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화 Feb 01. 2024

가끔은 묘비명 문구를 고민하자.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출생: 19NN년 11월 22일

사망: 미정



언제였던가요. 며칠 전 화요일인가에 제가 종종 가는 스타벅스 2층에 앉아 한참 책을 읽다가 창 밖을 바라보았더니 어디선가 주차위반 단속 차량이 마치 뱀처럼 스르륵 조용히 다가오고 있더군요. 그 곳은 ㄷ자로 큰 건물들이 빼곡히 서 있고, 가운데 서른 여섯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공영주차장이 있어요. 그러니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의 상가에 방문한 사람들이 주차비 아끼려고 골목에 무단불법주차한 것은 안 봐도 뻔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주차위반 단속차량은 골목으로 들어와서 무단 주차한 차량들 뒤에 잠시 섰다가(아마도 촬영 중인 듯) 다시 이동하고, 또 섰다가 이동하면서 꽤 여러 번(사실 10번 정도) 무단 주차 차량들을 찍고 갔지요. 저는 사람들이 상가에서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가 꽤 궁금했는데, 단 한 명도 뛰어나와 차를 뺀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들 단속 차량이 지나간 후에야 유유자적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나와서 짐을 싣고 떠났지요.


그 순간 저는 그들의 뒤통수를 보며 “음하하하 나는 당신의 미래를 안다. 3주 후에 당신들은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주차위반 딱지를 받겠지!!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변태인가...)



그래요. 아주 작은 미래의 일부를 알고 있다는 것은 이런 쓸데 없는 우월감 혹은 안정감(?) 따위의 기묘한 기분을 안겨줍니다. (뭐 그래봤자 누구의 삶에도 영향을 주거나,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만...)

생각해 보니, 예상 가능한 미래에의 지표나 지점이 있다며 훨씬 삶이 자신 있을 것 같기도 해요. 그건 마치,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이 잘 나오고, 고층에서 떨어지면 죽고,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열심히 하면 건강해진다라는 걸 아는 것처럼 말이죠. 소박한 그러나 거의 확신에 가까운 예상치가 있다는 건 썩 좋은 카드패를 갖고 있는 셈이죠.




지난 주에 여러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만, 오늘은 이 책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부고 전문가가 전하는 삶과 죽음의 의미라는 약간 거창한 부제를 갖고 있지요. 사실 저는 신문에서 부고를 읽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단 말이죠. (궁금해서 좀 찾아보니 아니 그 옛날 명작인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던 라이언 오닐Ryan O’Neal이 세상을 떠나셨군요.... 세상에.... 그런데 배우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졌지만 사생활로도 꽤 유명했다고 써 있군요.. 떱... RIP) 그러니 부고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길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쓰는지 잘 몰라서 꽤 궁금했어요.


물론 이 책에는 부고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잘 쓴 부고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내용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이야기를 부고의 형태로 정리해보는 것의 의미’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말이지요. 저도 미래의 좌표를 세워두고자 부고를 한 번 써보려고 했단 말이죠. 그런데 말이죠.. 뭘 쓰죠? 아 물론 제 삶의 궤적에 놓여진 객관적인 스폿과 팩트는 있습니다만, 과연 거기에서 나는 만족하였는가? 혹은 원하던 삶을 살았는가? 목표로 삼았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기록에 남겨둘 만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대해서는 고민이 되더란 말입니다.



담화님은 어떤 부고를 쓰고 싶으신가요?

저는 짧고 굵게, 인상깊은 부고를 쓰고 싶은데 말입니다.

회귀라면 어떤 시나리오를 써볼 수 있을 법도 한데, 저의 현생이다 보니 전혀 그게 안 되네요? 객관적인 지표들은 있으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스스로의 생을 바라볼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발견하였습니다. ...

그래도 좀 생각해봅니다.


장례식은 적어도 울음 바다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웃고, 추억 하나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앗,, 이미 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니.. 소박하게 해야겠군요. (이 와중에 아들이 엄마 나이를 물어봐서 갑자기 슬퍼짐) 이대로라면 저는 선산에 묻히겠지만, 수목장으로 하고 싶네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웠으면 좋겠어요. 재즈와 초콜렛, 커피와 파스타, 맛있는 빵과 버터가 종류별로. 한켠에는 남편과 아들을 위한 국밥도 두고요. 아이들이 건강한 어른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다면 좋겠어요.




아, 맞다. 근데 우린 지금 장례식이 아니라 부고 얘길 하고 있었죠. 아니 제가. 그런데 부고를 쓰려고 보니 참 재미가 없는 인생이란 말이죠? 전 진짜 FM으로 살아온 데다 지금도 뭐 거의 그런 표본적인 인간으로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재미를 좀 추가하고 싶은데 마땅치가 않습니다.


제가 봤던 가장 재미있었던 부고(?)랄까 장례식의 인삿말이 생각납니다. 고인이 되신 분은 꽤나 저명하신 분인 것 같은데, 부인되는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남편은 대단한 방구쟁이였다. 한 번은 자다가 자기 방귀소리에 스스로 화들짝 놀라서 깬 적도 있다. 그가 가고 나서 더 이상 그 소리에 잠에서 깨지 않는다.” 뭐 이런 이야기였는데 너무 웃기면서도 애잔한 마음이 들었지요. 그리고 그 방귀소리마저도 고인의 일부분으로 사랑했던 아내의 마음도 진하게 느껴졌고요.




그러고 보니 첫 직장 사수였던(지금은 친한 언니인) 분께서 하신 아주 오래 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필화, 너는 되게 완벽하고 꼼꼼하게 생겨가지고, 항상 2%가 모자란다.” 라고요. 네, 저는 이 말을 부고에 넣고 싶어졌어요.




출생: 19NN년 11월 22일.

사망: 미정

완벽하고 꼼꼼하게 생겼지만, 2% 모자람이 있었던 필화.



라고 적어보겠습니다. 사실 2%뿐이겠습니까마는,, 그 모자람이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남편에게는 늘 ‘나의 그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시오.’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고에 채워 넣을 재미있는 인생은 이제부터 만들어 가보겠습니다. 좀 늦은 듯도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지나온 날을 돌이킬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마침 책에도 이런 구절이 나오거든요. “부고마저 재미없다면 죽는데 무슨 낙이 있을까”라고요.


지난 번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자기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이라는 책에 이어서 또 이런 류의 책을 접하게 된 것도 참 기이하긴 합니다만, 정리가 필요한 나이가 되었고, 새로이 남은 날들을 꿈꾸어 나가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오늘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요. 중요한 겁니다. 밑줄 쫙!입니다.

주차비를 아끼지 말자!



그리고, 에 또..

지난 주에 뭐 읽으셨다고요? 또 재밌는 걸 읽으셨겠죠?


답장 기다리고 있을께요~


P.S. 답장이 너무 늦어져서 미안합니다.

이전 11화 판타스틱 포스트모던 액션 어드벤처란 이런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