이 담화님 아틀리에로 최적이라 생각합니다. 후후훗


담화님 댁에는 《세계의 요리백과》라는 책이 있으셨군요. 저희 집에는  《궁중요리》책이 있었습니다. 하드커버의 내지도 칼라인 3권 세트의 책이었는데, 엄마가 그 책 속의 요리를 해보셨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저는 그 요리들을 먹어본 기억이 없거든요. (어머니...) 책 속의 요리 사진들이 하도 예뻐서 종종 펼쳐보며 무슨 맛일까 궁금해 했던 기억은 납니다.

저의 그 시절마냥 요즘 저희집 아이들도 제 요리책을 보면서 “엄마, 이 요리 해주세요.” “엄마, 집에서도 이 도시락처럼 먹고 싶어요.” “엄마, 두리안 김치 먹어보고 싶어요.”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정말 무서워요. (얘들아, 제발 그.. 그만..)





family tradition이라... 뭐가 있을까요. 부엉이 할머니 같은 것은 없지만, 주말에 함께 영화나 TV를 같이 보곤 하죠. 밖으로 나간다면 물론 가족 여행을 가거나 맛집 투어 정도를 다니긴 합니다만, 그보다도 저희 온 가족이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주말이면 다함께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실컷 책 구경을 하고, 가장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챙긴 후에 산책을 가는 겁니다.

한참을 걷고 난 뒤에 우리가 좋아하는 잔디밭에 앉아 간식을 먹고, 가져온 책을 읽는 거죠. 낮잠을 자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산책 나온 강아지들 구경도 하고, 천변의 새들 구경도 하고, 그러다가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주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온 가족이 모두 느긋하게 즐기는 그 시간을 아이들도 가장 오래 기억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서 봄이 와서 따뜻한 햇살과 다 함께 또 그런 시간을 누리고 싶어지네요.



담화님이 소개해주신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이라는 책은 표지가 무척 예뻐서 저도 한참 보았습니다.  부엉이 삼남매를 보니 담화님은 귀여운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이 가능하실 것 같아요. 물론 그 외에도 그 댁의 아기자기한 모든 것들이 다 증명하고 있지요.  


오랜 세월이 지나 담화님이 다른 세상으로 가신 후에 누군가가 담화님의 평전을 써준다면, 더 정확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또 사랑을 담은 시선으로 봐주겠지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두신 부엉이 삼남매며 레시피 카드며, 예쁜 손뜨개 작품들과 독서노트며 작품들 사진을 곁들여 말입니다.





제가 지난 주부터 내내 붙들고 있는 책들이 바로 평전들입니다. 사실 한 권은 미처 다 못 읽었지만, 꼭꼭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백석 평전》《시간의 압력》이라는 책 두 권입니다.


담화님, 평전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평전 속 주인공에 대한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 감탄과 경외하는 마음이 독자인 저에게도 스르륵스르륵 전염된다는 겁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백석’이 얼마나 매력이 있는지, 얼마나 능청맞은 애인인지, 얼마나 순수한지 느끼게 되는 거죠.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는 희뿌연 책 속의 인물에서 점점 가까이 다가와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아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나쁘게 말한 기록이라도 보게 되면 ‘어머, 왜 이래?’하며 한쪽으로 치켜뜬 눈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죠.


심지어 《시간의 압력》에는 열 명의 중국의 문호들이 나오는데요... 조조, 이백, 사마천 외에는 제가 이름도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상적인 문장가이며 문학적인 생을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글쎄. 동네 오빠 정도는 아니어도, 추억 속 어릴 적 선생님 정도의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요. 참 이상도 하죠.




그 중에서도 《백석평전》 얘기를 좀 해볼게요. 이 책은 너무나 섬세하고 디테일해서 이 레터에 옮겨두고 싶은 글들이 정말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슬퍼지니까 청년 백석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100권 한정으로 출판되었다는 백석의 <사슴>에 대한 김기림의 1936년 1월 29일의 서평을 조금 옮겨 볼게요.


녹두빛 ‘더블 부레스트’를 젖히고 한대의 바다의 물결을 연상시키는 검은 머리의 ‘웨이브’를 휘날리면서 광화문통 네거리를 건너가는 한 청년의 풍채는 나로 하여금 때때로 그 주위를 ‘몽 파르나스’로 환각시킨다. 그렇건마는 며칠 전 어느 날 오후에 그의 시집 ‘사슴’을 받아 들고는 외모와는 너무나 딴판인 그의 육체의 또 다른 비밀에 부딪쳤을 때 나의 놀램은 오히려 당황에 가까운 것이었다.

표장으로부터 종이. 활자. 여백의 배정에 이르기까지 그 시인의 주관의 호흡과 맥박과 취미를 이처럼 강하고 솔직하게 나타낸 시집을 나는 조선서는 처음 보았다.  (중략)

시집 ‘사슴’의 세계는 그 시인의 기억 속에 쭈그리고 있는 동화와 전설의 나라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실로 속임없는 향토의 얼굴이 표정한다. 그렇건마는 우리는 거기서 아무러한 회상적인 감상주의에도, 불어오는 복고주의에도 만나지 않아서 더없이 유쾌하다. (중략)

그 점에 사슴은 그 외관의 철저한 향토 취미에도 불구하고 주책없은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명료하게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는 것이다. (중략)

그가 가지고 온 산나물은 우리들의 미각에 한 경이임을 잊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이 아담하고 초연한 ‘사슴’을 안고 느낀 감격의 일단이나마 동호의 여러 벗에게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중략). p.95~97



녹두빛 더블브레스트를 입고 향토음식을 시에 등장시키는 이 모던 보이에 대한 재미있는 평이 또 하나 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이면서 소설가인 이선희가 이런 짧은 글을 남겼어요.



“최신 제품의 시인 백석 씨는 외모는 모던보이 종족에 속하시나 시상은 옛날로 돌아가 뿌리를 박고 계시답니다. ‘로버트 번즈’를 생각게 하는 향토시인이라고 하면 어떨는지요. 증나물, 돼지비계, 거름뎅이, 잎담배 – 현대가 상채기를 내지 않는, 우리들의 살림살이를 묘하게 노래하셔서 즐겁습니다.” p.122



최신 제품의 시인이라면서도 현대가 상채기를 내지 않는 우리의 살림살이라니… 아마 이 짧은 문장이 가장 단적으로 백석과 그의 시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좋은 평만 있었던 것은 아니죠. 그러나 의견이 분분했던만큼 그의 시집 ‘사슴’은 문단에 큰 충격을 남긴 시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향토성을 놓치지 않는 모던보이라… 심지어 결벽증도 있어 전화기를 손수건으로 잡고, 수화기도 멀리 하고 통화를 하던 분이 어학적 재능만큼은 놀라워서 영문학 번역도 하고, 러시아어도 잘 하셨다니.. 그저 놀랍습니다. (알고 싶다, 이 남자.)


그런 그 분이 연인인 자야에게는 얼마나 능청맞으신지 정말 참으로 연애를 잘 하신 분 같습니다. 자야가 쓴 《내 사랑 백석》 에 남겨둔 그와의 추억담을 옮겨볼게요.



플랫폼까지 함께 가서 당신이 기차를 기다리는 것을 보노라니, 나는 너무도 춥고 또 발이 꽁꽁 얼 듯이 시려왔다. 나는 견디다 못해 당신께 작별의 손을 흔들고 기차가 오기도 전에 먼저 돌아서 총총히 왔다.

돌아오는 길에 달은 싸늘히 비치고 길에 쌓인 눈은 얼어서 발걸음을 옮길 적마다 바작바작 소리를 내며 허전한 내 마음을 채웠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웬 남자 발걸음 소리가 버적버적 따라왔다.


그리고 별안간,

“자야!”

하고 어깨를 감싸왔다. 바로 당신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에요?”

하고 짐짓 화가 난 목소리로 뾰로통하게 되물었다.

이럴 때 당신은 꼭 활동사진(무성영화)을 돌리는 변사처럼 구성지고 재미있는 말투로 변명하는 것이었다.


“기차는 이제껏 아니 오고, 당신은 혼자 종종걸음으로 달아나고, 바람은 쌩쌩, 달은 휘영청 밝은데 발은 시리고... 그러니 오늘 밤으로 즉시 돌아오면 이천리가 득이잖아? 그래서 되짚어온 거야!” p.169



백석의 연인이었다는 자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길상사에 다녀왔던 일이 생각나더군요. 그들의 연애가 이렇게 추억이 방울방울(?) 기록으로 남겨져 있으니 이 또한 문학적인 삶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 생애를 누군가가 평전으로 남겨줄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자녀들이나 세발낚지 같은 지인들이라도 저를 잘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아! 그러기 위해서는 잘 사는 게 우선이겠군요.



저 이제 오늘의 저녁밥과 내일의 아침밥을 미리 해두러 가야겠습니다. ‘엄마밥’의 추억을 남겨야할 것 같아요.



그럼 담화님도 평안하시길.

그리고 지난 주에 뭐 읽으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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