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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화 Feb 12. 2024

육지라면 지도, 바다라면 해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

안녕, 필화 님.


제가 근래 답장이 계속 늦었기 때문에, 오늘은 작정하고 바로 답신을 쓰겠다 마음먹고 이렇게 앉았답니다! 제게 끝끝내 비밀로 하셨던 그 작가가 바로 옌렌커였군요. 제가 거의 매일 만나는 책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최근 찬호께이의 《13.67》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거든요? 제가 추천하는 책들을 열심히 읽어주는 친구인지라, 이 책 역시도 바로 읽어주었는데 지금껏 추천했던 그 어떤 책들보다도 허들이 높더랍니다. 이유인즉슨 바로 이름 때문이었죠. 관전둬, 뤄샤오밍, 스번성, 위융롄 등등. 이름이 너무 안 읽히니까 그것 자체가 진입장벽이 되어 이야기를 읽어나가는게 힘들다고 호소하더군요. 몹시 흥미진진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제게도 힘들었던 기억인지라 열렬히 호응했었죠. 딱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날, 저는 필화 님의 메일을 받았을 뿐이고, 옌렌커는 또 얼마나 어려운 이름을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썼을까 살짝 두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셴 할아버지라니! 이 얼마나 직관적(인가?)이고, 간명하고, 인상적이며 외우기 쉬운 이름인지요! 일단 등장인물 이름에서 별 넷.


 


인용해 주신 문장들을 보노라니 왜 제가 이 작가를 분명코 좋아할 것이라 호언장담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네, 제가 공감각적인 문장을 쓰는 작가에게 금사빠 기질을 곧잘 발휘하는 게 사실입니다. 부정 못하겠네요. 곤히 잠든 아기의 숨소리 같은 소리로 자라는 옥수수밭이라니요. 엄청난 문장이네요. 이건 제가 최근 읽었던 제임스 스콧 벨의 《소설 강화》에 나오는 다음의 문장을 연상시켰어요.


 


“나는 산문의 문체에도 마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튀지 않는 ‘시’를 소설에 도입하자는 말이다. 소설의 단어와 구절도 노래처럼 들렸으면 좋겠다.” 맥도널드는 이 ‘산문 형태의 시’를 자신이 쓴 모든 소설에 구현해 냈다. -p.230


 


바로 옌렌커의 문장을 두고 한 말 같지 않은가요. 제가 손마디 힘이 없어서 소리가 잘 안 나긴 하는데 핑거스냅을 튕기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짝꿍 같은 말이죠.


 


맞는 말씀이에요. 버저비터... 하니 한때 잠실에 바쳤던 제 청춘이 생각나는군요. 큭... 네 그런 게 없더라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요. 우리 끝까지(그게 언제냐) 한 번 잘 해봐요.


 


자, 그건 그렇고.


제가 읽은 책 말이죠. 으음. 사실 소개하고 싶은 책이 하나 있긴 한데, 불과 2주 전에 일본 작가의 소설을 소개한지라 또 일본 책을 소개하기엔 어쩐지 공평치 않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과연, 이 책을 이야기하는 게 좀 눈치없는 선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일같이 몇 년째 신간스캐닝을 하면서 작법서의 출간량이 어마무시하게(네, 정말 많습니다. 유의미하게 많아요)늘어난 것을 보니 이 책을 소개하는 것도 썩 나쁘지 않겠다 싶기도 하네요.


 


어슐러 르 귄의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꽤 있을지 몰라도, 그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의 극히 소수이지 싶어요. 《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를 소개합니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결국 서사이므로, 연습글을 쓸 때 정적인 장면이 아니라 사건이나 활동을 서술하도록 해 보라. 무슨 일이든 일어나야 한다. 쿵쾅거리는 ‘액션’일 필요는 없다. 슈퍼마켓 복도를 걸어가는 행동이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에 대해 써도 된다. 단, 시작점과는 다른 곳에서 끝나는 움직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서사는 그런 것이다. 흘러간다. 움직인다. 이야기란 변화다. -p.11


 


이 책은 실로 실용적인 지침서입니다. 연습 과제가 잔뜩 들어 있고, 작가로서 항상 벼리고 있어야 할 유용한 도구들과 기술에 대한 안내서라고도 할 수 있죠.


다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영어’라는 언어를 도구적으로 잘 다루기 위한 (당연한) 가이드로서 쓰였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콜론과 세미콜론, 쉼표를 의미상의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감각을 연마하는 방법이라든가, 시제, 분사구문 등의 올바른 사용법 같은 것 말예요.


그러나 ‘읽을 만한’ 이야기를 ‘제대로’ 쓰는 법을 훈련하기 위한 안내서로서는 충분히 훌륭합니다. 제가 지금껏 봐 왔던 작법서들 중에서 책에 나와 있는 훈련법을 실제로 따라 해 보고 싶어지는 것으로는 두 번째였어요(분명 궁금해하실 테니까 말씀드리죠. 첫 번째는《넷플릭스처럼 쓴다》였습니다...).


 


저는 작가마다 인장처럼 사용하는 도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구두점일 수도 있고 특정한 모티브일 수도, 반복되는 패턴일 수도 있겠죠. 내가 일부러 어떤 시그니처를 만들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처럼 쌓인 그들의 작품에서 절로 만들어진 일종의 클리셰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클리셰가 아니라, 그 작가에서만 읽을 수 있는 작가적 클리셰인 거죠. 생각만 해도 동경하는 마음이 절로 듭니다.


그러나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그런 ‘시그니처가 있는’ 작가가 되기까지 그분들이 묵묵히 걸어 올라갔을 텍스트의 산을 생각하면 한편 아득해집니다.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읽기도 만만찮게 부지런히 읽었을 게 당연하니까요. 그렇죠, 우리가 뭔가를 하고 싶다면, 이루고 싶다면 그 정점을 지탱하는 반대편도 그만큼 끌어올리는 게 당연한데... (생략한 말이 무엇인지 아시리라)


 


제목과 어울리는 곡 하나 걸어둘게요.


https://www.youtube.com/watch?v=X4ssB8n8yaI



 


사실 이건 조타操舵 보다는 관망觀望하는 느낌의 멜로디이긴 합니다만 한창 인생이라는 바다에 뛰어들어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가장 헤매던 시기에 많이 들었던 음악이었기 때문에 끼워넣은 거예요. 그 시절 마음은 결코 이토록 평온하지 않았는데 좋아한 음악들은 고요와 평온함 그 자체네요.


 


역시 세상은 재미있어요. 할 것도 많고요.

더 많이 공부하고 싶고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더 많이 하고 싶고 세상에 좋은 것도 더 많이 알리고 싶고, 그런 의욕이 봄볕 맞은 목련 봉오리처럼 토실하게 부풀어 오르는, 그런 기분 좋은 겨울 오후에 쓸데없이 말이 길어진 편지를 이만 줄일까 합니다. 필화 님은 지난 주에 뭐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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