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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Jun 13. 2018

부다페스트가 부르는 노래

헝가리




헝가리는 '훈가리아'란 말에서 왔다. 이는 '훈의 땅'이란 뜻이다. 알파벳 a로 끝나는 나라 이름이 많은 데, 라틴어 a가 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훈이란 흉노다. 한나라 무제에 쫓긴 흉노는 으로 옮겨  게르만족을 밀어냈다. 동쪽으로 온 일부 신라 지배층이 되었다. 헤로도토스의 <Histories>, 사마천 <사기>, 문무대왕릉비에 새긴 '김일제'에  관한 해석이다. 이런 얘기를 귀담아 두었기에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이 늘 흥미로웠다. 나는 경주가 고향이고, 신라의 후손이니 관심은 당연했다.


다뉴브 강이 부다와 페스트를 나눈다


잔인한 훈족의 왕 아틸라는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치게 했다. 후손인 마자르족이 896년 판노니아 분지를 차지하고 헝가리를 세웠다. 헝가리는 검은 머리, 납작한 코에 유럽 말을 쓰지 않아 '인종의 섬' '언어의 섬'으로 불렸다. 인문지리 시간에 헝가리어는 핀란드어, 한국어와 함께 우알타어로 분류된다고 배웠다.


국어 시간엔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 겨울'로 시작하는 <부다페스트의 소녀>를 읽었다. 학교 뒤뜰에서 친구들과 다투어 시를 외웠다. '쏘련군 탄환' '포도' '다뉴브강'이란 낱말이 낙엽처럼 나뒹었다. 늦가을 짧은 해가 아쉬웠고, 그만큼 호심은 더 커졌다.


2006년 10월. 비인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버스에서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처음 보았다. 직장에서 GM으로 승진하면 'Pre CEO연수' 라 해서 6개월 동안 금융연수원과 KDI에서 공부를 시켰다. 떡하니 보름간 해외여행도 보내줬다. 우리는 '옳타구나'하고 터키,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를 돌았다. 저녁마다 술자리가 벌어져 낮시간 버스에서는 대부분 잠에 곯아떨어는데, 누군가 비디오 테이프를 챙겨 왔다. 부다페스트까지 가는 동안 혼자 깨어 이 영화를 보았다.


뉴욕카페. 젊은 피아니스트는 아내의 요청을 듣고 '글루미 선데이'를 연달아 몇 번씩이나 연주해 주었다


영화에선 자보 레스토랑의 악사 '안드라스'가 글루미 선이를 연주하였다. 띵거리는 희한한 피아노 선율은 어찌나 애잔하든지 내 온몸의 솜털을 일으켜 세웠다. 마치 맨 팔뚝 위를 사마귀가 걸어 가는 듯했다. 잘못 건드려 사마귀가 오줌을 싸 얼굴에 튀면 눈이 먼다고 했다. 겁에 질린 어렸을 때 나는 어찌할 줄 몰랐다. 꼭 그 느낌이었다. 나중에 세체니 다리를 건너다 강물에 반짝이는 윤슬을 보았을 때도 퍼뜩 그 전율이 일어 소스라치곤 했다.  


북방 기마민족인 흉노는 스키타이 문화를 신라에 전했다. 황금을 숭배했고, 솥단지를 애지중지 아꼈으며, 동물장식을 즐겼다. 한 솥밥을 먹는 '식구'란 말이 운명공동체를 뜻하는 게 여기서 시작했다. 경주 황남총에서 나온 금관과 반구대 암각화, 김해 대성고분이 스키타이-흉노-신라로 이어지는 흔적이다.


기마인물형 토기의 말 잔등에 실은 솥단지. 중국 솥과 달리 다리가 없어 말에 실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내가 눈여겨 본건 이들이 철기문화를 열었다는 사실이다. 화살촉, 마구, 솥단지가 수두룩했다. 경주의 옛 이름은 금성, 우말로는 서라벌이다. '쇠를 다루는 마을'이란 뜻이다. 삼국유사에 '연오랑과 세오녀' 얘기가 나온다. 까마귀 '오'는 검을 '오'로도 읽는다. 이게 쇠를 가리킨다. 즉 '쇠의 모양을 만들고'(연오), '쇠를 길게 뽑는'(세오) 사람들 얘기다. 포항제철이 왜 포항에 들어섰는지 저절로 설명된다.


아버지의 어렸을 적 이름은 '쇠'였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우리 앞에서도 아버지를 '쇠야' 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쇠(금=돈)를 다룬다. 동생은 로템에서 기차를 만든다. 삼촌은 포항제철에 다녔고, 사촌은 거제도 조선소에서 일한다. 은행원이 되고, 기차를 만들고, 배를 세우는 게 다 운명인가 보다.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세체니 다리

  

야경을 보러 어부의 요새에 올랐다. 늙은 집시가 <다뉴브강의 잔물결>을 연주하였다. 이것은 루마니아의 요시프 이바노비치가 작곡했다. 개화기 우리나라 소프라노 윤심덕이 가사를 붙여 '사의 찬미'라고 노래했다. 80년대 초반, 휴교령이 내린 대학가에서 너도나도 이 노래를 불렀다.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부다페스트에서 그 노래를 듣는다. 몇 세기 전 한반도로 들어 온 흉노의 후손에게 서쪽 헝가리로 달려 간 흉노의 후손이 불러주는 노래였다. 팔뚝의 솜털이 오소소 일어섰다. 오랫만에 나타난 사마귀가 물컹거리는 배를 끌며 내 의식의 팔뚝 위를 천천히 지나갔다. 내가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사이 '훈의 땅'엔 어둠이 내렸다. 짧은 후렴이 나를 점령하였다.


'....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posted by chi





‘훈’족은 스스로를 ‘훈’(Hun)이라고 불렀다. ‘사람’‘따뜻한 사람’의 뜻이라 한다. 몽골어에 흔적이 남아 있다. 고중국에서 다른 민족에게 나쁜 뜻 한자를 붙여 작명하는 악습으로 ‘훈’을 비하하여 ‘흉노’(匈奴)라고 칭했는데, ‘흉측한 노예’라는 뜻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뒤에 ‘흉노’(匈奴)라는 호칭을 썼지만 훈육(葷粥)과 훈육(薰育)으로도 나온다. 『맹자』에는 훈죽(獯鬻)으로 나온다. 여기서 훈(Hun)을 葷, 薰, 獯 등 여러 글자로 표기한 것은 흉노족이 자기를 훈(Hun)으로 호칭한 것을 동일 음차(音借) 표기한 것이고, 粥, 育, 鬻 등은 비하하는 의미를 붙인 꼬리표기이다. 비칭 꼬리표기를 떼어버리면 흉노족이 곧 훈(Hun)족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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