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습니다.

글이 풍경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을까?

by 이시현

아침부터 부지런히 알림이 울립니다.. 최대 8cm의 눈이 내린다고 재난 문자가 쉴 새 없이 오던 평범한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창가로 갔습니다. 어두운 커튼을 걷자 차가운 공기가 코 끝을 스치고 커튼 뒤로 하얀 설국에 펼쳐집니다. 작은 꼬마 건물들위로 쌓인 빼곡한 하얀 눈과 눈이 오는 작은 소리. 사각사각- , 또각또각-.


그 소리들 사이로 기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흔히 어린 시절 겪었던 일은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하죠? 20대는 온통 캐나다에 살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곳은 그야말로 설국이었습니다. 학기가 시작되는 가을의 쾌청한 하늘은 이내 흐린 하늘이 되어 자주 눈이 내리곤 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눈의 황량함을 마주한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마음이 시린 것. 캐나다의 눈이 꼭 그랬습니다. 하얗고 깨끗한 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어느새 끝도 없이 넓은 공원의 대지 위로 쌓이면 그 위를 갯벌을 걷듯 조심스럽게 파고들어 갔습니다. 온몸에 무게를 실어 한 발씩 조심스럽게 내딛으면 눈에서는 뽀드득- 뽀오드득 하는 맑은 소리가 났습니다.


눈이 쌓이는 소리(사각사각-)와 눈을 밟는 소리(뽀드득-뽀오오드득)가 함께 할 때, 눈앞은 마치 창가에 흐린 먼지가 낀 것처럼 온 풍경이 번지고. 물기를 조금 닦고 다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면 2m 앞에 한 그루의 둥글게 깎은 나무가 서 있고 그 주변은 하얀 눈이 끝없이 쌓여있습니다. 눈이 끝나는 곳에 회색빛 하늘이 있습니다.


눈이 오는 풍경은 그렇습니다. 아름답고 시린 것. 공기는 차갑고 하늘엔 푸른빛이 없고 지평선은 고요하고 맑은 그런 낯선 풍경.풍경은 아마 가슴속에 평생 남아 있을 겁니다.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평생 이것을 묘사하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자연은 인간을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자연은 우리에게 해석을 맡겨두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니체의 말처럼 자연을 볼 때 본능적인 편안함을 느낍니다. 풍경이 가진 뿌리 깊은 자존. 자연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풍경이라는 이미지에 녹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미지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풍경을 잘 묘사하는 게 글 쓰는 사람의 일이라고도 생각해서 소설을 볼 때 얼마나 자연을, 풍경을 잘 표현하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제 스스로도 풍경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일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눈 속에서 발견한 어떤 시린 황량함은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웠습니다. 풍경은 고정값이지만 이 풍경을 묘사하는 글은 아름다움에서 또 어떤 단어로 계속해서 달라질 것입니다.


물론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글이 우리의 감정을, 자연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


한 때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영상 안에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글의 매력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조그마한 끌을 가지고 파고 또 파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듭니다. 다소 불가능한 것을 알지만 내 자신을 믿고 묵묵히 나아가는 것만큼 인간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이 또 있을까요?


눈이 오는 날 황량함과 위대함을 함께 생각합니다. 이것 말고도 기억에 대해서, 어떤 시절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만 오늘은 이렇게 눈에 대해서만 쓰고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다른 말들로 오늘 느낀 감정과 자연이 표방하고자 하는 가치를 흐리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제가 낼 수 있는 힘을 다해서 눈이 오는 풍경에 본질적으로 다가가고자 하였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아~우와~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