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님 안녕~
‘봄볕 맞은 목련 봉오리처럼 토실하게 부풀어오르는...’ 이라니.. 참으로 그 모양새가 연상이 되어서 빙긋 웃었습니다.
전에 살던 집은 주택이었는데, 봄볕이 따뜻해지는 시기가 되면 뒷집에서 자라던 목련나무가 아침 햇빛을 받으면서 하얗고 통실하게 부풀어 오르곤 하였어요. 거실 소파에 앉아 담장을 넘어온 그 예쁜 목련을 보면서 ‘예쁘다... 저 예쁜 꽃이 지면 날이 더 따뜻해지겠지..’하고 설레었던 날들이 그리워지는군요. 어느 날 갑자기 뒷집 할머니가 목련 잎 떨어지는 거 청소하기 힘들다고, 아침 7시부터 나무를 베어버리시는 참극이 벌어져서 이젠 영원히 추억일 뿐입니다.;;;;
작가마다 인장처럼 사용하는 도구가 있다니! 너무 좋은 표현입니다.
저도 몇몇 작가들에게서 그런 걸 느끼곤 해요. 용어로써 표현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작가의 시선에서 느끼기도 합니다. 어떤 메시지를 담는지, 어떤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지, 문장의 색이 어떠한지... 특정 작가의 그림자 같은 흔적들을 자꾸 접하게 되면 독자인 저는 일면식도 없는 작가가 친근해지고, 어쩐지 내가 아는 사람 같고,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지는 (나만의) 내적친밀함이 생기곤 하죠.
작가와 독자 사이에 그런 브릿지가 점점 선명해진다면, 그 작가는 아마도 평생 행복하리라 생각합니다. 본인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어디에 발을 내딛어도 응원해 줄 애정 어린 시선들이 있음을 아니까 말이죠. (팬덤인가… 나도 필요한데, 내 생에 대한 이런 응원…)
이번 주에 저는 <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담화님도 읽지 않으셨을까 싶네요.
요즘 비슷한 종류의 책들만 읽어온 까닭에 색다른 소재의 책을 읽어보고자 도서관에 들러서 추리소설 칸을 뒤지고 있었지요. 이 책의 시작부터 주인공들이 은행강도의 인질이 되길래 저는 뭐 ‘오~ 그렇군. 대강 그런저런 내용이려나..’ 하면서 집어들고 왔거든요... 네... (과거의 나는 왜 이리 치밀하지 못하였던가...) 충격적이게도 이 소설은 재작년에 치를 떨며 읽었던 <완벽한 아이>와 <The Educated> 못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다행이 자전적 이야기는 아닌 듯 합니다. 히유….
이 소설은 말이죠...
헨젤과 그레텔이 마귀할멈(?)이 흩뿌려놓은 과자를 집어먹으며, 홀린 듯이 과자집으로 가게 되듯이, 작가가 던져둔 먹이를 주워 읽으며 다음 먹이글은 어디에 있나.. 를 찾으며 읽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행간에 담긴 달콤한 독에 가슴이 시릴 것이 뻔히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그 끝인 과자집에 가서 결말을 보고 싶게 만들더군요. 줄거리를 좀 털어볼게요.
말씀드렸다시피 주인공은 은행에 갔다가 인질이 되고 맙니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처음으로 진정한 가족이 되어 준 전 남친이자 현 친구인 웨스, 그리고 현 애인인 아이리스를 ‘구해내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던 주인공 노라는 범인에게 ‘돈이 될 수 있는’ 자신의 실체를 까발립니다. 나를 데리고 가면 700만 달러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노라는 과거 사기꾼이었던 엄마의 사기 계획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받곤 했습니다. 성격과 외모, 이름 모두를 말이죠. 처음엔 레베카였고 그 다음엔 사만다, 그리고 헤일리였다가 케이티가 되었고, 노라가 되기 전에는 애슐리로 살아왔지요.
애슐리였던 그녀는 양부인 레이먼드에게(그는 어둠의 세계에서 몸을 담은 자입니다.) 총을 쏘고 그의 손가락을 잘라 핸드폰 인증에 썼던 전력이 있으며, FBI에 그의 모든 정보가 담긴 외장하드를 넘겨주어 그를 감옥에 가둡니다. 이 굴욕을 참지 못한 레이먼드는 그녀에게 현상금 700만 달러를 걸었지요.
그러나 노라는 언니 리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인해 정보제공자에게 주어지는 신변보호 프로그램을 피해 시골마을로 숨어들었고, 그녀의 정체는 법정에서도, 신문지상에서도 드러내놓고 밝혀진 적이 한 번도 없죠. 그야말로 허상이고 유령같은 존재인 노라...
노라는 은행 강도와 머리싸움 못지 않게 몸싸움도 해야 했으며, 여자친구인 아이리스에게 자신의 실체를 밝혀야만 했습니다. 정체를 거짓으로 해두어서야 그 관계를 이어나갈 수는 없으니까요.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소문으로만 무성한 애슐리 킨이었던 자신에 대해서, 한 때 레베카였고, 사만다, 헤일리, 케이티이기도 했던 자신에 대해, 그 과거의 모든 일들에 대해..
정말 그야말로 흥미진진합니다. 구성도 재미있고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종횡무진하지요. 이 까닭에 이 이야기는 netflix에서 2021년에 영화화도 되었습니다. 원작의 제목은 The Girls I've been인데, 저는 이 제목이 더 함축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노라의 엄마, 그녀의 가스라이팅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읽을수록 가슴이 시리어서 여러 번 책장을 덮게 됩니다. ‘아 나는 왜 또 이런 책을 골라왔는가..’ 후회도 하면서요.
아이들을 참으로 부모의 인생에 휘둘리는 존재입니다. 부모의 행적으로 인해, 목표가 어딘지도 모르게 스스로의 인생의 궤적을 타의적으로 그려가게 되는 정말로 가볍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지요.
“정말 넌 누구야? 네 이름도 모르고 죽기는 싫어.” 아이리스가 물었다.
다시 돌아온 진실게임.
하지만 모든 게 불타버리기 30초 직전에도 나는 그 이름을 소환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을 정의하는 진실을 말할 수는 있었다.
"난 더 이상 그 아이가 아냐. 내가 그 아이였던 적이 있었던 건지도 자신할 수 없어."
(중략)
“나는 리 언니의 동생이야. 나는 웨스의 베프고, 나는 우리 엄마의 딸이야.”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게 너무 싫었지만 그래도 계속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생존자고, 나는 거짓말쟁이에다가 도둑이고 사기꾼이야. 난 그래도 여전히 널 사랑하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이길 바라. 왜냐하면 난 널 정말로 사랑하니까.” p. 342~343
웨스가 아이리스의 오른쪽에, 내가 아이리스의 왼쪽에 누웠다. 그렇게 우리 둘은 마치 괄호처럼 아이리스를 품었다. 아이리스가 아주 소중한 문장 구절이라도 되는 양 무릎을 구부리고 손까지 쭉 뻗어서 아이리스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는 세 사람이 괄호와 그 안의 비밀스러운 문장 같은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세상이 다시 흔들리고 기울어지고 있었지만, 이제 내게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가 싸우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그건 나 혼자 싸우는 것과 매우 다른 것이었다. p.424
사기꾼의 딸, 가스라이팅 당하고 자랐으며, 자아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으며, 엄마의 사기에 도구로 살아온 여자아이. 엄마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길 때마다 성추행을 당해도 엄마의 묵인 때문에 도움을 청하지 못했던 승냥이의 먹이였던 여자아이.
그러나 책을 덮을 때가 되어서야 이 아이가 살아남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생긴 아이라는 것을, 그리고 얼마나 강인한가를 깨닫게 되었지요.
그래요. 아이는 부모의 그늘과 뒷모습을 보며 자라고, 부모로 인해 휘둘릴 수밖에 없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되어요. 지켜야 할 것이 생겼을 때 말이죠.
담화님 댁은 이미 자녀들이 많이 컸습니다만, 저는 아직도 갈 길이 머네요. 제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순진무구한 어린이로 살아주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과한 욕심이겠지요. 언젠가는 지켜야 할 것이 생길 때 잘 지켜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지원하고 지켜주며 키워야겠습니다.
다음 편지에는 지난 주에 뭐 읽으셨는지와 더불어
육아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진짜로.. 아이니드헬프)
덧. 해피구정!
The Girls I’ve been_Official Traile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