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쓰는데 방해되는 요소.
첫 번째, 지나치게 잘 쓰고 싶다는 생각.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한 문장 한 문장 꾹꾹 눌러쓰다 보면 자연스러운 문장이 하나도 없다.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 멋들어지게 쓰려다 촌스러워진 문구, 사람들이 안 쓰는 아름다운 단어를 쓰려다 벌어진 억지 문장 등. 힘 빼고 써야 하는데 너무 잘하고 싶어서 그게 잘 안된다.
두 번째, 열리지 않은 마음. 각을 잡고 쓰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할 것들이 나오지 않는다. 연기할 때도 꼭 그랬다. 선생님은 내게 무언가 많이 갇혀 있다고 했다. 그건 아마 첫 번째와 연결되는 지점일 텐데 잘하고 싶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나로 하여금 사회가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세 번째, 안 좋은 기억들. 글을 쓰다 보면 여러 경험들을 끄집어 내게 되고 필연적으로 아픈 기억들을 꺼내기 십상이다. 감정 변화에 민감한지라 이런 기억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하면 고통스럽기 시작하고 괜스레 울적해진다.
네 번째, 거리 두기의 실패. 나와 인물의 밀접한 연결. 글을 쓰는 사람은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서 인물을 관찰해야 하는데 인물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계속해서 내 경험에만 끄집어내서 무언가를 쓸 수밖에 없고 그 경험을 떠올리면서 고통스럽고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기가 되고 만다. 개인적인 감상에 치우쳐 나와 글이 분리되지 않을 때 읽는 사람은 얼마나 거북할까.
딱 한번 내가 내가 아닌 채로 내가 쓰고 있는 인물을 관찰하다가 운 적이 있다. 그때 새로운 문이 열린 기분이었다. 소설가들이 흔히 말하는 새로운 세상의 문. 문을 열자마자 인물의 고통과 감정이 물 믿듯이 덮쳐와서 어디로 피할 수 없을 만큼 큰 파도를 맞아 그대로 멈춘 기분이 들었다. 그건 처음올 나를 벗어나서 우울했던 경험이었다.
다섯 번째, 단어. 요즘 글을 잘 읽지 않고 일하면서도 쓰는 단어들만 쓰다 보니 구사하는 표현의 한계를 느낀다. 결국 표현을 풍부하게 쓸 수 있어야 아름다운 글이 나온다. 마음속에 맺힌 것은 많은데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현재 부족하다. 글을 쓸 때마다 매우 답답하다.
그래도 내가 가진 장점이 하나 있다면 이미지와 사물을 통해 감정을 끌어낼 줄 안다. 내가 기록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정확한 화면이 있으며 그 화면을 구현하기 위하여 글을 다듬고 있다. 이미지를 조금 더 구체화해서 냄새까지 맡고 표현 방법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현재 목표이다.
그냥 글을 잘 쓰고 싶다. 이 막연하고도 이유 없는 오랜 꿈이 나를 조금씩 움직이게 만든다. 이유 없는 목적의식, 내 영혼이 수많은 전생을 겪으면서도 지키고 있는 꿈이라면 이번생에도 이 지점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