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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언니 Feb 07. 2019

길냥이에 대한 사회적 포용

귀 끝을 내어 줬으니 시민권을 주셔야죠.

새로 이사 온 빌라 주차장에 길고양이 네 마리가 살고 있었다. 노란색 계열의 고양인데 그 중 한 마리는 이 집터에 살던 집주인이 버리고 간 고양이라고 들었다. 이름 없는 지역 건설사에서 단독주택 부지를 사서 여덟 세대의 다세대 주택을 지어 분양했고, 처지가 비슷한 고양이들이 주차장에 모여 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어느 날 보니 밥그릇이 생기고 고양이 집이 들어섰다. 측은지심이 많은 어느 아주머니께서 집사가 되어 돌봐주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퇴근길에 나에게 눈을 껌뻑거리며 인사하더니, 다리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며 애교를 부린다. 처음에 식겁했다. 자주 보니까 정도 들고 귀여워서 참치 통조림을 주기 시작했다. 점점 예비 집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곳은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빌라촌이다. 새로 지은 다세대 주택은 거의 한 집에 한 대에 가까운 주차대수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1층은 필로티로 된 주차장과 계단실로 이루어진다. 길인지 주차장인지 모를 그 사이를 지그재그로 가로질러 걷는 출근길에 만나는 이웃이 있다. 삼색이, 흰 양말, 선글라스, 호박이는 매일 만나는 반가운 이웃이다. 자세히 보면 귀가 조금씩 잘려있다. 중성화된 고양이는 수술 후 한쪽 귀 끝을 잘라내는 것으로 표시한다. 회복 기간을 거친 후 원래 있던 영역에 다시 방사한다. 이 중성화 사업으로 2013년 25만이던 길고양이가 13만 9000마리로 감소했단다. 중성화 사업 전의 수치로는 서울시에서 살고 있는 32만 마리의 고양이 중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7만 마리이고 25만 마리가 버려진 고양이고 전국적으로 버려진 고양이는 백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개처럼 동물등록제를 하지 않아서 버려지는 고양이가 많은 것일까?


집사 아주머니께서는 고양이들을 병원에 데려가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고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 무리에서 대장 고양이가 병들어 죽는 일이 생겼다. 처음 볼 때부터 마르고 병약했는데 새끼 고양이가 성인 고양이가 될 때까지 어울려 살더니 결국 대장 고양이의 죽음과 함께 서열다툼이 일어나고 모두 그곳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 난 후 또 이름 모를 고양이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사는 것을 보고 고양이가 영역 동물이란 뜻을 진심 이해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로, 죽인다고 해서 그 지역에서 아예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고양이가 빈 영역을 ‘접수’ 하기 때문이다. 이를 진공 효과라고 하는데, 중성화된 고양이가 자리를 지키면 오히려 다른 고양이가 유입되지 않도록 막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의 주요 홍보 포인트였다고 한다.

(서열 다툼 후에 돌아온 길냥이는 먼 곳으로 못 가고 옆 집 주차장에 살고 있다.)


길고양이의 수명이 길어야 4년 정도다. 중성화 수술을 모두 시킨다고 해도 적어도 4년이란 시간 동안 거세를 당한 길냥이는 운명적으로 함께 살아야 하는 이웃이다. 중성화시켜 방사한 다음 길냥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착한 집사의 선행을 기다리기보다 정책적으로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밥과 집을 줘야 한다.

다세대 주택 주차장 같은 빈 공간에 길냥이 집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2년 정도 관찰을 해보니 확실히 고양이는 영역 동물로 한 집터에 한 마리 이상 살기가 어렵다. 식료품 배달용 스티로폼 박스는 겨울철 길냥이 집으로 유용하게 쓰이는데 기능도 충족하면서 보기에도 예쁜 고양이집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고양이 급식소를 자원봉사자 말고도 지자체 지원으로 확대해서, 쓰레기를 뒤지지 않고 건강한 먹이를 먹고살 수 있게 도와야 하지 않을까?


(다른 훈훈한 사례들도 많겠지만,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발견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16137


시민권을 줘야 한다.

밥과 집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네에서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더 고민을 해보면 어떨까? 2년 동안 몇십 마리의 길고양이에게 아는 척을 했지만 먼저 공격하는 놈을 만난 적은 없다. 생각보다 길고양이는 온순하고 깨끗하다. 개냥이들도 참 많다. 입주민 동의가 있는 다세대 주택이나 개인주택에서 더 관심을 가지고 케어할 수 있게 공간을 내어주고 동네 주민들끼리 관심을 가져주면 어떨까. 거창하게 시민권을 줘야 한다고 했지만, 학대로 부터 길고양이를 지키고 정서적 동네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25185


설 연휴가 지난 주에 여전히 길냥이는 살아간다. 이 길에서 태어났으니 여기가 고향이겠지.. 귀경하는 나를 보고 눈을 살짝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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