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에미레이트 항공을 탔다. 새벽 네 시 두바이도착. 밤하늘을 헤집고 내린비행기는 깜깜한 활주로 끝, 빈유도로에멈췄다. 문을 나서자 뜨거운 공기가 후끈 달려들었다.아래는 두 칸짜리 램프버스가 세로로 된 접이문을 열고 기다렸다. 새벽인데다 목적지가 다른 환승객들은 함부러말을 섞지 않았다. 다들 희붐한 창밖만 바라보았다. 버스는앞바퀴에 턱을 괴고 잠자는다른 비행기의 가랑이 사이로 움직였다.자벌레처럼 몸을 구부렸다 폈다하며 비행장을 반 바퀴 돌아 형광등이 켜진 터미널에 도착했다. 네 시간 후 다음 비행기로 갈아타는 일정이었다. 그때까지 기다리려면 쉴 만한 자리를 찾아야 했다. 공항 구내를 걸었다. 두바이에 왔던 게언제였더라. 까마득했다. 불현듯 베두인 마을의 낙타가 생각났다.
두바이는아랍어로 '메뚜기'란 뜻이다. 메뚜기떼가 휩쓸고 간 것처럼 황량했기 때문이었다. 마르코 폴로는 두바이를 가리켜 진주조개잡이와 대추야자뿐인 어촌이라고 썼다. 모래바람만 날리던 두바이가 19세기 후반 들어 휘황해지기 시작했다. 높이 828m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 돛단배를 닮은 7성 호텔 부르주 알 아랍, 연간 9천만 명이찾는 두바이 공항, 1주일에 80만 명이 드나드는 두바이 몰. 끝도 없다. 하지만 나는 크기나 높이엔 관심이 없었다. '고도(altitude)보다 태도(attitude)'라는 말을 마음에 두면서부터였다. 내게 두바이는 지나치는 도시에 불과했다.적어도 낙타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중동계 항공사는 UAE의 에미레이트항공, 에띠하드항공과 Qatar의 카타르항공이 있다. 유럽행은 늦은 밤 인천 출발이라 각각 에미레이트, 아부다비, 도하에서 환승해야 한다.
낙타를 가까이서 본 건 베두인 마을이 처음이었다. 낙타는 울타리 밖 어둠 속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크고 그윽한 낙타의 눈. 모래 폭풍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낙타는 깊은 쌍꺼풀과 긴 속눈썹을 가졌다.한참 동안 그 눈을 들여다보자 내 마음은 차분해졌다. 출장길런던 일정이 걱정된 나는 몰이꾼이 연주하는 류트(lute) 선율을 뒤에 두고 혼자 천막을 나온 참이었다. 낙타가 어둠 속에서 푸르르 울었다. 건초씹는 소리와 모닥불이 탁탁 튀는 소리가 뒤따랐다.사막을 건너는 이동수단 중 낙타만 한 게 있을까.낙타가 아니면 과연 실크로드가 생겼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중국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 고원과 중동 사막을 건너 유럽까지 수천 킬로를 걸을 수 있는 동물은 낙타가 유일했다. 그것도 등짐까지 지고서.
낙타는 짐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무겁다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누가 눈여겨 봐주지 않아도 말없이 행렬을 따라 걷는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의 말을 빌어 '낙타가 아닌 사자가 돼라'고 했다. 사자가 짐을 지고 달린다면 낙타보다 빨리 갈지 모른다. 하지만 사자는 짐을 나르지 않는다. 짐을 싣고 먼 길을 가는 건 낙타가 하는 일이다. 역사는 사자가 아니라 낙타에 의해 쓰인 것이다. 모래바람 부는 뜨거운 사막을 줄지어 걷는 낙타는 숭고하기까지 하다. 구도의 여정처럼.
호주 아웃백에서 만나는 낙타와 캥거루를 조심하라는 도로 표지판
다시 낙타를 만난 건호주의 건조한 내륙지방,아웃백에서였다. 데이트립에서 돌아오다 마을 근처에서낙타 무리와 마주쳤다. 이들은 두바이 낙타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형편없이 작고 빈약했다. 1840년 호주 정부는 인도에서 처음 낙타를 들여왔다. 개척 도시 앨리스 스프링스(Alice Springs)와 7백킬로 떨어진 애보리진부락,우드나다타(Oodnadatta)를 잇는 짐꾼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원주민 마을과 도시를 연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낙타였다. 한동안 낙타는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얼마안가 정부는 두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했다. 그러자 낙타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는 낙타를 예전처럼 돌보지 않았다. 버림받고 배고픈 낙타는 관리가 소흘해진 틈을 타 뿔뿔이 도망쳤다. 먹을 것 없는 척박한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니 덩치가 작아졌다.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숲을 짓밟거나 호수를 오염시켰다. 물이 부족한 건기에는 마을로 내려와 급수 파이프와 건물 외벽의에어컨 냉각기를 뜯어먹었다. 급기야 호주 정부는 이들을 포획하기로 했다. 나중에는 보는 대로 사살했다. 이들은 안데스의 알파카나 라마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야생 낙타는 자유를 가졌지만 노동이 주는 꿀맛 같은 휴식이나 안정적인 삶은잃어버렸다. 마치 IMF위기로 회사를 떠난 동료를 보는 듯했다. 살 길을 찾아 뛰쳐나갔지만 결국 치킨집이나 피씨방을 닫고 말았다는.
사자가 되고 싶었던 나는 돌이켜 보니 낙타였다. 늘 흠칫거리며 어수룩한 행색이었다. 하지만 낙타였던 게억울하진않았다.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인생을 가볍게 여겼을지 모른다. 등짐이 곧 내 삶의 무게가 되어 운명을 감당하게 했다. 누가 "어떤 삶이었느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사자는커녕 짐꾼 낙타였다"고. "무리 속에서 질서를 따랐고 등짐을 거부하지 않았다"고. 또 "뛸 줄 알지만 함부로 내달리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나는 이정표 없는 길에서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의지해서 사막을 건너야 할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알라 후 아크바르(Aallāhu Akbar)"
갑자기 공항이 시끄러워졌다.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쿰쿰" 대며 벽을 쳤다. 안내 방송조차 하지 않아 '정숙 공항'으로 이름난 이곳도 예외가 있다. 하루 다섯 번 알라신에게 기도를 바칠 때이다. 기도는 '신은 위대하다'(Allāhu Akbar) 라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면세점에 갔던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돌아왔다. 의자에 파묻힌 채외투를 덮어쓰고 잠들었던 사람들이 깨어났다. 탑승 게이트가 열렸다. 나는 주섬주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두바이와 세상의 모든 낙타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