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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언니 Sep 12. 2021

치유 경험

잠재적 환자가 기대하는 병원의 치유 환경


사람들이 병원에서 진정으로 찾는 것은
치유받는 경험



병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공간 천장에서 내리는 인공빛의 신비로움, 햇살이 드는 창가 가장자리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의 생명력, 그리고 최고 경영진의 마인드에서 새내기 의료진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병원에는 우리가 찾는 치유를 위한 디자인 환경이 숨어 있어요. 긴장되고 어딘가 불편한 가운데도 기억에 남는 병원 공간이 있으신가요? 매력적인 병원 내부에서 스마트한 진료서비스를 거치고 나니 몸이 한결 나아진 것 같은 경험은요? 병원이라는 건축 공간이 주는 경험은 분명 리조트나 호텔이 주는 것과는 달라요. 잘 느껴지지 않아도 병원 디자인에도 리조트에 버금가는 경험 디자인력이 필요해요. 치유라는 경험이지요. 병원 건축, 실내공간, 파사드, 병원의 바깥 외부공간의 조경 그리고 의료진 심지어 의료장비까지 병원에서 환자가 찾는 진정한 치유라는 경험과 디자인은 어떤 것일까요?




리조트를 닮은 싱가포르 주롱 커뮤니티 병원 (Jurong Community Hospital) 응텡퐁 종합병원으로 HOK 설계
환자가 누워서 볼 수 있는 식물을 키우는 발코니, 눈부심 방지를 위한 shading계획과 파사드, 에너지 절약을 위한 흰색의 외장재 선택 모든 것이 치유환경 디자인 디테일



치유의 영역은 생물학적, 사회적, 환경적, 지적, 영적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다섯 가지 영역을 기반으로 병원의 서비스 상품 목록이 제시된다고 해요. 쇼핑몰도 아니고 병원에 서비스 상품 목록이라니. 병원은 공공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이지만 대부분 상업화되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에요. 요즘 기업들이 최고의 서비스에서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이 병원 또한 최고의 경험 곧 치유되는 경험을 통해 차별화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올해 초부터 병원 현상설계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속한 팀은 병원의 내부 디자인에 집중하게 되었고요. 그 와중에 당락에 크게 좌지우지되지 않는 개념이지만 마음의 울림이 있었던 치유의 다섯 가지 영역에 대해 되새김질을 해보게 돼요. 막연하게 생각했던 치유환경에 대한 개념은 제임스 길모어와 조지프 파인 2세가 쓴 경험 경제라는 책을 읽으면서 구체화되었는데요. 책에서는 치유의 다섯 가지 영역을 오리건 주 더 델러스에 있는 MCMC Mid-Columbia Medical Center의 사례를 들어 짧게 설명하고 있어요.




병실 안 자연채광 창밖에 나무 그리고 최첨단 의료장비가 구비된 깔끔한 병실이 어떻게 치유에 도움을 주는지......
현상설계에 당선된 대구가톨릭대학교 칠곡병원 내부 이미지  @jinjaejinjae   ⓒ간삼건축




치유는 사전적 의미로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한다는 뜻이지만 질병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정신, 육체, 영혼이 하나로 치유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요. Dr. Leland Kaiser는 치료는 과학적 기술과 환자의 신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치유는 영적, 경험적,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환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해요. 치유는 하이터치이며, 치유시설은 환자의 전 경험에 걸쳐 두 차원 모두를 통합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치유와 치료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자주 어긋난 현상을 보게 되죠. 때로는 치료가 되었으나 치유에는 도달하지는 못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치료에는 실패하였지만 치유에 도달한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요. 치료와 치유. 참 신비로운 관계를 가진 단어에요. 저는 치료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치유라는 단어를 사용하려 해요.





치유의 다섯가지 영역




1. 생물학적 치유


의술이나 의료서비스에 의존하는 치유 개념이에요. 신체적인 치료를 위한 물리적인 장비와 시스템 그리고 의료진이 만들어 내는 병원의 근본적인 역할에 기반한 치유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을 스마트하게 공간에 담아 첨단병원을 만드는 것과 같이 직접적인 디자인과, 의료진의 휴식과 편의를 위한 공간을 잘 만드는 것처럼 간접적인 영역이 될 수도 있겠어요. 가장 비중이 큰 병원의 디자인 영역으로 많은 논의들이 있는 분야예요. (명확하고 일관성 있는 동선을 기본으로 협진이 용이한 진료시스템을 구축하고 찾아가기 쉬운 병원을 만드는 것, 체계적이 업무를 돕는 간호 스테이션, 감염으로 부터 안전한 수술실 플랜, 수술실의 교차오염방지, 수술실 연결동선, 수술실 내부 유닛 계획, 의료응급센터 동선체계, 외래진료부의 합리적 배치, 의료과실을 최소화하는 표준화 디자인에 속하는 외래 레이아웃의 모듈러화, 병실 계획 등 우리의 보고서를 차지하는 대부분의 내용일 수 있어요.)




2. 사회적 치유


아플 때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는 가족이 있어서 조금 더 빨리 병이 낫는 것 같은 경험을 해보신 적 있지요. 지금은 보호자 없는 병실이 자리 잡아서 보호자의 간병이 필요 없어요. 그렇다고 병원에 안 가 볼 수도 없기 때문에 환자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데이룸이나 거닐며 즐길 수 있는 정원 같은 병원 공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요. 이런 공간이 사회적 치유의 공간에 해당돼요. 디자인 영역으로는 외부공간 또는 공개공지나 조경 요소를 잘 활용하여 환자를 위한 녹색의 쉼터를 만드는 것을 포함하여, 환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것은 지역친화적인 병원을 만드는 것도 해당된다고 해요. 자주 못 보는 환자와 가족 방문객 간의 대화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데이룸이나 휴게라운지 같은 것도 해당이 되죠. 사회적 치유는 관계 가운데 일어나는 것으로 공간 디자인은 배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싱가포르 쿠텍 푸앗 병원 옥상 농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
도시를 녹지화할 때 병원은 어떻게 더 건강하고 치유에 도움이 되는 환경으로 바뀌어 갔는지 보여주는 인상적인 사례



3. 환경적 치유


사회적 치유를 위한 외부공간과 다소 겹치는 영역인 것 같아서 싱가포르 쿠텍 푸앗의 사례로 설명하려 해요. 이 병원은 도시의 80%를 녹지로 만들겠다는 정책방향을 병원의 바이오 필릭 공간으로 구현한 독특한 병원이에요. 도시를 녹지화할 때 병원은 어떻게 더 건강하고 치유에 도움이 되는 환경으로 바뀌어 갔는지 보여주는 인상적인 사례지요. 방문자의 경험에 따르면 쿠텍 푸앗 병원은 들어서는 순간 풀냄새, 새소리, 물소리가 가장 먼저 반겨주어 병원에 온 것이 아니라, 숲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고 해요. 3개의 병동 가운데는 큰 중정이 있고, 병동 건물을 연결하는 다리, 창문, 계단도 온통 나무와 풀로 우거져 있어요. 환자들은 자신의 진료 차례를 대기실에서 마냥 기다리지 않고 중정에 나와 여유롭게 기다린다고 해요. 무엇보다 병원의 가장 큰 특징은 건물 안과 밖의 경계가 없고, 병원 외곽을 담장 대신 나무와 풀을 이용해 가꾸어 외부 환경과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식물을 심어서 생물다양성이 가능한 환경을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내부도 벽이나 창을 아예 없애거나 넝쿨 식물로 창의 역할을 해서 자연채광을 병실로 유입시켜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을 극대화하죠. 병원에는 식량도 재배되는데 지역사회에 있는 한 원예 그룹은 새로 개간할 땅을 잃었고, 이에 병원은 원예 그룹이 옥상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했다고 해요. 옥상에서 농사가 잘돼서 지금은 옥상의 상당 부분에서 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죠. 병원 환자들이 창문을 통해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그것에서 즐거움을 느꼈고, 풍경을 통해 병을 치유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어요.




4. 지적 치유


MCMC 병원에서는 환자와 가족들이 대체 요법을 포함해 그들의 암 투병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의학도서관을 제공한다고 해요. 인터넷으로 자가진단을 하는 요즘에 일반인이 공신력 있는 의학 정보를 얻는 것과 같은 것이 지적 치유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꼭 물리적인 공간의 틀을 가진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상의 플랫폼도 지적 치유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어요. 요즘은 병원마다 수익시설로  의료 복합 상업시설을 계획하는데 그런 상업적 장소들에 의학정보 플랫폼 같은 공익적이고 지적인 치유 아이디어들이 더해져 활성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5. 영적 치유


MCMC에서는 대지 3분의 1을 비기능적 장소에 할애했다고 해요. 이것은 건강 문제가 대부분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전제로 한다고 하죠.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장을 풀도록 함으로써 유익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한 수단으로 명상이나 기도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끔 내부에는 명상실, 바깥에는 미로를 추가로 설치했다고 해요. 그렇게 MCMC는 로비의 부드러운 하프 음악, 휴식 수업, 마사지, 한중탕 등 치료와 함께 하는 가장 스트레스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해요. 가톨릭 재단 병원에 가면 환영 공간 로비에서 성당과 어우러지게 디자인된 영적인 분위기, 기독교 재단 병원에서 행해지는 수술 전 기도 같은 것이 영적 치유의 영역에 해당되겠죠.



은평 성모병원 로비는 환영의 공간이자 영성의 빛으로 꾸민 감성 공간으로 새로운 환자경험을 선사함  ⓒ간삼건축

 

        



결국 병원도 어떻게 디자인되었느냐에서
어떻게 느끼는가로


경험 경제 책에서는 범용품에서 재화 그리고 서비스에서 경험으로 그리고 경험을 넘어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경제적 가치들이 이동한다고 말해요. 경험을 궁극적 경제재라고 할 수 없지만 경험을 개인에 맞게 맞춤화할 때, 즉 고객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정확히 줄 때 그 고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죠. 오늘날 스스로를 서비스 분야의 일부로 간주하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이러한 사고방식이 등장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아 보여요. 건축설계도 서비스업이며 따라서 공간에서 우리가 느끼는 경험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업역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임은 분명하죠. 브랜딩을 전문으로 하는 독일 건축가이자 작가인 안나 클링만의 저서 브랜드 스케이프에서는 이미 경험으로서의 전환을 묘사한 것처럼 '어떻게 디자인되었는가'에서 '어떻게 느끼는가'로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건축에 대한 변화된 인식이 물리적 공간인 건축이 아닌 사용자의 열망으로 이런 것이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고 받아 들어야 하는 때가 아닐까 싶어요. 그 중심에 병원도 있고요. 우리는 병원의 물리적 공간의 디자인을 고민하지만 환자가 어떻게 병원을 느끼고 결국 치유에 이르는 경험을 하는지가 핵심 아닐까 싶네요.




현상설계에 당선된 대구가톨릭대학교 칠곡가톨릭새병원 내부 이미지  @jinjaejinjae ⓒ간삼건축




운이 좋게 올해 초부터 병원 현상설계와 의료 복합타운 사업자 공모에 참여하는 기회가 있었어요. 사실 우리 팀은 전문적으로 의료시설을 설계하는 팀은 아니에요. 하지만 비전문가의 미천한 경험으로 깨달은 치유환경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정리해 본 글입니다. 저 또한 언제 아플지 모르는 잠재적 환자이고 미래의 노인으로 그때 가고 싶은 병원에 대해서 가끔 상상해봐요. 우리의 바램과 우리가 구축하는 치유환경에 대해서 말이죠.



생로병사

춘하추동

우리가 태어나서 죽는 곳 병원!




참고자료 :

경험 경제, 경험을 비즈니스로 만드는 법 / 제임스 길모어, 조지프 파인 2세 지음

바이오 필릭 시티 / 티모시 비틀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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