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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Jun 13. 2018

프라하, 내 오래된 역병

체코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열여섯 살 되던 해 겨울이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자리 잡은 서울의 S대학 사택, 의대를 다니던 형 책상에서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자 벌레로 변한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라고 쓴 카프카를 만났다. 세로 쓰기로 편집한 삼성출판사 문학 전집이었다.


형의 책상 서랍에서 버스표를 훔치다가 인기척에 놀라 빼든 게 하필 카프카였다. 밥버러지 같은 놈, 이란 면박과 함께 장 짜리 버스표는 도로 빼앗겼다. 민망한 나는 손에 든 카프카의 《변신》을 들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손바닥만 한 창문 밖으로 겨울 까마귀가 날아다녔다. 그때 나는 무기력했기에 주공이 벌레로 바뀌는 기이한 내용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나를 찾는 웅성거림을 못 들은 척하고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 중간중간 얼룩진 벽지와 큼큼한 곰팡냄새에 나 자신을 연민하고 사춘기를 회의했다. 벌레를 뜻하는 '웅거지퍼'(ungerziefer)단어가 그날  내 세계로 들어왔다.  



카를교에서 제일 유명한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



비행기 바퀴가 딘가에 닿는 충격에 눈을 떴다. 유럽의 조종사 왜들 이리 동체 착륙을 즐는 걸까. 프라하는 안 그래도 체코어로 '문지방'(práh)이란 뜻인데. 나는 문턱에 엉덩방아를 찧듯 프라하의 바츨라프 하벨 공항에 앉았다. 렌터카를 찾아 GPS를 찍었다. 창틈으로 오래된 도시 냄새가 꾸역꾸역 밀려 들어왔다. 프라(Prague)는 영어 스펠 때문에 꼭 전염병(plague)이 창궐한 도시 느낌을 준다. 나는 입을 가리고 괜한 재채기를 연거푸 해댔다. 그러 궁금해졌다. 여긴 카프카의 도시. 카프카가 평생 프라하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는데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이렇게 여행자들이 몰려드는데 말이다.


카프카는 1883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이즈음 프라하는 독일이 지배했다. 그는 체코 사람이지만 독일어로 말하고 글을 썼다. 핏줄은 독일인도 체코인도 아닌 유대인이었다. 이러니 그가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진 게 당연했다. 자수성가한 상인 지는 아들 카프카가 독일이 점령한 프라하의 상류층이 되길 했다. 카프카는 아버지 뜻에 따라 프라하 카를대학에서 법률을 공했다. 유약한 카프카는 아버지의 높은 기대와 프라하의 낮은 공기 사이를 유령처럼 배회하였다. 그의 페르소나는 다양해지고 자아는 분열되었다. 카프카에게 완고한 아버지와 점령 치하의 프라하는 감옥이었다.



황금소로(Golden Lane) 22번지 카프카의 집. 가장 낮은 하늘색 집이다. 연금술사들이 살던 골목이라 '황금'이란 말이 붙었다.


카프카의  훗날 베를 시절을 제외하면 평생 프라하 구시가지 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500미터를 넘지 못했다. 프카는 스스로 정한 봉쇄구역  맴돌 명처럼 글쓰기에 닿았다. 그가 쓴 모든 소설에는 카프카 자신이 등한다. 하지만 글에서조차 그는 자유롭지 못했다. 《성》과 대결하는 측량기사. 찔끔찔끔 진물을 흘리는 《변신》의 벌레가 그랬다.


비슷한 시대에 아인슈타인이 프라하에 살았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거- 현재- 미래' 라는 방향성을 가진다는 건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처럼 제자리를 돌며 쌓여간다. 대신 우리가 여러 개의 공간 사이를 떠돌아다닐 뿐"라고. 1911년 아인슈타인은 프라하 카를대학에물리학을 가르쳤다.  말이 맞다면, 나는 지금 구시청사 천문시계가 있는 공간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와서 보니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지난번 방문에도 카를교 화가는 그림을 그렸고, 악사는 노래를 불렀다. 여행자는 사진을 찍었다. 다리에 늘어선 수호성상은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황금처럼 빛나는 부분에 손을 대 보았다. 다시 오게 해 달라 소원한 적 없지만 또 이곳에 왔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시간은 멈춰 있고, 내가 이 공간으로 되돌아온 게 분명했다. 나는 궁금해졌다. 과거라는 시간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에 대한 현재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기억일 뿐인 걸까. 그렇다면 시간은 흐르는 실체적 존재일까 아니면 변화의 흔적일까. 나는 자꾸만 카프카스러워지고 있었다.  



황금소로 22번지 카프카의 집을 배경으로 섰다.



프라하에 머문 사흘. 카프카의 흔적과 자꾸 부딪치다 아버지를 떠올렸다. 서슬 퍼렇던 내 아버지는 늙고 기력을 잃었다. 나는 마주하기를 꺼렸던 그때 아버지 나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잠자는 아들의 침대 옆에서 열여섯 시절의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들은 당시 나만큼 자랐다. 아들이 커서 내 구두를 신고 내 옷을 걸치고 외출하고 나면 나는 아들의 베개를 베고 한숨 푹 자고 싶었다. 아들은 이제 한 걸음씩 멀어질 게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멀어지는 모든 것은 다 가까웠던 것이다. 나는 안다. 가장 가까웠던 것이 가장 멀리 떠나가기 마련임을. 아들 방 책꽂이에서 발견한 카프카. 녀석도 카프카를 읽었을까. 아들에게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묻고 또 되물었다.


돌아오는 길. 황금소로 22번지 카프카의 집 가게에서 《아버지에게 부치는 편지》를 집었다. 카프카가 스로를 '웅거지퍼'라 부르평생 아버지에게 쓴 글. 그러나 결코 부치지 못한 원고를 모은 이다. 아침이면 부끄러워졌을 수많은 철자들. 세상의 모든 아들은 결코 띄우지 않을 편지를 쓰나 보다. 카프카는 원고더미를 모두 태워달라는 유언과 함께 "나의 글은 단지 쓰기 위해 존재할 뿐 절대 읽히려고 쓰지 않는다."고 까지 말했다. 책의 겉표지를 쓰다듬다가 그의 말이 떠올라 읽지 않기로 마음먹고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내 쓸쓸해졌다. 아내에게 속내를 들까 봐 고개를 돌렸다. 골목에서 누런 벽지냄새가 났다. 그건 다락방 냄새와 흡사했다. 그때 은 지붕 아래로 난데없이 까마귀가 날아들었다. 프카의 변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공교롭게도 카프카는 체코어로 '까마귀'란 뜻이다. 무서워하는 아내가 뒷걸음질 쳤다. 나는 프라하도, 열여섯 살 기억에서도 그만 떠나고 싶어졌다. 












posted by 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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