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화 Mar 14. 2024

세상살이에 미숙한 인간..

《인간실격》

담화님 

안녕~


저는 지금 안녕하지 못합니다.

일주일이나 게으름을 부리고도(조금 바빴노라고 흔해빠지고 치사한 변명을 좀 방패 삼아 보겠습니다.) 지금 제게 주어진 것은 한 시간… 한 시간이라뇨… 세상에.


그럼에도 담화님의 지난번 레터를 다시 한 번 또 읽어봅니다. 다시 봐도 재미있었어요. 특히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한 연인》에서 인용해 주신 문장들은 참 좋았습니다. 저에게 주는 메시지가 많았답니다. 


오늘도 눈 뜨자마자 자리에 없는 아들 때문에 놀랐지만, 아픈 애 치고는 너무나 멀쩡히 혼자 밥을 담아서 야무지게 먹고 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 아이는 입학하자마자 발에 날개 달린 것처럼 열흘을 꼬박 여기저기 신출귀몰하며 놀러 다니더니만 급기야 감기몸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신발에 날개를 단 에르메스처럼 피리 들고 다니며 신나게 노는 개구장이인 줄만 알았더니, 한국형 홍길동이라 배고프면 혼자 일어나서라도 밥을 먹어야 하는 아이였더군요. 


여하튼 고맙고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커피 한 잔을 만들면서 그 문장이 떠올랐어요.

아침에 일어나 처음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고대하는 한은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해준 조언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커피 한 잔에 거는 오늘 하루치의 기대와 에너지. 그게 또 하루를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군요.


오늘의 커피는 지인이 직접 로스팅한 커피로 만든 라테였습니다. 생각보다 라테랑은 안 어울려서 테라로사의 원두를 꺼내서 우아하게 한 잔 하려는데, ‘일해라 전화(저는 업무 전화를 일해라 전화라고 부르곤 합니다)'가 와서 일해야 합니다. 아, 그리고 아들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고, 남편의 점심도 차려주어야겠죠. 저희 집 고양이 호야는 지금 키보드 소리에 놀라서 눈 동그랗게 뜨고 ‘이거 뭔데? 놀아줘~’ 시선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급한 대로 거실에 아이맥을 꺼내두었더니 너무 신기한 모양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저를 압박하고 있는 와중에 저는 그래도 데드라인에 걸리지 않게 이 책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인간실격》

아~ 저야말로 작가로서는 실격이군요. 이렇게나 많은 일들에 눌리기 전에 써야 할 이야기를 먼저 써야 하는데, 하염없이 뒤로 미루고 밀려내곤 하니 말입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인간실격》이 책은 일본에서는 고전의 느낌으로 여겨지는 책입니다. 사실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가 39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난 것도 있지만, 1948년에 출간된 소설 치고는 그 작법이 여전히 아주 멋지고 세련되었어요. 



아마 당시로서는 이렇게 인간살이의 고충을 이런 방식으로 다룬 이야기는 없었겠지요. 요조의 고뇌는 아마도 다자이 오사무의 고뇌였을 터이고요. 



주인공 요조를 생각하면 ‘그는 세상살이에 미숙한 인간이었구나'이라는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이 두려웠던 요조는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이 안심할 수 있도록 ‘익살'이라는 묘기를 부리지요. 이것을 무기 삼아 성장해 온 요조이지만, 가족을 떠나 살면서 요조는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속에서 허망한 이상, 술과 여자, 그리고 마약으로 인해 점차 빛을 잃어갑니다. 


사실 책을 덮고 난 후에 이 책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아마도 ‘회피'라는 씁쓸한 단어뿐이었어요. 세상살이에 미숙한 부잣집 도련님이 인생의 고뇌와 인간관계의 고충으로부터 끝없이 도망친 결과,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도 다 잃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라고요.


새벽녘에 그녀의 입에서 ‘죽음'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그녀도 인간으로서의 삶에 지쳐 있는 듯이 보였고, 저도 또한 이 세상에 대한 공포, 번거로움, 돈, 비합법 운동, 여자, 학업 등등을 생각하니, 도저히 더 이상 참으며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기에, 그녀의 제안에 가볍게 동의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실감을 느낄 정도의 ‘죽자'는 각오는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장난'이 섞여 있었습니다.  (중략) 저는 일어나서, 품 속에서 지갑을 꺼내어 열었습니다. 동전이 세 개 있을 뿐이었습니다. 수치심보다도 처참한 느낌에 휩싸여, 그 순간 뇌리에 떠오른 것은, ‘선유관'의 제 방이었습니다. 제복과 이불만 남아 있을 뿐, 그 밖에는, 전당포에 전당 잡힐 만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황량한 방, ‘그 외에는 내가 지금 입고 다니는 기모노와 망토, 이것이 나의 현실이다.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고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중략)

동전 세 개는 애당초 돈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살아 있을 수 없는 굴욕이었습니다. 필경 그 당시의 저는, 여전히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딱지를 떼어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때 저는, 스스로 자신하여 죽겠다는, 실감이 나는 결의를 하였습니다. 

그날 밤, 저희들은 가마쿠라 앞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녀는, “이 허리띠는 같은 술집 동료한테서 빌린 거예요.”하며, 풀어서 잘 접어 바위 위에 두었습니다. 저도 망토를 벗어서 같은 장소에 두고는, 함께 뛰어들었습니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p.60~61



물론 기둥서방 노릇이나 하면서 연명하고 있는 이 한심한 도련님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 진술의 방식이 여러모로 보아도 꽤 매력적이라서 좋았습니다. 이 얇디얇은 책에서 인용하고 싶은 문구는 감나무 한 그루 가득입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조를 떠올리면 언젠가 살던 그 집 마당에 있던 감나무가 생각납니다. 정확히는 통실통실 곱게 잘 익다 못해 마당에 떨어지고만 터져버린 감입니다. 잘 익은 채로 있다가 적시에 잘 따냈다면 누군가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 주고, 그 해를 기념할 만한 이야기로 두고두고 추억이 되었을 감인데. 시기를 잘못 만난 것인지 바닥에 떨어진 그 감은 다 터지고 눌려서 그 말갛고 선명한 오렌지빛 속살에 흙이 잔뜩 뭍은 채 벌레들의 먹이로 남고, 수년이 지난 후에도 저의 뇌리에 예쁘지 않은 그 모양 그대로 기억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요조가 속살 고운 감처럼 조금 더 능수능란한 사람이었으면 이 이야기는 어찌 되었을까요.. 아니 이런 이야기는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겠지요. 요조는 세상살이에 능수능란한 사람들 틈에서 작은 거짓에도 괴로워하고, 자신을 숨기려고 애쓰고, 분위기를 살핍니다. 그러다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요조는 냉큼 어디론가 도망가버립니다. 그리고 미남자이자 익살스럽고, 그림을 잘 그리고,  술을 좋아하며 한때 부잣집 막내도련님이었던 그를 받아줄 여자를 쉽게도 찾아내 그곳에 자리잡지요. 


물론 그렇게 살던 그런 그에게도 사랑이라는 종착역이 찾아와요. 요시코라는 거짓없이 순수한 어린 소녀지요. 요조는 그녀와 살면서 제대로 된 일이라는 것도 하고, 조금은 남들처럼 살게 됩니다. 그러다, 그에게 어떤 한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아내가 치욕스러운 일을 겪는 상황을 맞닥뜨린 사건이지요. 그는 그 사태를 말리지도 않고, 아내를 지키지도 않고, 그 순간 또 도망칩니다. 요조는 아내와 그 일을 두고 아무런 얘기를 하지 못하고 없던 일처럼 지내고자 하지만 가능한 일이 아니지요. 그로 인해 아내와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마약에 손을 대게 되고 급기야 요조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집니다.



용서고 나발이고 없었습니다. 요시코는 신뢰의 천재입니다. 남을 의심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한 비참함.

신에게 묻노라. 신뢰는 죄악인가?

요시코가 더럽혀졌단 사실보다, 요시코의 신뢰가 더럽혀졌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살아 있기 어려울 정도로 고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저처럼, 공연히 겁을 먹으며, 남의 안색만 살피고, 남을 믿는 능력에 금이 가 있는 인간에게는, 요시코의 티없는 신뢰감이, 그야말로 아오바 폭포처럼 상쾌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룻밤 사이에, 누런 폐수로 변해 버렸습니다. 보라! 요시코는 그날 밤부터 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하여 일일이 눈치를 살피게 되었습니다. p. 104



한 때 야한 영화라고 소문이 났던 <감각의 제국>이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사실 이 영화는 야한 포장 아래 제국주의의 광적인 집착에 대한 비판 그리고 젊은이들의 현실에의 도피를 말하고 있거든요. <인간 실격>도 한낱 부잣집 도련님의 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철저히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두고두고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점차 상실해 가는 존재를 그려내며 작가는 아마도 ‘당신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있는가?’라고 묻고 있는 것만 같아요. (물론 저는 요조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이 것은 어른이라면 한 사람의 몫의 일을 하며 자신과 가족을 책임질 수 있도록 주체적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일본 문화를 조금 이해하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아 이야기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담화님

저도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다시 돌아올게요.


담화님 새로운 원고 시작하시느라 바쁘시지요? 힘내보아요~

미세먼지에 당하지 않는 봄날이 되길 바라며.


필화 보냄.

이전 23화 이름 붙이지 못한 마음의 사잇길들을 위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