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담화님 잘 지내고 있나요? 아니, 잘 생존하고 계신지요?
여러모로 곤란한 일들이 많으신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만 이리 재미있는 책을 소개시켜 주셔서 님의 곤란함 따위는 잊고 레터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심지어 책 위에 올려두신 잉크시필지가 너무 예뻐서 한참 들여다 보았더랬지요.. (내 만년필들과 잉크들은 잘 생존해 있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일상의 고단함으로 인해 눌어붙은 초콜렛이 된 지라;;)
책 제목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내용 또한 꽤 흥미로운 것 같고요.
제게 클리셰를 좋아하는지 물으셨는데, 저는 클리셰 극불호 쪽입니다.
여기저기에 떠들고 다니긴 했습니다만 클리셰에 대한 강한 저항감이 일본드라마에 심취하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불호였는데 삶에 도움을 주긴 하였군요.)
친구가 CD더미를 통째로 들고 와(하... 연식 나온다) 소개해준 일본의 국민 배우인 기무라 타쿠야가 혜성처럼 빛나게 된 드라마(궁금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지만, 제목은 Long Vacation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드라마를 통칭 ‘롱바케’라고 합니다.)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솔 음계의 하이톤 여주인공의 목소리에 정신이 사나웠지만, 그 대사 틈 사이로 익숙치않은 전개들이 이어지는 것에 신선한 감각을 느꼈답니다.
당시 한국 드라마가 '알고 보니 우리가 남매래.', '내가 니 애비다.', '불치병에 걸린 여주' 등의 서사와 더불어 신데렐라 여주와 직장에서 연애질(?)만 하고 일은 도대체 언제 하냐 싶은 금수저 본부장님들 구원서사가 하도 많이 나와서 질리던 참이었으니 말이예요.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드라마를 사랑하여 빠짐없이 본방사수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너무 뻔연히 보여서 싫을 때가 많았단 얘기죠.
그런데 일드에선 그런 클리셰를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일단 소재의 다양성과 서사에 많은 매력을 느꼈답니다.
예를 들어, 러브라인 하나 없이 회사에서는 정말 일만 하면서 한 직업인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거나, 다양한 인생 배경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소재로 뭉쳐져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거나, 선과 악의 극단적 대립구조가 아닌 인간을 다양하고 다층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 줄만한 드라마도 많더란 말이죠.
소재 또한 인간의 양면성, 가족의 해체 등 당시 한국 드라마에서는 잘 다루지 않던 사회적 이슈들도 꽤 다루어서 흥미가 있었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선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악인’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미워할 수만은 없는 악역이 가진 인생의 결을 짚어보며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생각도 많이 해보게 되었더랬죠.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늪에 빠지듯 빠져든 나머지, 대중문화콘텐츠 전문가가 될 것 같았으나 일드로 일본어에 귀가 트인 인간만 남았습니다.
지금은 일드의 클리셰도 식상해져서 중드에 본격적으로 몰입해볼까... 하고 있다는 건 아시죠? (사실 남미 드라마도 그 소재와 전개가 아주 열혈과 화끈 사이를 오간다길래 보고 싶기는 합니다만 대체 어디서 구하냐고요.)
트렌드를 꽤 오래 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 클리셰는 대중의 시선에서 반 보 정도 앞서 나가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중과 맞닿은 왼발과 조금 더 앞서 나간 오른발 사이에서 익숙함과 참신함을 ‘적당히 잘 창의적으로’ 엮어나가는 것이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그 방향성도 매우 중요하지요.
너무 클리셰 범벅이어도 진부하겠지만, 또 너무 앞서나가도 “시대를 잘못 태어난 불행의 아이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지금 보고 있는 책은 정말 익숙한 소재의 책입니다. (네, 지난 주에 읽은 책이 아니라 지난 주부터 읽고 있는 책입니다... 네... 제가 정말 공사다망하고, 심난하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에 말이죠... 하 진짜... 인생,, 원래 이렇게 곤고한 겁니까? 크흑 참고로 지금 새벽 2시 4분입니다. 아직 씻지도 못했는데..)
제목은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고 김주혜 작가가 쓴 소설입니다. 이민진 작가의 <빠친코>에 이어서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영문으로 출간된 또 다른 소설이지요.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선조들, 지금 누군가 우리 이웃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정말 너무 잘 아는 소재이지만, 클리셰도 없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잘 읽히고 재미가 있고 흡입력이 있습니다. 바로 필력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번역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섬세한 프랑스 자수처럼 촘촘하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기도 하지만, 구조와 전체적인 서사도 꽤 흥미를 돋웁니다. 치밀하게 고민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과연 이런 걸 독자가 눈치채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재미있습니다.
이 작가의 글 중 가장 독특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이거였어요. 흔히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디테일하게 비유해준다는 것이었죠. 무릎을 탁! 아! 이게 이런 감정인가!라고 느끼게 해주더군요. 이런 문장들입니다.
그가 지금 이해한 것은, 세상이 그의 가족과 한 무리의 거지 소년들 뿐 아니라 그 곳에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절박하리만치 어둡고 슬픈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들 모두가 공유한 고통이 한 심장의 박동처럼 정호의 온몸을 울렸다. p.197
이런 문장들을 들으면서 정호는 묘한 동경과 고통을 느꼈다. 그것은 창백하고 푸른 달빛이나, 늑대들이 울부짖는 소리, 발아래서 눈이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소리가 그렇듯, 그의 바깥에서 발원하여 피부를 통해 아릿하게 스며드는 듯한 아픔이었다. p.311
아직 이 책을 다 달리지 못하여서 마지막에 이 주인공들은 어떤 인생의 끝을 맞이하게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중반쯤을 달려온 지금 이 시점에서 저는 ‘주인공들이 한 번은 더 다른 생을 살아주었으면!’ 하는 얼토당토않은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 시는 사랑을 받고 있나요. 그 때쯤은 독립을 했을런지요.’라는 궁금증을 남기셨던 윤동주 시인의 엽서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각이 거스러미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 생을 마칠 때까지 궁금했던 그 것을, 현대에 와서 잠시라도 살아주신다면 한 순간에 알 수 있으실 텐데.
자신이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시인이 되었다는 것과 대한민국이 독립을 하였다는 것을 눈으로 보는 순간 그 생에서의 고통이 잠잠히 누그러지지 않을까.. 이번 생에서는 마음 푹 놓고 희희낙락하며 편히 계시다가 밝고 아름다운 시를 더 남기시면 어떨까 하였던 그런 이루어질 수 없는 작은 소망같은 것입니다.
그 날처럼 오늘도 《작은 땅의 야수들》 주인공들이 2024년으로 살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오늘 유치원에서 졸업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의 미래에 살짝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지금으로써는 그저 믿어주는 마음, 응원하는 마음이 최선이겠지요?
답장이 늦어져서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보냅니다.
쏴아아리......
필화 보냄.
김주혜 작가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