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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Jun 03. 2019

"똑똑" 도어노커의 비밀

프랑스




"새는 연못가 나무 위에서 잠들고,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네"

  

당나라 때 일이다. '가도'라는 선비가 장안 거리를 거닐며 시 짓기에 골몰했다. 그는 마지막 구절에서 '문을 두드리네' 가 나을지 '문을 미네' 가 나을지 고민하다가 지체 높은 어느 관리의 행차를 막고 말았다. 관리는 경윤(京尹)벼슬에 오른 문장가 한유였다. 경윤은 당시 장안 시장을 일컫는 말이었다. 한유는 길을 막은 선비로부터 자초지종을 듣더니 "나라면 '미네'보다 '두드리네'를 쓰겠네" 라고 일러주었다. 이때부터 '다'와 '두드리다'를 합친 퇴고(推敲)란 말이 '글을 다듬는다' 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나는 의아했다. 왜 '민다'보다 '두드리다'가 더 좋을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 라뽀삐를 걷다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 의문이 반짝 다시 개를 들었다. 대문마다 매달린 도어노커 때문이었다.



여우가 시집가는지 비가 내렸다 날이 개었다 했다. 덕분에 나는 카페에 앉았다 골목을 걸었다 했다.


마을의 본래 이름은 생 시흐 라뽀삐(St. cirq Lapopie). 프랑스 남부 옥씨따니 지방을 흐르는 롯(Lot)강의  줄을 오지게  동네다. 크기는 손바닥만 할까. 차를 마을 입구에 세우고 7-8분 샛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인구는 2백 명 남짓.


프랑스 공영 TV 채널인 《프랑스 2이곳을 2012년 '프랑스 인이 좋아하는 마을' 1위로 뽑았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마을 유지들 낡은 건물을 손봐 손님 맞을 구색을 갖췄다. 마을 복판의 다 허물어진 성터. 그 아래 15세기 로마 양식 교회가 안간힘을  살아남았다. 골목길 뒤편의 버려졌던 건물은 예술가와 장인이 하나둘 씩 작업실로 되살리는 중이었다. 나는 꼬르드에서 호카마두르로 가는 길에 이곳에서 반나절을 보낼 참이었다.



롯강에서 보는 라뽀삐 모습. 이를 악물고 서있는 마을교회. 독수리 눈에 비친 라뽀삐와 롯강


라뽀삐는 마을 주변에서 벌어졌던 중세 남프랑스의 역사를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그중 하나. 잔 다르크는 1453년 보르도에서 올라오는 영국 왕 헨리 6세를 라뽀삐 부근에서 격퇴했다. 있다. 1198년에는 툴루즈 백작 헤이몽 7세가 이단으로 몰린 가톨릭 카타르(Cathar) 파를 이끌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내려보낸 토벌군, 알비주아(Albigensian) 십자군과 근처에서 운명을 걸고 싸웠다. 내 관심을 끈 것은 이 둘보다 더 전의 일이었다.


8세기 초반에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무어인이 있었다. 이들은 피레네 산맥에서 한 뼘이나 더 프랑크 왕국 안쪽으로 들어왔다. 즉 지금의 보르도에서 몽펠리에를 잇는 경계까지 올라와 러 앉았다. 무어인이란 이베리아 반에 살던 이슬람 교도를 말한다. 에스파냐에 두루 정착했던 무어인이 남프랑스 일대에 남긴 발자취는 서유럽 역사에잘 나타나지 않는다. 기독교 관점에서  역사니 어쩔 수 없다. 나중에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에게 패해 피레네 산맥 아래로 쫓겨나는 이교도 무리로 장하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거의 한 세기 동안 사실 이들이야말로 남프랑스 땅의 주인이었다. 바로 그 무어인이 살던 흔적을 나는 이곳 라뽀삐에서 발견했다. 문화 유산을 연구하는 향토 사학자도 아닌 내가 말이다. 이방인이자 일개 여행자일 뿐인 나는 스스로도 놀라고 당황할 수밖에.   



라뽀삐 하면 화장지 브랜드 같기도 하고, 라면과 떡볶이를 섞어 부르는 이름 같기도 하다.


내 눈에 띈 것은 문고리. 정확히는 여인의 손 모양을 한 대문 손잡이다. 이곳에선 도어노커(door knocker)라 불렀다. 라뽀삐 부근 프랑스 남부에선 쉽게 볼 수 있는 손목 장식. 하지만 프랑스 북부, 영국, 이탈리아에선 눈에 띄지 않는 모양이. 그러나 생각해보니 전에 여행했던 모로코, 스페인, 포르투갈에는 꽤 흔한 장식이기도 했다. 이건 뭐지 싶었다.


잠깐 어리둥절하다 곧 호기심이 다. 문고리에도 많은 사연이 있을 수 있는 법. 나는 걷다 말고 문고리에 빠져 구글 검색창을 뒤졌다. 만나는 마을 사람마다 질문을 해댔다. 거리에서는 잠자리 눈을 하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다. 마침내 이곳 라뽀삐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몇 가지 인쇄물을 얻었다. 랑스어에 익숙한 아내가 내용을 들려줬다. 알고보니 문고리는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했다.



왼쪽부터 고대 그리스인의 초기 문고리, 쇠막대기가 진화한 문고리, 로마시대 문고리


그리스인은 다른 사람 집을 함부로 드나드는 걸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약속 방문조차 그냥 들어가지 않고 꼭 문을 두들겼다. 지체 높은 집안은 대문에 노예를 묶어놓고 손님을 맞게 했다. 문간 노예는 졸고 있기 일쑤라 방문객은 매달린 쇠막대기로 대문을 툭툭 쳤었다. 최초의 도어노커였다. 그런데 이 쇠붙이로 사람해코지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황한 부자들은  꼬챙이를 떼어냈다. 대신 문짝에 피자만 한 원판을 붙이고 그 위에 쇠 동그라미를 달았다. 요즘 것과 비슷한 도어노커다. 로마는 이 도어노커를 유럽 구석구석 퍼 날랐다. 장인들은 밋밋하던 원판에 날랜 손끝을 보탰다. 이탈리아 잉글랜드 독일에서 화려하고 정교하게 제작된 도어노커가 붐을 일으켰다.  



더함성당 성소문고리, 폴란드 라지엔카궁 문고리,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문고리


영국 더함성당'성소 문고리'라는 게 있다. '생츄어리'(Sanctuary)라고 부른다. 740년 잉글랜드 린디스판(Lindisfarne) 교구의 주교, 키너울프(Cynewulf)는 칙령을 내렸다. 누구라도 성당을 찾아와 도어노커를 두들기면 37일간 먹이고 재우고 또 신변보호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칙령은 무려 1623년까지 지켜졌다. 이처럼 문고리는 종교와 깊은 관계를 가진다. 영국은 사자머리 문고리 일색이다. 사자는 용맹, 고귀함, 힘을 상징하며 사도 요한(St. John)을 가리킨다. 반면에 라뽀삐의 손 모가지 문고리는 무어인 즉 이슬람이 남긴 흔적이다.


라뽀삐의 문고리는 이름이 '파티마의 손'(Hand of Fatima)이다. 아랍어로는 함사(Hams). 함사란 다섯 손가락을 가리키는 숫자 5를 뜻한다. 파티마는 이슬람교를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넷째 딸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4촌, 알리와 결혼하여 유일하게 아들을 낳아 이슬람 가문을 이었다.



라뽀삐의 도어노커, 세비야의 도어노커, 오를레앙의 도어노커


무어인파티마의 손이 풍요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불행, 질병, 죽음으로 부터 가족을 지켜주는 부적으로 여겼. 이슬람이 지배했던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남부, 시칠리아, 모로코에선 모두 이 문고리를 대문에 매달았다. 오래된 것은 하늘하늘한 레이스 소맷자락과 손가락에 낀 반지까지 볼 수 있다. 이것을 달면 이슬람을 믿는다는 표시가 되기도 했다.


대문에 남자 손과 여자 손을 나란히 달기다. 각각의 문고리는 전혀 다른 소리를 다. 남자 방문객이 남자 손 고리로 문을 두드리면 집 안에 있던 여자들은 방문을 걸어 잠갔다. 시골 마을로 들어가면 손이 두 개 달린 대문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뚜르 푸아티에 전투(Battles of Tours Poitiers)에서 프랑크 왕국의 카를 마르텔이 이슬람 세력을 피레네 산맥 너머 몰아내기 전까지 남프랑스의 모든 집은 파티마의 오므린 손모가지를 잡고 두들겨야 문을 열어줬다.



포르투의 도어노커, 꼬르드의 도어노커, 라뽀삐의 도어노커
호카마두르의 도어노커, 꼴롱쥬 라후즈의 도어노커, 생 브누와 뒤소의 도어노커


파티마는 포르투갈의 도시 이름이기도 하다. 이베리아 반도는 8세기 약 800년 동안 이슬람을 믿는 우마야드 왕조 지배다. 이때 파티마란 이름을 가진 공주가 있었다. 공주는 레콩키스타 (Reconquista)에 나선 에스파냐 백작과 사랑에 빠져 가톨릭으로 개종했다는 이야기가 다. 레콩키스타란 가톨릭의 이베리아반도 재정복을 말한다. 포르투갈 허리께에 있는 도시 파티마는 이 공주의 이름을 땄다. 즉 도시 이름 파티마와 문고리 파티마는 쥐며느리와 민며느리 사이다. 아무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가톨릭의 딸을 자하던 중세 프랑스. 나는 십자군과 순례자의 체취가 흥건남프랑스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이슬람의 유물, 문고리를 만났다. 낯설면서도 재미있었다. 삶이나 여행에서 기대치 않았던 의외의 만남은 때때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예정에 없던 그들의 등장이 결국 여행을  재미있고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을. 정체가 밝혀지밝혀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그랬다. 이건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뽀삐 마을 끝까지 걸어내려가면 돌로 만든 문을 만난다. 문으로 쌓인 돌들은 시간과 이야기가 고체화된 것들이다.


한유는 글을 낯설게 만드는 손질이 진정한 퇴고라 했다. "문을 미는 것은 익숙한 곳에 드느낌이라 진부하다. 문을 두드려야 낯섦이 일고 호기심이 동한다" 라며.


라뽀삐에서 만난 도어노커는 문뿐만 아니라 여행자의 호기심도 두드렸다. 그렇게 들여다본 문 저편에는 무어인의 신비로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역시 '미는' 게 아니라 '두드려야' 새로운 걸 발견하는 모양이었다. 퇴고의 의미를 헤아리며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낯섦이 일고 호기심이 동하는지. 무리 봐도 애초에 담으려 했던 생각 제대로 표현되었는지 자신할 순 없으니  


어쩌랴,  이젠 한 수 글로 귀띔해 줄 한유를 기다릴 수밖에.











posted by 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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