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지언니 Oct 12. 2020

어디에 살 것인가?

Design Narrative 2


지 : 지난번 호에 코리빙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밀레니얼’이라고 불리고 있는 20대 말 30대 초반의 ‘1인 가구’를 주요 수요층으로 설정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제 그들은 어디서 살 것인가로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인데요. 미래의 입주자로 정한 밀레니얼은 어디서 사는 것을 선호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분석을 시작하셨나요?


이 : 숲세권, 공세권 등 좋은 환경을 찾아 교외 신도시 지역으로 향하고 있는 일반적인 가정과 달리 도시를 배경으로 독립된 경제적 활동을 하는 이 시대의 밀레니얼들은 주거의 환경’보다 ‘주거의 편의성’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절반 이상의 끼니(60% 이상)를 외부에서 해결하는 생활 특성상 집 근처에 공원이 있는 것보다 편의점과 식당과 지하철 역이 있는 것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어요. 또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시기라 집과 직장을 가깝게 하고 이렇게 절약되는 시간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 경험을 넓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입니다. 이렇게 입주할 대상에 대한 생각을 하나씩 정리하고 분석하면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장소에 대한 생각을 좁혀가고 있습니다.


지 : 밀레니얼은 도심에 살면서 도시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생활을 하고 싶지만, 주거비로 많은 돈을 낼 수는 없는 세대잖아요. 그런데 적정 비용의 주거비를 내면서 땅값이 높은 도시에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주거 대안이 공유 주거가 아닐까 싶어요. 코리빙이 안착하기에 서울이라는 도시는 어떤 도시라고 생각하세요?


이 :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지되어 온 서울은 참 큰 도시입니다. 역사와 전통, 문화, 경제, 그리고 규모가 공존하는 속칭 모든 것을 가진 도시이지요. 이 서울에는 현재 천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25개 자치구와 424개 행정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서울에는 좋은 입지가 정말 많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우리는 일단 서울의 역사적 대표성을 가지며 경제 활동의 핵심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성곽 사대문 경계를 따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일터가 서울 중심부에 있고 여기에 가까울수록 밀레니얼’의 주거지로 유리할 것이라는 전제에 따른 것이지요.


지 : 비싼 땅값과 사업비를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적정한 임대료를 내고 살 수 있는 집을 도심에 만든다는 것은 손익을 잘 따져 보아야 하는 일일 텐데요. 우선 구체적인 지역을 어떻게 선정하셨는지 그리고 부동산 전문가는 아니시지만 토지의 가격 선정은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이 : 말씀하신 주거비에 대한 생각도 입지 선정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 입지 검토에 무척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부동산의 가격은 정말 엄격하게 입지와 개발 가능성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거든요. 우리가 대상지를 물색하며 만나게 된 부동산 전문가들마다 공통적으로 조언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부동산 가격의 성장세도 크고 안정적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속칭 ‘부동산이 흥하고 있는 지역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주로 추천받은 지역이 최근까지도 가격 상승이 높았던 강남 지역이나 마용성 지역이었지요. 하지만 팀에서 내부적으로 설정하였던 가격 한계에서 한참 벗어나는 넘사벽인 땅이 대부분이라 검토를 시작할 엄두를 못 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사업성 검토를 선행하고 이 과정에서 도출된 적정 임대료에 맞는 가격의 토지와 동네를 찾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최근 많은 공공기관에서 제공하고 있는 토지와 관련된 공공 데이터 또한 몇몇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우리의 분석과 검토를 객관화하는데 잘 이용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나름 준비한 돋보기를 들고 모니터에 펼쳐진 서울 사대문의 동서남북 지역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역시 서울은 큰 도시였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서 살펴보니 동네마다 구석구석에 가능성 있는 후보지들이 하나 둘 나타났어요. 하지만 이 중에서 어느 지역을 선택해야 할 것 인가는 이러한 다양한 정보와 자료, 숫자와 지도 만을 가지고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격과 면적도 문제였겠지만 우리가 만들 주거 상품이 주변 지역과 사람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제공할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더 필요했어요. 부동산과 관련하여 조언해준 지인 분께서 건물이 만들어지고 ‘10년’ 그리고 그 이후의 ‘10년’을 상상해 보고 입지를 검토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새로운 건물은 10년 동안은 새 건물이어서 잘 지낼 수 있지만 나머지 10년은 지역의 좋은 변화와 함께 해야 가치를 유지하며 잘 지낼 수 있다고 하셨어요. 입지를 생각하는데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 : 사무실 벽에 정릉천 일대 지도를 크게 붙여 놓으셨던데요. 사대문 안에서 사업비와 토지비 기준에 합당한 곳으로 정릉천 일대의 어느 지역을 선정하셨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어요. 사대문 안에 많은 곳을 검토하셨을 텐데 토지비 기준 외에도 다른 기준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지역을 선정하시면서 그곳에서 밀레니얼이 좋아할 만한 갬성 플레이스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신 것인지요. 요즘 레트로라는 키워드가 밀레니얼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하나의 코드잖아요. 90년 대생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황금시대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곳을 찾으신 것 같은데 소개를 좀 해주시겠어요.


이 : 시내 중심을 지나 동대문을 나온 종로길은 성북천을 지나 정릉천을 만나게 됩니다. 이 남북으로 지나는 정릉천을 중심으로 동쪽 서쪽으로 한두 블록씩, 북쪽으로는 고려대 앞 블록 까지가 제기동입니다. 한약 냄새 듬뿍 나는 서울 약령시장과 경동시장, 청과물로 유명한 청량리 종합시장 등 북적대는 큰 시장 여러 곳이 이 제기동에 있지요. 최근 청량리 지역의 재개발에 영향을 받아서 제기동역 가까이의 상업지역에도 대규모의 원룸 공사가 몇몇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서울 지역 중에서 현재까지 비교적 개발의 압력이 크지 않은 대표적으로 조용한 지역 중 하나입니다. 노후 저층 주거지가 많아 재건축이 일부 진행되기도 하였지만 잘 진행되지 못하고 종료된 사업이 많을 정도로 개발의 압력이 크지 않은 상황이지요. 제기동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이곳이 서울 시내인가 싶을 정도로 여유롭고 평화로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끌시끌 한 종로 길거리에서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이 곳에선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지형적으로 매우 편안한 평지에 볕이 잘 드는 저층 건물이 대다수이고 군데군데 50년 이상 된 도심형 한옥이 세월의 무게를 버티며 아직까지 잘 사용되고 있는 모습이 동네 곳곳에서 보여요. 젊은 밀레니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서울의 레트로한 모습이 많이 남겨진 곳이지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노후화된 느낌이 많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앞으로 단시간에 급작스레 변하진 않겠지만 대신 꾸준히 지속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지 : 사대문 안이지만 조금 덜 핫한 곳을 주목하신 것이네요. 연남동 익선동에 비해 조금 올드한 동네가 아니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오히려 밀레니얼이 사는 곳이 그들만의 감성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기회의 동네라는 생각이 들어요. 코리빙이라고 하는 조금은 트렌디한 주거시설이 지금은 이 지역의 분위기에 다소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고 고민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주변에는 대학가도 많잖아요. 코리빙도 도시주거사의 한 획을 긋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좀 더 긴 호흡으로 동네를 바라보면 어떨까요?


이 : 사실 익선동, 연남동도 10년 전에는 잘 알려진 지역이 아니었어요. 재개발이 무산되어 표류하던 종로 5가의 도심 한옥밀집지가 익선동이었고 홍대의 비싼 물가를 버틸 수 없었던 이들이 향하던 올드한 곳이 연남동이었죠. 이 두 지역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서울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어요. 또한 우리의 주거 문화도 이처럼 짧은 시간에 큰 변화가 있었어요. 1960년대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아파트가 20년이 채 안되어 1980년대 서울 강남을 주름잡는 대표적 주거 상품이 되었고 지금은 우리나라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주거의 형식이 되었어요. 저희와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 손상현 교수가 얘기하고 있듯이 소유하는 것보다 공유하는 것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 앞으로 코리빙 형식의 주거가 도심지역에서 보편적인 주거의 한 모습이 될 것 같습니다. 보통 건물은 한번 지으면 오래도록 유지됩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20~30년 넘은 건물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요. 또한 건물은 긴 시간을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생활의 변화를 만들고 지역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의 건물을 지을 때 정말 여러 가지를 잘 생각해서 만들어야 하지요. 지금은 이렇게 조용한 제기동 지역에 우리가 만들 코리빙 건물이 10년 20년 후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또 그 건물 주변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지 : 마지막으로 부촌에 살고 싶지만 집세는 많이 낼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는 밀레니얼의 양가감정에 대해 어떻게 공감하시는지요? 오히려 정겹지만 손이 많이 가는 친구 같은 그런 곳에 살아 보자고 조언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 : 사실 저도 집세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많습니다. 해외에서 유학할 때 얇은 주머니 사정에 달마다 나가는 월세가 엄청 큰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리 넉넉하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이 월세가 큰 짐이 될 수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부동산 가격과 관련해서는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간삼이 준비하는 코리빙 프로젝트의 목표는 시대에 부합하는 주거 상품을 만들어 많은 밀레니얼들이 좋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함에 있어요. 저희는 부동산 개발로 수익을 취하는 전통적인 개발업자는 아니거든요. 좋은 건축은 지역을 발전시키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공시설이나 대규모 상업 시설이 아니더라도 지역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잘 설계된 건물은 주변 지역의 변화와 발전을 만들어 줍니다. 시작은 조금 힘들겠지만 우리는 이 건축의 힘을 잘 실현할 수 있는 장소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 건물은 미래를 만들어갈 ‘밀레니얼’들이 거주할 건물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열어갈 젊은 사람들이 살아갈 건물이 지역의 변화를 시작해주는 디딤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전 08화 누가 살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