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
겨울을 벗어나려는 2월의 변덕을 온몸으로 겪어내려니 몸이 고달파지는 날들이 이어지네요. 어찌, 우리 봄날 새싹처럼 강인하고 활기찬 어린이들과 잘 지내고 계실까요. 저는 아무래도 이젠 가끔 생각난 듯이 영양제 앰플을 꽂아주면 되는, 제법 잘 자란 묘목들만 돌보면 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편해 보이기는 합니다만 꼭 그렇지만도 않음을 저의 한맺힌(?) 설움 토로로 대강은 짐작하시겠지요.
육아의 노하우라니요. 저처럼 애들을 방목형으로 키운 사람에게 노하우를 찾으시다니 농이 지나치십니다. 혹시라도 진심이셨을 0.000001%의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실드를 치자면, 제 양육 신조는 “너무 모든 것을 다 채워주지 말자”입니다. 아이들은 부족한 걸 좀 겪어봐야만 상대적으로 중요한 가치들을 체화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아이들의 경우를 보건대 결핍과 아쉬움을 체험하고 어느 정도는 내면화하면서 아이들은 이것이 사람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던 것 같아요(사실은 그랬기를 기대하는 쪽입니다, 아직은)플러스 그러니 기회가 왔을 때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제게 주어지는 것들이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일이고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아서’ 누리는 행운임을, 그러니 언젠가는 당연히 타인에게 나눌 줄도 알아야 함도요. 아 이건 자랑인데 글고보니 제 속을 까맣게 태우는 둘째도 그런 면에선 썩 괜찮은 아이인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용돈을 받으면 그것을 꼭 절반 쪼개어 기부를 하거든요. 여윳돈이 생기면 온전히 제가 다 쓰고 싶을 나이인데 그럴 때는 쬐...끔 착해 보입니다(...백개쯤 말줄임표를 찍고 싶지만)
아무튼요.
저는 지난주엔 짐작하시다시피 스트레스가 만빵 받는 일이 연달아 터져 가지고, 정말이지 멘탈 생존을 위해 정신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종류의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중에서 소개할 만한 책을 찾아보니 이게 어떨까 싶네요.
듀나 작가의 영화 클리셰 사전입니다. 두 권으로 되어 있고요, 각각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군요.
제목에서 짐작하시다시피 영화에 곧잘 등장하는 클리셰들을 모은 사전입니다. 네, 시즌 1에서 이야기한 바 있듯, 저는 모든 종류의 ‘사전’을 다 좋아합니다. 클리셰, 영화에서든 소설에서든 평범하게 쓰면 “......” 싶고, 한 번 비틀거나 완전히 새로운 맥락에 가져다 놓으면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도구죠. 저는 사실 클리셰를 엄청 싫어하는 편은 아닌데, 제가 나름 아끼는;;; 조연에게 사망플래그가 뜰 때 정말 분노합니다. ㅋㅋㅋㅋㅋㅋ 이해는 하죠. 죽어야 하는 인물은 죽어야 플롯이 추진력을 얻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호감 가는 인물에게 RIP를 빌어주는 상황은 늘 달갑지 않습니다.
제목만 봐도 배를 잡고 웃게 되는 익숙한 클리셰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죠.
나는 네 엄마(아빠)다
빨간 셔츠의 죽음
수다쟁이 악당
안경을 벗어봐
나 잡아봐라 추격전
빙글빙글 신문지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안 이긴 거거든!
그러고 보면 웃음이란, 공감대의 영역이 넓으면 넓을수록 끌어내기도 쉽고 증폭시키기도 쉽지 않나 싶네요. 이왕이면 소수만 알고 웃을 수 있는 유머보다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누군지 모르는 저 사람도 웃을 수 있는 유머 코드가 더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이렇게 생각하면 클리셰란 품이 넓고 다정한 사람 같기도 하고.
제가 언급한 내용만 봐서는 굉장히 유머러스한 책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진지한 비판 쪽이 훨씬 많아요. 그러니까 제법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한편, 중간중간 와르르 웃을 수밖에 없는 내용이 간간이 끼어있다고 생각하시는 쪽이 더 맞을 겁니다. 사실 제가 가장 많이 웃었던 건, 클리셰 자체보다도 영화 제목과 부제에 관한 글이었어요. 이건 미리 말하면 너무 큰 스포일러라 말 안 할래요.
필화 님은 클리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지난 편지에서 작가적 클리셰란 표현을 썼는데, 모두가 쓰는 클리셰가 나만이 쓰는 클리셰가 될 때는 조금 특별한 느낌이 들기도 해요. 일종의 시그니처이고, 각인이니까요.
글 이야기를 빼고 다른 작업 이야기를 잠시 해 보자면, 미디어와 장르에 관계없이 저의 창작물을 아주 오래(그리고 전부 다!) 보아왔던 친구가 말하기를 이건 뒤구르기하면서 봐도 김담화가 만든(그린, 쓴, 모두 포함)거다! 래요. 제 손이 닿은 모든 것들이 그렇게 말한답니다. 이거야 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하긴 제 동생도 비슷한 말을 오래전에 한 적이 있어요. 저는 제 색깔이 너무 강해서, 좋아하는 사람은 너무 좋아하겠지만 절대로 대중의 취향에는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면 그러던지 말던지 하고 넘겼을 건데, 그래도 그 녀석의 사업가적 센스는 절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참... 네, 정말로 쩜쩜쩜이에요.
필화 님 생각은 어떠세요? 저는 지금이라도 대중적 취향의 클리셰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거겠죠?
[본의 아니게] 대중의 취향에서 5cm쯤 떨어진 표적을 겨냥하며 글을 쓰는 담화 드림.
덧. 자, 지난 주엔 무슨 책을 읽었는지 말씀해 주시죠!
덧2. 제목이 왜 저 따위냐고요? 저도 모르겠어요. 문득 미더덕이 선박 바닥에 더덕더덕 들러붙어서 피해를 주니 어쩌니 하는 걸 어디서 본 기억이 나서요... 미더덕 더덕더덕... 죄송합니다. 하지만 리듬감이 좋아서요 (TMI. 저는 미더덕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