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 예전에 사내에서 목례만 하고 지내며 대화를 해본 적은 없는 사이인 것 같아요. 교수님이 되어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미리 보내 주신 글을 읽어 봤어요. 코리빙 디자인을 고민하면서 염두에 둔 키워드가 단순함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의 단순함인지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손 : "simplexity"입니다. "complexity 복잡한" 사회를 배경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simple 단순함"을 발굴하고자 했어요. 즉, 공간을 행위 중심으로 재정의해서 불필요한 중복을 걷어내고 핵심 요소들을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남겨진 단순하고 가벼운 요소들은 보다 쉽게 연결될 수 있겠지요. 이 과정에서 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단순한 공간들이 연결되어 다양한 행위를 창발하는 것이죠. 마치 새로운 길을 선택해서 기존에 보지 못했던 경관을 볼 수 있듯이 이를 통해 차이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생각하며 디자인해요. 하지만 미래는 전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기본 요소들을 보다 빠르게 재정의하고 재조합할 필요가 있어요. 다양한 공간이 재조합 되고 이는 또다시 새로운 행위를 이끄는 것이죠.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이어서 하도록 하지요. 그런 새로운 기회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 : 이야기 결은 다를 수 있지만 요즘 자주 이야기되는 복합 공간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기존 방식으로만 쓰던 한정된 공간에 기획력을 더해 새롭게 쓰는 공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잖아요. 제가 온전히 이해를 못 한 것 같은데, 어떻게 디자인 요소들을 단순하게 만들어서 인간의 행위를 다양하게 연결한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해 주세요.
손 : 예를 들면 빨래를 하는 벽으로 구획된 세탁실 대신 “세탁”이라는 행위를 기준으로 개별실에는 작은 세탁기만 놓고요. 남은 면적을 모아서 밖에는 빨래방을 제공한다면 개별실에서는 간단히 세탁하고 건조하고 다림질은 할 수 있는 것이고요. 밖에서는 보다 전문 세탁 혹은 사이즈가 큰 세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동시에 그 빨래방에 큰 창이 있어서 멋진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런 새로운 기회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 : 그럼 론드리 카페 같은 그런 개념도 생각해 보신 거군요. 그곳을 만드신 분이 프랑스 교환학생 시절 코인세탁소에서 빨래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던 기억에 론드리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그럼 구체적으로 유학 시절의 경험도 좋고, 실제 주 사용자층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는 이렇게 살 것 같다 예상이 되는 부분들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손 : 밀레니얼 세대가 미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이유는 미래의 일은 9시부터 5시까지 책상에 앉아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해요. 실제로 미국 경제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의 38%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고요. 이들은 함께 일하지만 떨어져 있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고요. 밀레니얼 세대가 그들의 직업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도적으로 본인의 시간을 스케줄링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합니다. 그러한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는 이 세대에게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는 1인 주거는 좋은 매치가 될 것 같아요. 또한 그들은 생활에서 '소유'보다 '경험'을 중요시 하는 데다가 Co-living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이잖아요. 다른 사람과의 경험과 기회를 함께 나누기에 주저함이 없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Co-living이라는 주거 형태는 잘 어울리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지 : 첫 번째 디자인 내러티브는 건축보다 행위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인가요?
손 : 기존에 가족을 거주의 기본 단위로 생활했다고 한다면. 1인 주거 비율이 30%를 넘어서고 있는 지금의 사회는 개인이 거주의 기본 단위가 되고 이웃이 기존 가족의 사회적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도시의 인프라는 자연스럽게 이웃과 사회가 되어 개인 행위의 스펙트럼과 연결되고 있지요. 혼밥을 하는 개인에게 벽으로 구획된 키친과 식탁보다는 작은 쿡탑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고요. 가족과 함께했던 식탁 대신 그 면적을 모아서 하나의 큰 공유 키친이 만들어진다면 파티를 좋아하는 혹은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서 손님을 초대하길 원하는 개인에게는 식탁보다 더 좋은 장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 : 코리빙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에 대해 정리한 액티비티 맵을 봤어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숙사 설계를 한다고 하면 커뮤니티 부분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개인 공간이 독립적이지 못하기도 했는데, 요즘 코리빙을 보면 사적인 공간은 점점 더 개인화되고 호텔에 가까운 안락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원하는 입주자도 많아진 것 같아요. 코리빙보다 잠깐 사는 임대 주거에 가깝지만 살짝 호텔다운 집을 원하는 수요도 있거든요. 또, 커뮤니티는 선택적으로 참여하되 필수가 아니기 때문에, 공용공간을 사용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선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모두다 핵인싸는 아닐 수 있으니까요. 이런 차이가 라면을 방에서 먹냐 공용주방에서 먹냐 하는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의 얕은 생각으로 독립적인 공간은 편리하고 안락하게 디자인하면 되고, 공용 공간은 작정하고 의도적으로 디자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안고 서고 눕고 하는 행위로 구분을 했는데 공과 사로 행위를 정의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손 : 행위는 인간의 모듈, 즉 건축적 스케일과 더 관련이 깊다고 생각했어요. 공간은 공과 사로 구분되는 것이 좀 더 적절하다고 생각되고요. 다음 스텝은 행위와 공간이 연결되는 맵이 되어야 해요. 당연히 공과 사의 성격과 연결이 되는 것이지요.
지 :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독립된 공간의 안락함과 편안함은 가구랄까 공간의 크기와 관련이 있겠네요. 콤팩트 하지만 살기 편한 곳을 만드는 휴먼스케일이나 모듈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야 할 같구요. 공용공간은 입주자들이 모이는 목적와 사용 빈도에 따라 강약을 조절하며 디자인을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네요. 그런 의미에서 액티비티 맵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손 : 액티비티 맵은 인간 행위의 최소 단위인 서고 앉고 눕는 모듈에서 출발합니다.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조금은 프라이빗한 경험과 사람과 만나고 소통하는 조금은 퍼블릭한 경험들을 포괄하는 행위들의 지도입니다. 각각의 행위와 어떤 공간이 어떤 콘텐츠가 어떤 이미지가 연결되면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고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영감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프로젝트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 : 네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는 소유보다 공유에 대해 함께 나누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