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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Jun 11. 2019

울어라 롤랑의 뿔고둥

프랑스




"지금이라도 뿔고둥을 부는 게 좋겠요. 그래야 폐하께서 우리의 죽음을 알고 복수를 해줄 테니까요"


이에 롤랑은 결연히 등에 멘 뿔고둥을 꺼내 물었다. 그리고 두 볼이 터지라 불었다.



영국 옥스포드에서 발견된 롤랑의 노래 원본. 롤랑의 뿔고둥 '올리판'


1834년 발견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무훈 서사 롤랑의 노래 한 구절이다. 롤랑의 노래(La Chanson de Roland)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프랑스까지 밀고 들어오는 이슬람 세력에 맞서 싸 프랑크 샤를마뉴 왕과 용맹한 기사들에 관한 이야기다. 등학교 다닐 때 얼마나 빠져 읽었던지.


샤를마뉴 왕은 767년 프랑크 왕국을 세우고 800년 로마 교황으로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대관식을 치렀다. 그에겐 언제나 한 치 흐트러 없이 곁을 지키는 12명의 기사가 있었다. 샤를마뉴 왕은 그중 가장 신뢰하는 기사 롤랑에게 가톨릭을 수호하라는 계시 천사에게 받은 칼, 듀란(Durandart)건넸다.



샤를마뉴 왕이 조카 롤랑에게 성검, 듀란달을 하사하는 모습. 샤를마뉴 왕의 원정


8세기 후반. 샤를마뉴 왕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에스파냐를 정벌하였다. 궁지에 몰린 마지막 이슬람 세력 사라고사의 왕이 항복 사절을 보냈다. 인질 스무 명과 금은보화가득 실은 50 가톨릭으로 개종하겠다고애원하는 에 샤를마뉴 왕은 흔들렸다. 7년이나 계속된 원정으로 병사들은 지쳤고 마침 작센지방에서 반란 조짐까지 있던 터였다. 샤를마뉴 왕의 조카인 기사 롤랑은 거짓속지 말고 이슬람 세력을 마저 쳐부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왕은 자신의 매제이자 롤랑의 의붓아버지인 배신자, 가늘롱에게 속아 휴전 수락하고 프랑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샤를마뉴 왕은 롤랑에게 후미를 지키혹시 모를 적의 을 차단하는 임무를 맡겼다. 왕의 본대가 피레네 산맥을 빠져나간 후 롤랑의 후위 부대는 매복한 이슬람 10만 대군과 맞닥뜨렸다. 롤랑의 오른팔, 올리비에는 어서 뿔고둥을 불어 샤를마뉴 왕에게 적의 추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자고 한다. 롤랑은 배후의 적을 차단하여 본대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할 일이라며 이를 거절했다.  



롱스포계곡의 싸움과 너무 늦게 도착한 샤를마뉴 왕의 본진


롱스포 협곡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롤랑의 군사는 2만에 불과했지만 10만 이슬람  압도하였다. 골짜기가 이슬람 병사의 시체로 뒤덮일 때쯤 사라고사의 왕 마르실이 20만 원군을 끌고 롤랑의 다. 롤랑과 열두 기사가 아무리 찌르고 베어도 밀려오는 이슬람 군사를 감당할 순 없었다. 상처투성이 롤랑은 올리비에마저 쓰러지자 성검, 듀란달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늘 높이 내던지고 구원의 뿔고둥 올리판 (Olifante)을 꺼내 었다.


                   "우웅  뿌우웅"


고둥 소리를 들은 샤를마뉴 왕은 롤랑이 함정에 빠진 걸 알고 머리를 돌렸으나 싸움은 이미 기운 뒤였다. 샤를마뉴 왕은 도망치는 이슬람 군를 추격하지만 롤랑과 12 기사의 시신마저 찾기 어려웠다. 왕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 병사들을 수습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훼손이 심해 도저히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다는 보고를 받고 샤를마뉴 왕은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다. 기도가 끝나자 죽은 프랑크 군사의 입마다 붉은 장미가 피어올랐다. 샤를마뉴 왕은 장미가 핀 시신들을 모아 무덤 만들고 십자가를 세웠다. 로시스바예(Rosis Valle). 우리말로 '장미의 계곡'. 스페인 북부의 작은 마을 '론세스바예스'가 바로 그곳이다.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기사 롤랑의 동상. 스페인 론세바예스 무덤터와 성당


프랑크로 돌아온 샤를마뉴 왕은 배신자 가늘롱을 처단하고 작센의 반란마저 잠재운다. 어느 날 잠자리에 왕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새로운 계시를 받는다. "이교도 아귀에서 앵프 성을 구하라" 앵프 성은 바로 예루살렘 . 십자군의 원정은 계속되어야 했다.


이렇게 롤랑의 노래는 끝다. 하지만 아직 남은 한 가지 더. 롤랑이 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계곡에 던졌던 칼, 듀란달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듀란달은 미카엘 대천사장의 도움으로 수 킬로미터를 날아와 '호카마두르'라는 마을 절벽에 박혔다. 호카마두르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 기사 롤랑이 젊어 세례를 받은 곳이다. 성당 옆 절벽에 녹이 슨 채 칼날이 반쯤 박힌 명검 듀란달. 나는 그것을 보려고 호카마두르를 향해 몇 시간 째 가속페달을 밟는 중이었다.



호카마두르를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새로운 도시로 들어갈 땐 마음을 가다듬는 나만의 의식이 필요하다. 노트르담 성당 옆 절벽에 녹슨 채 꽂힌 롤랑의 칼, 듀란달
호카마두르의 이쪽저쪽 모습


울창한 숲을 어느 순간 벗어났다.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깍아지른 절벽. 그리고 절벽을 기어오르는 듯한 순백의 건물들이 빼꼼 고개를 돌려 나를 맞았다. 여기다. 호카마르(Rocamadour). 나는 오르막길 한쪽에 차를 멈추고 길 위로 내려섰다. 숲 속을 헤매던 중세의 순례자도 계곡 사이로 돌연 나타나는 마을을 나처럼 발견했을 것이다. 그들도 바로 이쯤에서 안도의 숨을 고르며 성호를 그었을 게 틀림없었다.



호카마두르를 가리키는 이정표. 숨을 멎게하는 호카마두르의 모습


호카마두르는 이름부터 생김새까지 온통 신기한 이야기 투성이다. 남프랑스 알주 (Alzou) 협곡 300미터 높이 석회암 절벽 위에 세운 중세 마을. 호카마두르는 바위 (roc)라는 말과 이곳에 수행하던 수도자 아마두르(St. Amadour)의 이름을 따서 '아마두르의 바위'(rocamadour)라고 부르면서 비롯하였다. 현지 발음은 h자 콧소리를 앞뒤로 내는 "홐캬마듀흐"



호카마두르. 호카마도르 두어번 이름을 부르면 온갖 전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호카마두르의 아래부분을 이루는 중세 마을 시테


마을은 절벽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성지(santuauries) 라고 부르는 절벽의 중간 참이 핵심이다. 성 미카엘 성당(St. Michael chapel), 노트르담 성당(Notredam de Rocamadour), 성 소베르 성당(Basilica of St. Saveur)과 크고 작은 성지 7개가 모여 있다. 한쪽 절벽을 벽으로 이용하여 건물을 지은 까닭에 마치 성당이 절벽에 박혀 있는 모습이다. 중간 참을 가려면 위쪽 성채(Chateau)에서 갈지(之) 자 길로 절벽을 내려가거나 아래쪽 중세마을 시테(Cite)에서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호카마두르에서 은둔하며 수행하던 아마두르는 시체가 썩지 않은 체 1166년 노트르담 성당 출입문 벽에서 발견되었다. 소문을 듣고 순례자들이 찾아들었다. 마을은 스페인 콩포스텔로 가는 길목이기도 해서 순례자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성지로 떠올랐다. 이곳에선 수행하다 죽은 수도자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은 상태로 종종 목격되었다. 사람들은 성인의 유해를 보고 소원을 빌거나 병이 낫는 기적을 얻기 위해 고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온몸을 쇠사슬로 묶고 성당으로 향하는 216개 '순례자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올랐다.



성당 벽 곳곳에 성인들의 시신이 발견되곤 한다. 무릎으로 순례자의 계단을 기어오르는 사람들


중세 사람들은 아마두르가 성경에 나오는 세리(稅吏) 삭개오(Zacchaeous)라고 믿었다. 삭개오는 십자가를 진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베로니카의 남편. 그는 예수를 만나 깨달음을 얻지만 골고다로 향하는 예수의 마지막을 보고 종적을 감춘다. 삭개오는 고향, 여리고를 떠나 이곳 석회암 계곡까지 들어와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누구도 절벽의 석회암 성분이 부패를 막아 방부제 역할을 했다고 말하진 않는다. 하긴 내게도 그런 설명이 굳이 필요하진 않았다. 때로 머리보다 가슴으로 이해할 게 있 법.                 


                                 

노트르담 성당 검은 성모상과 천장에 매달린 기적의 종
성당 곳곳에 보관된 순례자의 유물


노트르담 성당에 들어서면 '검은 성모상' (Vierge noire)과 '기적의 종'(Cloche miraculeuse)이 눈에 띈다. 어린 예수를 무릎에 앉힌 검은 성모상은 아마두르가 직접 깎았다고 전해진다. 여기 말고도 유럽의 몇몇 성당에 검은 성모상이 있다. 그런데 이것만 검은 나무로 만들었으며 나머지는 검은색을 수시로 칠한다고 눈을 끔벅이며 쉬쉬한다. 프랑스 앙주(Anjou) 지방 백작이었던 영국 왕 헨리 플랜태저넷 (Henry Plantagenet)이 검은 성모상에 기도한 후 병 고침을 받았다고 알려지면서 순례자의 발길이 더 잦아졌다. 이곳에서 기적을 체험했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1172년에 이를 모아 '노트르담의 기적' 이란 책을 발간하였다.   


기적의 종은 성당 천장 높이 매달려 있다. 이 종은 멀리 바다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저절로 울려 위험을 알려주었다. 중세 때부터 이곳을 찾아온 뱃사람은 항해와 생업의 안전을 빌며 배를 만들어 바쳤다. 성당에는 순례자가 바친 경배의 물건이 넘친다. 십자군 원정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자유의 몸이 된 죄수는 자신을 묶었던 쇠사슬을 바치기도 했다. 옆 생소베르 성당 (Basilica of St. Saveur)에도 왕, 귀족, 성직자의 순례 여행을 보여주는 그림과 비문이 즐비하다.             

                                                                                                                                                                                                                                                                                                                                                                                                                                                                        


롤랑의 칼, 듀란달


다시 한번 롤랑의 칼을 보려고 성당 밖으로 나왔다. 절벽 틈에 박혀 천 년을 견딘 듀란달. 의연했다. 계곡 바람에 제 몸을 흔들던 듀란달이 내게 묻는 듯했다. 다음 목적지 어딘지.


어디로 가느냐고. 글쎄. 나의 다음 여정은. 앵프 성. 아니면 롤랑의 뿔고을 찾할까.









posted by 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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