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이 피어도 앉을 그늘이 없어
계절이 벌써 이만큼이나 바뀌었습니다. 지독히 앓느라 바깥 풍경을 그려볼 엄두 같은 것은 내지도 못했는데 어제 나가보니 볕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목련들은 벌써 봉오리를 물었더군요. 혹시 이 노래 아시나요? 박목월 시인의 시 <목련꽃 그늘 아래서>에 멜로디를 붙인 <사월의 노래>요. 이 노래가 어울리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아 멀리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준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조숙한 중학생이었던 저는 이 시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그전에 제가 이 노래를 어찌 알았는지를 말씀드리자면… 어머니가 가곡을 잘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본의 아니게 가곡을 좀 아는 찌끄레기 초등학생으로 자랐더랬죠. 아무튼, 딱 지금 소환하기에 적절한 시이고 노래가 아닐 수 없죠.
인생의 ‘끝’에 대한 언급을 잠깐 해주셨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끝을 선명하게 그리면서 과정을 계획해 나가는 사람이 있고, 이어지는 과정들에 충실한 대신 그러다보니 어딘가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저는 전형적인 후자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주 예전에 이동진 작가(이자 평론가)님이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를 말씀하셨을 때 저는 이것이 바로 내가 평생을 두고 실천하고 싶은 바로 그 철학이다… 하고 깊이 감복한 바가 있었답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장기적 비전 설계를 하는 분들을… 좀 힘겨워합니다. 당장 일주일 뒤의 삶조차 매일매일의 이런저런 해프닝에 휩쓸려 종종 방향을 잃곤 하는데, 30년, 40년 뒤의 삶을 계획한다고? 엽떼여, 저는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아닐지도 알 수 없는데요? … 뭐 그런 느낌입니다. 너무 비난하진 말아주세요, 그건 그냥 저란 사람의 본성이랄까,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삶을 낭비하고 허투루 사는 사람이 못 된다는 건 가까이서 지켜보신 필화 님이 더 잘 아시겠지요. 외려 그런 것을 몹시 싫어하는 쪽이니까요. 매일매일의 성실은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달까요…
(그래서 저와 극 반대성향인 동행과 종종 맞부딪칩니다만 그쪽도 어느 정도 포기한 것 같습니다 ㅋㅋㅋ)
여하간, 지난주에도 도서관에서 신간 몇 권을 빌려왔답니다(도서관의 신간과 서점의 신간은 다소 시차가 발생한다는 점, 양해 부탁드리며). 마침 서점과 북클럽에 관한 책들이 있기에 신나라 빌려왔죠. 그중 북클럽을 소재로 다룬 소설을 먼저 읽었어요.
제목은 《인생 책 북클럽 The Book That Matters Most》라 합니다.
이 소설의 화자인 에이바의 삶은 비극과 온갖 문제들로 점철되어 있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작가가 정말로 인물을 벼랑 끝까지 떠밀어 놨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 정도면 응원하는 마음을 넘어서 힘들어서 보겠나 어디… 싶지만, 암튼 들어가 보죠.
에이바의 어린 시절, ‘책 좀 보게 알아서 좀 놀아라’라는 심정으로 방치했던 여동생이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추락해서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납니다. 이 일로 가정은 깨어지다시피 해요. 어머니는 1년 뒤에 다리에서 뛰어내리고요. 어쨌건 그래도 주인공은 무사히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직업적으로도 꽤 괜찮은 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면 좋으련만, 십 대 때부터 온갖 반항을 다 하고 말썽을 부린 딸은 해외로 나가버려요(그리고 끔찍한 일들을 겪죠)
게다가 남편은 새로운 사랑이 생겼다며 떠나겠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탈탈 털립니다…
에이바는 이 ‘거지 같은’ 삶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노력해요. 가장 가까운 친구가 전부터 권해왔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북클럽에, 비로소 걸음해 볼 마음이 그제서야 생깁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지만, 책이란 것은 읽는 사람의 마음이 머물 여백을 내어주는 흔치 않은 매체이자 공간이니까요.
하필이면 그녀가 들어가자마자 멤버 전원에게, 각자 그들에게 가장 의미가 있었고 소중한 ‘인생책’을 한 권씩 선정해서, 매달 그것을 읽고 토론하자는 주제가 주어집니다. 이 북클럽의 이듬해 독서 목록은, 그래서 이렇게 정해져요(주인공이 정하는 책은 가상의 책이어서 뺐어요).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F.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 년의 고독》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베티 스미스,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
J.D.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저는 각각의 인물들이 책을 고르는 순간 생각했어요. 지금까지의 내 삶 중에서 가장 의미있었던 한 권은 뭘까. 물론 여러 권 있었지만, 그리고 늘 어디서든 독서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한 책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제게 정말 불가해한 질문을 던져주었던 한 권이 떠오르네요.
그 책은 베티 그린의 《병사와 소녀》입니다. 서점에 찾아보니 지금은 《독일 포로와 소녀》이고… 심지어 절판인 것 같아요. 하긴 저는 이 책을 1991년에 (까마득하다…)에 읽었으니 오래되긴 했네요. 독일군 포로와 유대인 소녀라니, 사실 말만 들어도 이 관계성이 읽히잖아요.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그 힘든 마음이 지금도 선연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아픈 이야기를 굳이 썼을까,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럽다가 기어코 마음이 비참해지는 이 이야기의 가치는 무엇일까 궁금했죠. 이야기는 즐겁고 행복하려고 읽는 거 아닌가? 라고 그때껏 믿었던 열*살 여중생은 몇 번이고 곱씹었더랬죠. 그 의문이 결국 지금의 저를 만든 게 아니었을까, 돌이켜 생각합니다.
제가 이 북클럽의 일원이었고 제 인생의 책을 골라달라고 했으면, 제게 ‘삶이란 이러저러한 것이다’라는 명제를 심어준 그 책과 이 책을 놓고 고민 좀 했을 것 같네요.
그건 그렇고, 이 책의 212페이지를 보면 한국계 경찰이 라면을 끓여 먹는 장면을 묘사한 단락이 있는데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떻게 이 ‘라면 먹는 맛’을 알고 쓴 거지 궁금해지더군요… 먹고싶게스리…
“제가 얘기해 보고 싶은 건 이거예요.”
“자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책이라는 거요. 왜냐하면, 저는 그런 책은 고를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책을 언제 읽느냐, 그때 내가 어떤 사람이었으냐가 그 책을 중요하게 만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에 내가 불행할 때, 음, 뭐랄까, 《길 위에서》나 《삼총사》같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읽는 동안 감정이나 생각이 바뀌면 그 책이 가장 중요한 책이 되는 거잖아요. 그때는 말이에요.” -p.345
정말 맞는 말 아닌가요?
우리 필화 님은, 혹시 지난 주에 그런 책을 만나진 않았나요?
답장 기다릴게요,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