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견디는 게 아니라고 믿고 싶다.
인생은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이 갈수록 헤쳐나갈 숙제는 많아지고 더욱더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결혼이라는 건 이 나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쉽지가 않다. 인연에 대해 고민하고 소모하는 시간들도 점점 지친다. 이제는 무언가 그 부분에 안정이 생겨서 행복한 살도 찌고 일에 더 집중하고 싶다. 글과 일에 더 집중하고 싶은데 해결되지 못한 그 부분 때문에 시간은 자꾸 소모되고 기분은 자꾸 다운된다. 내가 이어준 커플도 참 많은데 정작 나는 왜 쉽지 않을까?
회사에서 요구하는 업무의 강도나 수준도 점점 높아진다. 예전엔 할 필요가 없었던 운동이 이제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일이 되어 버렸다. 조금만 나태해지면 살은 금방 찐다. 살이 찌면 이성으로서 매력이 떨어지니깐 쉴 수가 없다. 모든 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순환 고리처럼 빡빡하게 연결되어 있다.
수능만 끝나면, 변호사 시험만 끝나면 인생은 별 어려움 없이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것은 빨간 융단이 아니라 캄캄한 어둠에 가까웠다. 돈은 벌지만 쉽사리 모이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하는데 시드머니도 계기도 잘 없다. 망망대해에 홀로 배를 몰고 찬 바람을 얼굴로 맞고 있는 기분이다.
사실 이 배가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조용히 꼬르르륵 심해의 저편으로 사라지면 좋겠다. 몸이 많이 아픈 사람들이 삶을 그만두기 위해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 마냥 나 역시 의지를 부리지 않고도 깊은 바다로 사라지길 원하고 있다.
우울은 나의 고질적인 병이다. 약을 끊은 지 꽤 오래되었고 선생님은 내게 졸업을 했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병원을 나가면서도 알고 있었다. 난 다시 우울해지고 마음이 아파질 것이라는 것을.. 그게 두려워서 선생님에게 '현재까지는' 괜찮다는 단서 조항을 말했는지도 모른다.
정신적 괴로움과 신체적 괴로움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모두 공평하게 아프다. 뭐가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렵다. 예전에는 정신적 괴로움을 쉽게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제는 정신적 아픔이 통증과도 같다는 사실을 안다. 심한 생리통 마냥 몇 분 간격으로 세게 통증이 오다가 다시 쉴틈을 주다가 다시 조일 듯이 아프다. 가슴이 조이고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절로 가슴팍을 퍽퍽 친다.
잠을 자지 못하는 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걱정과 통증이 늘어나면서 불면의 밤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잠에 대한 강박을 버려야 더 잘 자기 때문에 이제는 누워서 시계를 보아도 긴장하지 않으려 한다. 벌써 4시네, 나 두 시간밖에 못 자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 조금이라도 자자라는 생각으로 불면의 밤에 긍정 회로를 돌리고 있다.
약 없이 몇 달을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말한 졸업이라는 말 때문에 쉽사리 병원을 찾지 못하겠다. 더군다나 나는 여전히 21세기 한국 사람이라 정신적 괴로움을 약과 병원에 의지해서 헤쳐나가려고 하는 태도가 나약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남에게는 스스럼없이 병원을 가라, 약을 먹어라 말하면서도 정작 병원에 들락거린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을 혐오하지 않는다. 다만, 내 까다로운 기준에 늘 충족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고 있다. 마치 못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 마냥.
정작 우리 부모는 잘난 자식들을 둔 덕분에 우리의 눈치를 보고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도무지 따뜻한 말을 건네지 못한다. 이것 역시 내 마음을 할퀴고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게 만들며 글을 쓰게 만드는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우울은 고질병이었고 내 글의 원천이기도 했다. 슬프지 않으면 도무지 쓸 수가 없다. 나는 토로하기 위해 평소에 글을 읽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글을 쓴다.
마음이 안정적이고 쿨한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늘 관계에 있어 애정결핍 문제로 전전긍긍하는 내 자신이 언제쯤 쿨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쩜 그렇게 누군가에게 내 행복을 기대지 않고 혼자서 잘 살 수 있는 건지 나에게 비결을 좀 알려주고 갔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에 살았던 내게 혼자라는 삶은 이제 만성적인 피로처럼 느껴진다. 어깨 위에서 떨어지지가 않는 이 녀석은 지겹도록 나를 괴롭힌다.
현대 사회는 독립적인 삶, 혼자 즐기는 라이프를 주구장창 주장하지만 뭘 모르는 소리 같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만 행복할 수 없다. 오히려 독립적 삶에 대한 모토가 우리가 가진 근본적인 외로움을 낮게 평가하고 심지어 추하게 만들어 버린다. 외로움을 채우는 게 가장 큰 인생의 목표가 되는 솔직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 그럼 쿨녀가 되지 못한 나 자신을 아주 조금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팔자 같다. 결혼을 원하지만 계속해서 주어지는 자유는 뭐랄까... 나에게 무엇이라도 이 시간에 해야 한다는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만 같다. 그건 아마도 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느낌이 거부할 수 없는 팔자,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뭘까. 삶은 정말 견디는 걸까. 견딘다는 생각으로 살면 너무나 슬프니까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는다. 힘든 시기가 지나갈 거야, 또 사랑이 충분히 채워지면 날아갈 듯이 좋은 게 인생이잖아라고 혼자 나지막이 되뇐다. 결국 모든 건 내가 무엇을 믿느냐에 있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었다.
I don't chase. I attract. What is meant for me will simply find me.
급한 마음으로 쫓지 않는다. 쫓으면 쫓기니까.
쫓으면 쫓아버리게 되니까.
조금만 누르고 조금만 참아서 성숙하게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