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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화 Jan 25. 2024

형량의 적정성

<매스커레이드 게임>

담화님

안녕하시렵니까..



메일에서 저를 꼭 울리고야 말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죠. 눈물이 안 났습니다.


되려 타인의 아픔을 담은 글들이 갖는 효용에 대해 생각하며 ‘어른이라면 읽어야 하지. 아니, 읽고 그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하며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며 살아야지... 그래야 어른이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담화님 말씀대로 누군가에게 읽기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읽으면 좋다. 한 번 읽어봐’라는 정도의 권유는 해도 괜찮겠다.. 생각도 하고요.


물론 ‘보이지 않는 손‘에서는 아담 스미스를 잠깐,,, 네... 뭐 그랬습니다.

아무튼 담화님의 편지 잘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오늘도 비가 오고 하루 종일 흐려서 조금 더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벌써 재작년의 일이 되었네요. 이태원 사건이 일어났던 즈음에는 날씨가 조금 우울했던 것 같아요. 제 기분이 우울했던 걸까요. 그 때의 저는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지인 하나 얽힌 이는 없었지만, 날선 글들이 오가는 게 무척 슬펐다고 해야 할까요..


그 가을과 겨울 내내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이 리한나의  Lift me up입니다. 영화 <블랙 팬서>의 주인공이었던 채드윅 보스만을 기리며 만든 곡이죠. 이런 곡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저는 채드윅 보스만을 (개인적으로) 모르는데, 왜 아는 것 같이 슬펐을까요. 그건 아마도 비록 연기이지만, 그의 웃음과 울음과 목소리와 몸짓과 또 그 어떤 모양새를 영화를 통해 보고, 알고, 익숙해졌기 때문일 겁니다. 이태원 사태의 희생자들은 모르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영상을 보면 꽤나 가슴이 먹먹했어요.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죠. 슬픔은 이렇게 상상이 가능한 형태로 다가올 때 더욱 크게 증폭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저는 《매스커레이드 게임》이라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었어요.

매스커레이드Mascarade는 《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매스커레이드 이브》, 《매스커레이드 게임》의 시리즈물 중 하나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언제나 추리물을 쓰면서도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삼고 있잖아요? 한 발은 소설에, 한 발은 사회에. 그렇게 균형을 잡고 글을 만들어 가기에 2023년 기준, 데뷔 38년 차인 그 분이 100번째 작품 출간이 가능했겠지요? 정말 어마어마한 작가입니다.



《매스커레이드 게임》에서는 범죄자에 대한 법의 처분, 즉 ‘형량의 적정성’을 소재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가족을 잃은 슬픔에 더하여 그 형량이 충분하지 않음에 향변도 하지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 유족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지요.


리벤지 포르노로 괴로워하다 생을 달리한 딸의 아버지, 집에 들어온 강도에게 어머니를 잃은 아들, 길거리에서 청소년에게 두드려 맞고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죽은 아들의 어머니, 그리고 약물 과다 복용 상태로 애인을 살해하였으나 그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이 각각의 사건에서 가해자들은 집행유예 혹은 지나치게 적은 형량을 선고받고, 그 이후에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피해자들이 하나씩 살해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형량의 적정성, 판례의 기준, 갱생의 효과 혹은 여지 등에 대해서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저는 이런 사건을 겪어보지 않았습니다만,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에서 과연 피해자가 받은 저 형량이 적당한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거든요. 이 걸 피해자 입장에서 보게 되니 더더욱 감정이입이 되어서 뒤로 갈수록 진지하게 숙고하며 읽게 되었던 것 같아요. (아 오디오북이라 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사건의 말미에 아들을 잃은 엄마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용서할 날을 기다렸다”라고요. 가해자가 반성하고 살아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죽어버려서 그의 죽음에 속이 시원하지도 않고, 천벌을 받았다고도 생각이 되지 않던 차에 죽기 전 그의 행방들을 알게 됩니다.


근데 전 이 대목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과연 가족을 살해한 가해자를 그냥 용서하는 것도 아니고, 용서할 날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인가.. 그걸로 마음의 짐이 내려놓아질 것인가...


인간은 지극히 이성적인 것 같아도 생각보다 감정적이지요. 어떤 선택의 순간이 오면 ’가성비‘를 생각하면서도 정작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고, 상대방의 사소한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도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인간이, 감정의 덩어리인 이런 인간이, 생을 뒤틀어버린 사건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자애롭게 용서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담화님이 적어주신 《시절일기》이 인용문이 떠올랐어요.



우리의 무능력한 사랑으로는 이제 그를 다시는 사랑할 수 없다. 그렇게 비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몸으로는 더 이상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먼 훗날의 어느 날, 우리에게 바람이 부는 저녁이 찾아오리라. 그때 우리는 가만히, 그저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다가, 문득 그 바람이 자신에게는 단 하나뿐인 바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70쪽




그리고 악에 대해서 잘 알지만 선한 것만 보겠다는 할머니처럼 저 또한 선한 것만 보고, 선한 것만 생각하며 고통과 슬픔에 대한 버퍼존을 만들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밝은 것으로, 좋은 것으로, 예쁜 것으로, 행복환 웃음으로 가득 채워진 버퍼존이요.






담화님은 저를 계절이 비유하면 여름이라고 하셨죠?

사실 제가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인데 가을씨가 점점 사라져가는 까닭에 여름으로 갈아타.... 아니야. 역시 여름을 좋아하진 않지만, 한여름의 청량함 같은 사람으로 살아보겠습니다.



담화님은요, 영국의 봄 같은 분입니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온갖 꽃들과 푸른 잔디가 선명한 봄이요. 아침에는 안개 꼈다가 오후에는 따뜻한 햇살이 가득했다가 저녁에는 약간 춥기도 하지만, 예쁜 꽃으로 만발한 봄이요. 가끔 사이코패스를 주인공 삼은 글을 쓴다고 해도 겨울은 결단코 아니에요. 화사한 봄처럼 살아주세요.


그리고 우리 생을 예쁘고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보아요. 뭐 가끔 사이코패스 같은 조각글 쓰시는 것은 재미라고 하시니 봐드릴게요. ㅎㅎㅎ 그걸로 재미있는 엽편 만들어주시면 저도 즐겁습니다. 문학의 재미를 잔뜩 꽃 피워주시길!!!!


내일은 한파라고 하네요.

그래도 미세먼지가 없다면 한파 정도는 봐줄 수 있습니다. 겨울은 원래 추운 거니까요.

추위를 뚫고 책 사러 사고, 빌리러 가시는 우리 담화님. 그래서, 지난 주에 뭐 읽으셨어요?





리한나의 lift me up 링크 걸어둘께요.

https://www.youtube.com/watch?v=Mx_OexsUI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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