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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화 Feb 05. 2024

도서관, 너는 누구니

《도서관은 살아 있다》

계절감이 희박한 날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 주 잘 보내셨는지요.


 


필화 님의 답장을 옆에 두고 커피를 홀짝거리며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어떤 부고를 쓰고 싶냐, 고 물으셨지요. 저는 레퍼런스 찾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므로 실로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을 가져왔습니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책날개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답니다. “당신은 어떤 문장으로 남고 싶나요?”


와, 뭔가 대단한 일을 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래도록 오르내리는 건 그것대로 멋지겠지만, 스스로 어떤 ‘문장’으로 남고 싶은가를 한번쯤 숙고하며 남은 삶의 방향키를 잡아보는 것도 근사하겠어요.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한 줄의 부고는 아니고, 부고 기사를 모은 책입니다. 수많은 유명인의 죽음을 알리는 글들이 빼곡하게 실려있는데, 길어야 두 장, 보통은 한 장 정도에 간략히 정리되어 있는 한 사람의 일생을 읽고 있노라면 어쩐지 아득해집니다.


 


재미있는 대목 하나 인용해 드릴게요. 저도 참 좋아하는 분인데,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부고 기사 중 한 부분입니다.


 


짖궂은 장난기로 잘 알려진 히치콕이 가장 즐겼던 장난은 엘리베이터 동승객에게 일부러 큰 소리로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듣게 한 다음, 가장 중요한 대목이 이제 막 나오려는 찰나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버리는 것이었다. 잔뜩 기대하다가 실망하고 있을 그 동승객을 뒤로 한 채 말이다. -p.346


 


아, 이 책이 제가 지난주에 읽은 책은 아니었어요.


 


그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필화 님에게도 역시 최애 장소 중 하나는 도서관이겠지요? 그럼 지금까지 가본 도서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서관은 어디인가요?


 


제가 일평생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도서관은 당연히도 지금 저희 아파트 바로 옆에 위치한 동네 도서관이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도서관은 2019년에 거주했던 캘리포니아의 SM 카운티에 있는 공립도서관이었습니다.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갖춘 도서관이었어요.


제가 그곳을 유별나게 좋아했던 이유는 우선 사서들이 이용자와의 대화를 몹시 기꺼워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도서관에서는 정말 보기 어려운 모습이죠.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마는 일단 사서 선생님들이 계시는 곳은 이용자들로 하여금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부르지 말아주세요’라는 느낌이 그득하도록 폐쇄적이니까요. 물론 그게 사서들의 잘못이 아니란 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대출은 전자대출대에서 했습니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서가를 뒤지거나 혹은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사서에게 물어볼 수 있었어요. 심지어 살짝 개인적인 이야기가 섞여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요(그러고 보니 이런 일도 있었네요. 인터넷 회선 때문에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뭘 알아본다고 대기시간이 길어지니 상담사가 너도 이민자니? 어디서 왔어? 아 한국! 나 케이 드라마 되게 좋아하는데. 최근에 넷플에서 뫄뫄뫄를 봤거든~ 너는 그걸 안봤다고? 오마이... 어떻게 그런 대작을 안봐? 전화 끊고 인터넷 해결되면 당장 봐! 이런 얘기를 끝도 없이 하는 거예요... 전화를 끊고 므ㅏ... 하는 기분이 되더군요. 어, 음, 여기는 이런 게 자연스럽구나. 나쁘지 않지만 몹시 당황스럽다...) 그 낯선 친절 사이사이의 딱 적당한 다정함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제게 그곳 도서관의 기억은 줄기차게 빌려다 봤던 책들 사이사이에 상냥했던 사서들과의 추억과 항상 함께 있습니다. 그건 언제 꺼내봐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따뜻한 기억이에요.


 


줄기차게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 그렇죠. 지난주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도서관은 살아 있다》, 이 책을 소개해 드리려 해요.


저자이신 ‘도서관 여행자’님은 사서로 일하셨던 분입니다. 그것도 제가 거주했던 캘리포니아에서요. 그러니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요.


 


매일 아침 출근도장 찍듯 정보 데스크를 찾아오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용자들이 가끔씩 그립다. 도서관에서 『밸류 라인 투자 조사서』와 『배런스』같은 금융 정보자료를 빌려가시며 주식 이야기를 해주셨던 할아버지 이용자, 사서들에게 종종 좋은 책을 추천해주셨던 책덕후 할머니 이용자, 벽난로 앞에서 코를 골며 조시던 할아버지 이용자.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도서관에서 책 정리 자원봉사를 하셨던 할머니 이용자다. 파킨슨병을 앓고 계셔서 잔걸음으로 걷고 손을 심하게 떨던 어르신은 책을 들 수 있는 기운이 남아 있을 때까지 도서관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셨다. -p.63


 


‘기억’은 공공도서관 서비스의 중요한 키워드다. 치매 노인 이용자들을 위한 ‘메모리 키트’는 추억 치료와 인지 활동 향상을 돕는 도서관 대여 서비스다. 주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영화, 음악, 도서를 주제별로 선정한 자료를 모아둔다. ‘메모리 랩lab(레트로 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은 버림받은 아날로그 매체에 잠들어 있는 추억을 꺼내주는 공간이다. 카세트테이프나 LP를 MP3로, 캠코더 영상을 저장하는 8밀리 테이프를 디지털 파일로, 비디오테이프를 DVD로 변환하고 네거티브 필름, 사진, 문서를 스캔할 수 있는 장비를 제공한다. -p.122


 


사서들이 쓴 책은 이 책 말고도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껏 읽어본 도서관 관련한 에세이들 중에서 제가 이 책을 정말 인상 깊게 본 이유는, 저자의 경험이 직업적 경력에서 나오는 깊이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다양하고 ’실하게‘ 곁가지를 치고 있음이 글에서 너무 잘 보이기 때문이었어요.


 


인격적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가끔씩은 드라마틱하고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품어주는 도서관, 도서관 장서들의 운명, 도서관 사서들의 기쁨과 슬픔. 책을 둘러싼 모험, 세상의 모든 사서와 독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투티tutti. 저는 그런 것들을 이 한 권에서 읽었습니다. 무엇보다도 200페이지가 안 되는 가뿐하고 즐거운 읽기가 될 것이며, 온갖 유용한 도서관에 관한 정보는 덤이겠죠.


 


그리고 이건 아마 독자 태반이 알아보지 못할 디자인적 요소가 아닐까 싶은데(의외로 다들 알아보셨을지도) 책의 본문 편집 디자인에는 깨알같이 귀여운 디테일이 숨어 있다는... 정보를 하나 알려드리도록 하죠. 이걸 발견하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낯선 출판사였는데, 이 책 하나로 엄청 인상이 좋아져서 최근 연달아 이 출판사의 책을 두 권 더 읽었거든요. 두 권 다 정말 좋았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소개해 보려 합니다.


 


Happy Reading, Everyone!




#도서관탐험대 #사서가품은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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