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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화 Mar 21. 2024

단 이틀..

<아침 그리고 저녁>

스불재와 발등튀김을 사랑하는 담화님

아픈 거 회복했다고 메일을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아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들으니 정말 너무 아프셨던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다시  명랑유쾌텐션짱짱 모드로 돌아와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이제 우리 연식이 만만치 않은 관계로 회복이 쉽지 않으니 더더욱 쉬엄쉬엄 천천히 속을 꽉 채워서 돌아와 주셔야 해요!



아프신 와중에도 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주셨어요..

먼저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이요… 이걸 논의하자면 할 말이 많겠지만 이미 오랫동안 많은 연구기관에서 발표한 신뢰가능한 자료들이 많지 않습니까… 지난 <책장담화> 시즌1에서 언급했던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인스타 브레인> 같은 책에서도 과학적 근거를 많이 들어주었지요. 이런 자료들을 확인하고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주양육자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결과도 감당해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스마트폰 사용이 좋으냐, 나쁘냐라는 질문을 보다 상세히 쪼개어 기기와 콘텐츠, 사용습관 등으로 나누어 살펴 보아야 정확한 사용 방향을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반반치킨(?)입니다. 

필요한 콘텐츠는 보아야겠지만 기기를 계속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절제가 쉽지 않고, 특히나 도파민 분비가 쫙쫙 일어나는 쇼츠에는 쉽게 중독되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보니 키즈폰을 비롯한 모든 개인 모바일폰은 구매해주지 않았고, 아이패드와 컴퓨터는 필요에 따라 볼 수 있게 해줍니다. 물론 시간 제한도 걸어두었고요.. 그럼에도 아이들의 불타는 시청 욕구를 막기는 쉽지 않습니다. 


굉장히 자기 절제가 충분한 어른처럼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당신은 잘 하고 있냐?"라고 물으신다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보내주신 데이비드 차머스의 인용문을 대신하고 싶군요;;;, 제 마인드는 한 30퍼센트쯤 구글, 20퍼센트쯤 애플로 구성돼 있습니다.” -55쪽




 “질문 있는 사람?” 이 질문 수업 시간에 많이 들어보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아는 교수님 중 한 분은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이 질문을 하십니다. 그러면 대체로 아무런 예습이라고는 하지 않는 학부생들은 당황해합니다. 그러나 기업에 특강을 나가서 이 질문을 하면 좀 다릅니다. 적어도 강의 제목의 의미라도 물어보거든요. 그 질문이 나왔던 순간에야 저는 이 질문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생각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질문이 생긴다는 것을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제가 활용하는 질문은 이겁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학생들이 즉각 두뇌회로를 가동하며 눈이 초롱초롱해지기 시작하지요.



그런 맥락 아래,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 삶 속에서  질문하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소비와 사유'라는 키워드를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질문하는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사유일 텐데, 이 ‘생각하는 힘'이라는 게 어디서 길러지느냐 하면 반드시 100% 책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정환경도, 자연환경도, 그리고 인터넷 콘텐츠도 그 외의 수많은 것들이 영향을 미치겠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소비에 그치느냐, 아니면 사유할 트리거를 주느냐입니다. 


어린이들은 그런 사유의 여유를 갖기가 쉬우면서도 어려우니 자꾸 질문을 던져주곤 합니다. “너라면 어떻게 하고 싶니?”를 비롯한 기타 등등의 질문을요. 어른이라면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을 던져보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꾸 하다보면 더 명료한 질문들을 할 수 있게 되겠지요… 



저는 블로그에 [A?]라는 제목으로 살면서 생기는 궁금증에 대한 질문을 담아두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무엇이 좋은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두었지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기억해야 할 이야기? 질문을 던져주는 이야기? 모든 것이 다 포함되겠지만, 아직 이것이다! 싶은 저만의 답을 찾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주에 읽은 이 소설은 짧지만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어서 소개해봅니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이라는 소설입니다. 


장편이라기에는 짧은 이 소설은 주인공 요한네스가 태어나던 날과 세상을 떠난 날.. 단 이틀을 그려볼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짧은 이야기 속에는 요한네스를 둘러싼 이들과 그가 사랑했던 바다와 일과 소중한 친구와 아내와 가족들로 가득 차 있어요. 후회없는 삶, 유일한 후회라면 평생 함께 머리카락을 잘라주곤 했던 친구의 머리카락이 길어지도록 잘라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인 그런 충만한 삶이죠. 


그리고 그가 떠나던 날, 그의 영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어부로 살았던 자신이 평생을 사랑했던 바다로 나갑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를 만나고, 아내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하고, 바닷일을 하고, 이제는 바다가 더 이상 자신을 받아주지 않음을 깨닫고는 육지로 나와 다시 집을 향합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던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러 친구 집으로 가지요. 도중에 만난 막내딸 싱네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 일로 이상하게 여기던 요한네스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주 조금 자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한네스는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잠시 육체를 돌려받은 친구 페테르와 함께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없이 자신의 생을 뒤로하고 또 다른 바다를 향해 떠나며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무슨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그렇지 발소리가 맞네, 발소리가 곧장 이리로 오는 것 같은데? 저건 에르나의 발소리가 아닌가? 그러니까 에르나가 마중나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믿을 수가 없군,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그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이 물론 에르나일 리는 없다, 그럴 리가 없어, 그 사이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그는 가만히 서서 발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요한네스, 당신이에요? 에르나가 묻는다

행복의 느낌이 그의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당신이로군 에르나,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래요 나예요, 에르나가 말한다

(중략)

그리고 에르나의 손을 잡은 요한네스는 그녀의 손이 차다고 느낀다, 손에 온기라고는 전혀 없다, 에르나는 거리를 따라 요한네스를 이끈다

    집에 야외등을 켜놨어요 요한네스, 에르나가 말한다

    그래 잘했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네 이렇게 어두울 때는 켜두어야지요, 눈앞에 있는 손도 잘 안 보일 지경이니, 그녀가 말한다

    어둡긴 하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리고 에르나와 요한네스는 거리를 따라 걷는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현관문 위를 아늑하게 밝히고 있는 야외등을 본다 그리고 모든 것이 예전에 자주 그랬듯 편안하고 흡족하게 느껴진다, 이제야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았군,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이래야지, 언제까지나 이래야지 p.106~107



인생의 시작과 끝. 단 이틀의 이야기이지만, 그 마지막에 그려질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생의 첫 날과 마지막 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게 마련이고, 후회나 회한 없는 날을 맞이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이야기를 읽는 모든 이에게 각자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그려보게 해주는 것 같아서 ‘좋은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주인공이 태어나던 날 그의 아버지가 느낀 초조함과 신을 향한 감사, 그리고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한 탄성, 앞으로 펼쳐질 날들에 대한 그 모든 기대까지 다시 한 번 주인공 생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읽어보고 싶거든요.




우리 생은 모두에게 처음이라 다들 조금은 어리숙하게 마련인데, 심지어 나이가 이렇게 많이 들어도 여전히 사는 게 녹록치 않아요. 하지만, 많이 읽고, 많이 관찰하고, 많이 생각하며 좋은 질문들을 던지고, 그 나름의 답을 찾아나가며 살면 나름대로 재미있는 여정이 되리라 생각해요. 

담화님은 이미 그렇게 즐겁게 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다음 주에 보내주실 답장을 기대하며 부디 건강 조심하시라는 마음을 전합니다. 

필화 보냄. 



P.S. 이 책에는 마침표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같은 구식 독자는 꽤나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만, 신문물에 익숙하신 담화님은 가능하실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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