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 "건축보다 행위" "소유보다 공유"에 이어 세 번째 주제는 "주택보다 거주"입니다. 마지막 주제는 거주라는 추상적 개념을 실제 설계안을 가지고 주택과 연결시켜 이야기해볼까 하는데요. 집을 표현할 때 언젠가부터 경험의 가치가 사라지고 마케팅 관점의 언어가 남발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난 호부터 교수님은 그런 경험적 가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밀레니얼이 사회를 만나고 도시를 경험하는 시작점으로 코리빙을 새롭게 제시한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거주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설계안에 구체적으로 녹여내려 하셨는지요?
손 : 거주는 삶의 문제에 가깝고 주택은 건축의 한 가지 유형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주택 안에 모든 인간의 행위가 담길 수 없는 것이지요. 삶이 주택 안에서만 해결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주택과 도시를 넘나들며 인간의 행위는 발생하며 그곳이 새로운 장소가 됩니다. 간삼 코리빙(co-living)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거주민의 긍정적인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연속 공간을 계획하고 이를 연결 공간이라 정의했습니다.
지 : 그 연결 공간은 우리가 꽃길이라 부르던 길 맞지요? 밀레니얼이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며 농담 삼아 이름 붙여준 길. 거리부터 옥상까지 쭉 연결된 그 계단은 퐁피두센터가 떠오르며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동 동선뿐만 아니라 꾸민 공간을 이웃과 공유하면서 계단의 숨겨진 잠재력을 잘 활용한 신박한 건축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 :이 공간은 옥상층에서 지하층까지 이어지며 인간의 다양한 행위를 담아내는 거주의 배경이 됩니다.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 거주를 위한 집은 사회 변화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 낼 것이며 방에서 시작해서 복도, 계단실, 옥상을 통해 사회와 면하고 저층부 상업 프로그램과 만나면서 도시가 연장되는 거주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지 : 지난해 학생공모전에서 우연히 코리빙에서 코어 커뮤니티를 구현한 당선작을 본 적이 있었는데요. 계단실을 코리빙의 실내 커뮤니티의 중심 공간으로 설정하고 시간대별로 입주민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꾸민 공간을 이웃과 어떻게 공유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것으로 기억나요. 간삼 계획안은 실내 코어 커뮤니티를 넘어 거리부터 옥상까지 연결되며 두루 관계를 맺고 있는 옥외 계단 형태인데요. 실내 중심으로 콤팩트하게 구성된 기존 코리빙에 비해 파격적인 것 같아요. 공간적 효용을 따져 보다가도 구현만 된다면 도시주거로서 코리빙이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기도 하죠.
손 :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행위는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간삼 코리빙(co-living)은 인간의 행위를 단순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의적 연속 공간으로 잠재적 새로운 행위의 가능성을 담고자 했습니다. 이 집은 물리적으로 실내 경계에 머물지 않습니다. 따라서 건축보단 연속된 거리에 가깝고 거리보단 복잡한 도시에 가깝습니다. 기존 가족을 거주의 기본 단위로 보았다면 지금은 개인이 거주의 기본 단위가 되고 이웃은 기존 가족의 사회적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간삼 코리빙에는 이웃과 사회가 있고 이는 개인 행위의 스펙트럼과 연결됩니다. 가장 프라이빗한 개인실과도 바로 인접한 복잡한 도시 속 인프라가 되는 것입니다.
지 : 실존하는 대지에 설계를 하셨으니까 현실적으로 동네와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고 맥락을 파악하셨는지 궁금해요. 설계하다 보면 대지의 형상을 보고 배치를 생각하고 그에 맞는 건축 장치를 그리기도 하는데 대지를 어떻게 분석하셨나요? 꽃길이라 칭하는 건축적 장치도 독특한 경험의 가치를 위해 매번 응용 가능한 공간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손 :크게 보면 건물 유형을 2종 일반주거지역에 길게 놓이는 가로형과 정방형 대지에 위치하는 단지형으로 설정하고 각각의 경우에서 새로운 탐색의 장소를 설정하면서 프로젝트는 구체화되었습니다. 사회과학자 Luther Halsey Gulick은 ‘인생은 탐색이다’라고 말했어요. 우리 선조의 삶의 현장이 거친 풍경 속 자연이었다면 현대인이 다양한 생각들을 자유로이 탐색할 수 있는 장소는 집이 될 것입니다. 정신적 공간적 탐색의 출발점으로 우리 삶의 본질적 가치와 맞닿아 있는 코리빙의 연결 공간은 자유와 선택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프로젝트의 핵심 공간이자 삶의 공간입니다.
지 : 마지막으로 팬데믹이 바꾼 집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질병관리본부의 자가격리 수칙 중에는 ‘가능한 방과 욕실을 혼자 사용하라’하면서 각자가 머물고 있는 집이 단순한 주거공간을 넘어, 감염병의 피신처이자 자가 치료 공간의 역할까지 요구받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지금 코리빙에는 사용자의 어떤 니즈가 추가 된다고 생각하세요?
손 : 감염으로 안전한 집과 하루 종일 머무르기 때문에 융통성 있게 쓸 수 있는 공간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실은 이동식 가구를 활용한 직방형의 열린 공간으로 계획했습니다. 복도와는 높은 창으로 마주하여 자연환기가 가능합니다. 고정된 큰 식탁을 놓기보다 재택근무자를 위한 작업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적 여지를 주는 방이자 요가 매트를 반듯하게 놓고 홈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방입니다. 다양한 행위의 스펙트럼과 위생적 거주환경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공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