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다음 중 '채플'과 뜻이 같은 단어는?
(1)외투 (2)십자가 (3)목도리 (4)기도
프랑스 중서부 루아르 강변의 중세 도시, 투르(Tours). 그곳에 있는 생 마르탱 성당을 찾았다. 인기척을 내자 눈 높이 쯤에 달린 손바닥만 한 미닫이 창이 스르륵 열렸다. 바깥 동정을 확인한 늙수그레한 문지기가 불쑥 쪽지를 내민다. 누구라도 윗 질문에 답을 해야 문을 열어준다. 정답은 (1)번 외투.
무슨 얘기지? 교회나 예배당을 가리키는 단어 '채플'이 한겨울에 입는 외투와 같은 말이라니. 다들 고개를 갸우뚱한다. 글자만 보면 교회와 외투는 '버마재비와 공중제비'만큼 애먼 사이다. 전혀 관계가 없다는 뜻. 근데 같은 말이란다. 근거를 알려면 낱말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야 한다. 그러니까 채플의 할아버지는 채펠레(chapelle). 채펠레는 라틴어 카펠라(capella)에서 비롯했다. 카펠라가 바로 외투란 뜻이다. 두건이 달린 긴 외투. 어떻게 채플과 외투가 같은 말 뿌리를 가지게 됐을까. 속사정은 생 마르탱 성당의 문지기가 들려주었다.
두 단어는 투르의 3대 주교 성 마르티노(St. Martinus)로부터 비롯했다. 마르티노는 316년 헝가리 판노니아(Pannonia)지방 사바리아(Sabaria)란 곳에서 태어났다. 로마 기마부대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15살 때 파비아(Pavia)에서 군인이 됐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절 군인 마르티노는 북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에 걸친 갈리아(Gallia) 지방 아미앵(Amiens)에 주둔했다.
때는 355년, 유난히 추운 어느 겨울 밤. 군인 마르티노는 아미앵 성문 앞을 말을 타고 지나가다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구걸하는 거지를 만났다. 그가 가진 것은 입고 있던 외투와 허리에 찬 무기뿐. 마르티노는 자신이 걸친 외투를 벗어 칼로 긴 신문지 자르듯 두 동강을 낸 후 한쪽을 거지에게 건네주었다. 그날 밤 마르티노는 꿈속에서 반쪽짜리 외투를 입은 예수를 만났다. 예수는 사람들 앞에서 마르티노를 가리키며 "마르티노가 나에게 외투를 입혀 주었다." 라고 말했다.
꿈에서 깬 마르티노는 그 길로 나서 세례를 받았다. 곧 푸아티에(Poitiers)의 주교 성 힐라리우스(St. Hilarius)를 찾아가 사제가 됐다. 360년 그는 프랑스 최초 수도원, 리귀제(Liguge)를 세우고 이교도를 전도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마르티노를 주인공으로 한 수많은 기적이 이때 일어났다. 372년 마르티노는 투르의 주교가 됐다.
마르티노는 병든 사람을 보살피러 투르에 왔다가 사람들이 갑자기 주교직을 맡기려하자 손사래를 치며 헛간에 숨어버렸다. 그런데 거위가 꽥꽥 울며 사람들을 헛간으로 안내하는 바람에 발각되고 말았다. 마르티노는 마지못해 주교품을 받아들였다. 그는 주교가 되어서도 투르 근처에 마르무티에(Marmoutie) 수도원을 세우고 복음을 전했다. 병 고침과 기적이 계속됐다.
하루는 이교도가 우상으로 숭배하던 큰 나무를 베는 것을 허락하는 대신 나무 밑에 마르티노가 서 있기를 요구했다. 마르티노는 의연하게 나무가 쓰러지는 방향으로 가서 섰다. 이교도가 도끼를 내려치자 나무는 스스로 몸통을 틀어 마르티노를 피해 쓰러졌다.
그가 여든한 살에 죽자 따르던 사람들이 석관 위에 작은 예배당을 지었다. 바로 투르 한복판에 있는 생 마르탱(Basilique Saint Martin de Tours) 성당이다.
생 마르탱 성당은 이름에 basilique라는 말이 붙는다. 바실리카(Basilica)란 로마 시대 집회 공간을 가리킨다. 가톨릭에선 성인의 유해 위에 지은 성당을 이렇게 부른다. 순례자가 모여들고 자연스럽게 규모가 커진다. 주로 성인의 이름을 따서 붙인다. 바티칸에 있는 베드로 대성당 (Basilica Sancti Petri)이 그렇다.
커테드럴(Cathedral)은 주교좌성당이다. 주교가 상주하며 제단 위에 주교가 앉는 의자가 있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이 그렇다.
다음은 패리쉬(Parish). 보통 본당(本堂)이라고 부른다. 사제가 있으며 매주 미사를 여는 동네 성당을 말한다. 그리고 채플(chapel)이 있다. 우리말로는 경당(經堂). 본당으로 구분하지 않지만 기도와 미사 전례가 이루어지는 곳을 말한다.
마르티노의 외투는 마르무티에 수도원에 있는 프랑크 메로빙거 왕조 기도실에 보관됐다. 중세 때 이미 '성 마르티노가 입던 기적의 외투'(Cappa Sancti Martini)라고 널리 알려졌다. 프랑스 왕들은 전쟁에 나갈 때 꼭 마르티노의 외투를 챙겨 나갔다.
싸움을 앞둔 날엔 반드시 외투를 갖춰 입고 승리를 기원하는 예배를 드렸다. 전쟁터에서 외투를 보관하는 임시 장소를 카펠라(capella)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외투(capella)라는 말과 외투를 보관하는 장소(capella)라는 말을 구분하지 않고 썼다. 그 후 외투라는 의미는 점점 휘발되어 버리고, 지금은 예배당(chapel)이란 뜻만 남았다.
마르티노가 죽은 후 교황청은 그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프랑스는 평생을 겸손과 사랑으로 살았던 성 마르티노를 수호성인으로 삼았다.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는 '생 마르탱과 걸인'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생 마르탱 성당에도 비슷한 걸개그림이 있다. 성당 문지기의 긴 설명이 끝났다. 어스름 창밖으로 푸드덕 저녁 까마귀가 날아올랐다.
생 마르탱 성당을 나섰다. 빗장을 걸던 문지기가 등 뒤에서 툭 작별 인사를 던졌다. 죽비 같은 소리였다.
"당신의 외투는 어디 있나요?"
posted by 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