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을 안고 꿋꿋이 살아내는 법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제목부터 거대하다. 거장이 아니라면 이런 제목을 선택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 관객들은 워낙 난해한 작품을 싫어하기 때문에 보고 나오자마자 호불호가 매우 갈릴만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내가 만약 그였어도 마지막 작품으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삶에는 얼마나 많은 모순이 있는가? 영화에서처럼 전쟁을 통해 돈을 벌면서도 전쟁 때문에 고통스럽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하고 그 마지막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그 마음을 누가 외면할 수 있을까? 그렇게 기꺼이 마히토는 다른 세계라는 함정에 기꺼이 빠져든다.
함정처럼 빠진 세상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 세상을 만든 사람도 자신과 비슷한 인간이었고 그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히토가 겪은 이 기이한 경험은 어떤 의미였을지 분명하다. 현실을 도피해도 결코 이 모순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미야자키 하야오는 평생을 심각한 내적 갈등 속에 살아왔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전쟁을 통해 돈을 벌었는데 그 사실이 미야자키 하야오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돈 덕분에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었다. 이 원초적인 모순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고, 그 창조 안에서 마음껏 살아온 미야자키 하야오. 하지만 그도 한계를 분명 느꼈을 것이다.
창작은 상흔을 되풀이하는 작업이다. 마히토는 악의가 없는 돌이 없다고 말한다. 같은 원리이다. 살면서 생긴 상처, 그 상처는 결코 없어지지 않고 그 상처를 다시 재연하고 갈고닦으면서 인생은 나아가는 법이다. 창작이라는 건 이 일련의 과정을 짧고 강하게 다시 되풀이하는 일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무리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해도 그 세상에는 전쟁이 있고, 오염이 있고 아픔이 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계 속에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모든 것이 똑같은 되풀이라고 할지라도, 비록 모순 없는 완벽한 세상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는 기꺼이 이 삶을 살아내기를 결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미야코가 그 세계의 돌을 가지고 현실에 돌아온 것으로 표현된다. 그 돌이 가진 모순을 가지고 현실을 도피하지 않은 채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괴롭지만 마주하는 것. 모순 안에서도 창작이라는 조약돌을 품고 조금씩 나아가는 것.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그는 마지막으로 삶이라는 게 어떤 기원으로부터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언젠가 삶이 너무나도 갑작스럽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이 세상에 뚝 떨어져서 이유도 모른 채 살아갈 운명을 부여받았을까? 수많은 삶이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지고 태어나서도 죽어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는데 왜 나는 살아가야만 하는가. 답이 없는 질문들이 머리를 맴돌 때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너무 피곤하지만 오늘 느꼈던 이 거대한 감상을 조금이나마 남겨두고 싶었다. 모순이 가득한 삶 속에서 나는 어떤 세상을 창조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의 모든 예술을 지향하는 작업, 여행 들은 괴로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비로소 이것이 도피가 아니게 되었을 때 무엇보다도 진실성을 추구하게 되었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지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방황이 깊어진 건 나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바라야만 하는지,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구하고 답을 얻기 위해 애쓰면서 나 자신이라는 사람에게 몰두했기 때문이다. 이토록 무언가에 몰두한 적이 있었던가. 이것이 사랑 외에 무엇인가. 심지어 그 작업을 하면서 파헤쳐진 내 내면의 낱낱이 아로생긴 못생김도 한계도 가슴 아파하면서 체화시키는 작업을 했다. 사랑은 좋은 것만 보고 듣는 게 아니라 아픔과 고통까지 받아들이는 작업이다. 꿈꾼다는 건 비로소 흠결 없는 궁극의 순수함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모든 단점을 끌어안고서라도 사랑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이 사랑을 위해 얼마나 준비된 사람인가. 이 질문과 함께 비감에 잠기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