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때 공을 정확하게 치면 돼

by 이시현

테니스를 치고 왔다. 하루 종일 테니스 영상을 보고 멋진 폼을 연구한다. 그런데 공만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리겠다.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치느라 폼이고 뭐고 생각할 시간이 없다. 조금 더 차분해질 수 없을까? 페더러처럼 쉽게 그리고 우아하게 공을 치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 마음이 급할까.

마음이 조급한 건 요즘 들어 가장 마음에 안 드는 포인트다. 파워풀한 일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될 일도 그르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애정 문제에 있어서 급하디 급하게 달려들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란 걸 깊이 깨달았다. 상대방에게 나를 생각하고 좋아할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하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조급해서 자꾸 휘몰아치려 한다. Stay calm! 공이 오든 공이 안 오든 칠 준비만 하고 공이 오면 그때 잘 치면 된다.

요즘 들어 테니스가 너무 좋다. 배울 때는 정작 아무것도 안 찾아봤는데 지금은 롤랑가로스는 물론이고 챗 지피티로 최고의 선수, 테니스 그립 잡는 법을 찾아본다. 새로 산 라켓이 너무 좋아서 출근할 때도 들쳐 매고 간다.

처음 시작하게 된 건 예전에 만났던 친구 때문이지만 지금은 스스로 찾아보고 깊이 좋아한다. 역시 누군가 시켜서 될 일이 아닌가 보다. 내 스스로 깨닫고 좋아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깐 휘몰아치는 때 말고 틈이 필요하다니까. 스스로 깨달을 틈. 테니스도 억지로 할 땐 그렇게 좋은지 몰랐는데 이제야 좋다.

그런데 좋아하면 불안하다. 꾸준히 좋아하지 못할까 봐. 내 기분이 또 구렁텅이에 빠져버릴까 봐. 업 앤 다운되는 내 텐션과 좋아하는 마음이 무섭다. 그래서 가드를 올린다. 최대한 안 좋아해 보려고 혹은 온 힘을 다해서 좋아해버리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되면 또 사랑이 그르치게 되는 건데. 조금 더 자연스럽게 내버려 둘 수 없을까. 인격 수양이 따로 없다.

좋아해서 상처받은 일이 너무 많다 보니, 그 기분이 나를 해친 적이 많다 보니 사랑 자체에 회의감이 들고 무섭다. 오죽하면 테니스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버거울까. 나를 부러뜨릴 만큼 사랑했던 것들이 많았는데 그것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버렸다.

영영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감정도 이제야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 그들이 꿈에 나와 화해를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프다. 속이 쓰라리다. 그럴 때 그냥 몸을 혹사한다. 예전엔 마음이 아파서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나 혼자서 몸을 죽어라 쓴다. 운동을 하고 괴롭게 하고 찬물 뜨거운 욕탕을 반복하며 혼을 빼려 한다.

머신 불도 쳤다. 발목이 아파도 폼이 별로여도 공을 뚜드려 팼다. 토할 것 같아도 그냥 때려봤다. 그렇게 혼이 빠지고 싶었다. 되지 않은 것들을 얼마나 거쳐야 되는 것 하나가 나올까. 그러면서도 이 즐거움조차 결국엔 잃게 될까 봐 테니스도 운동도 어떻게 꾸준히 좋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찌 보면 이제야 사랑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기쁘고 즐겁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거다. 이 행복을 쉽사리 뺏기지 않고 싶어서 말이다. 누군가는 그게 방어적 기제라고 하겠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나를 성숙한 사랑의 준비 자세가 아닐까.

미래가 보이지 않았지만 좋아했던 것들이 많다. 순수한 마음이었다. 순수한 지향이었다. 나 스스로도 아닌 걸 알았지만 기꺼이 걸어가서 나자빠진 것도 많다. 알면서도 걸어가 보았다. 용기가 있었기에 경험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실패는 쓰라리고 아팠다. 영영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구렁텅이에 몇 번 빠져보니 실패 자체가 싫은 거다. 어떻게 하면 내가 관계에, 일에 모두 실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젠 경험이 무섭다. 부딪혀야 성장하는 걸 알지만 잠시 피하는 중이다.

어느 정도로 막대기가 휘어야 혹은 부러져야 세상 사는 게 한결 수월해질까. 언제쯤 사는 게 참 살만하다고 느껴질까. 어제까지만 해도 기분 좋게 책을 읽고 잠에 들면서 이 행복이 너무 좋다, 사라지지 마라 이러고 잤는데 오늘은 또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는 거다. 영원한 건 없다. 그래서 아쉽고 그래서 다행이다. 언제쯤 조금 숨통의 틔우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아픈 일도 줄어들까.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생각보다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서운하고 속상하다. 언젠가 내 일이 잘 되리라는 믿음은 있지만 지금 이 시기를 견디기가 참 어렵다. 마음의 수양은 얼마나 거치고 거쳐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열매를 얻을 수 있을까.

그냥 따먹은 열매보다 일 년을 기다려서 내가 진짜 먹고 싶었던 열매를 먹는 게 더 값지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려면 당장 열매가 없다 하여 다른 열매로 때우거나 아직도 익지 않은 열매를 따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코 궁극적인 만족을 줄 수 없다. 알지만 적당히 열매를 따먹고 싶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쉽사리 그 길이 허락되지 않는다. 어째서 내가 손을 뻗을 때마다 보이던 열매를 사라지게 하시는지. 어쩌면 아직 때가 아니라는 계시일지도 모른다. 진짜 열매를 따먹을 최적의 시간을 위해 쉽사리 무언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럴싸해 보이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내 가슴속에 부러움과 질투를 낳는지 괴롭다. 늘 번뇌하지만 남의 불행을 재료로 행복해지지 않기를, 남의 행복을 근거로 나 자신이 슬퍼지지 않길 노력한다. 진정으로 축하할 일은 축하하고 슬픈 일은 슬픈 일대로 위로를 줄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쓴다.

마음이 고운 사람을 현명한 어른들은 참 잘 알아본다. 어른들이 날 좋아해 주시는 걸 보면 내 마음이 꽤 고운 가보다 생각하고 있다. 자뻑일지 모르겠지만 해로운 마음을 담아두지 않기 위해 부단히 검열하고 흘려보내려 노력한다. 상처도 가슴속에 계속 남아서 내 사랑을 왜곡하지 않게 잘 흘려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어쩌면 언젠가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저 제때 모든 게 와야 할 시간에 오고 가야 할 시간에 갔음에 감사하고 있다. 그것만큼 행운이 있을까. 가야 할 시간에 갈 것이 떠나지 못하면 악연이 되어 서로를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하고 누군가는 집착하게 만든다. 제때 떠나 줬음에 감사하자. 결국 내 것만이 살아남는다. 진정으로 남아야 할 것들을 거르기 위해 시련이 존재하는 거다. 이렇게 보다 간단한 주인공 마인드로 서사를 만들어가야 조금 덜 괴로울 것 같다.

다시 한번. 공이 오든 안 오든 일단 자세를 잡고 기다리고 오면 정확하게 치면 되는 거다. 모든 건 제때 올 것이고 진짜로 올 때 정말 제대로 딱 한 번만 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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