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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발견한 나의 내면 아이

문화로 나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 4

by 장효진

생각이나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글로 쓰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이나 그림처럼 다양한 형태로 그 시점의 영감을 표현해볼 수 있다. 도구의 숙련도가 높거나 자기만의 기법을 찾아 독특하게 표현해내는 프로들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마음 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직접 표현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나 삶의 가치는 꼭 바로 생산적이어야 하는 행동만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일터에 나가서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통해 삶에 필요한 다양한 재화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외에도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행복감을 찾는 그 외의 활동 역시 중요하다. 일과 여가의 균형에서 사람은 한쪽에서 다른 한쪽을 지탱해줄 수 있는 평온함을 찾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가끔은 내가 가진 생각이나 느낌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전혀 새로운 곳을 찾아 정처없이 걸어보기도 하고 뉴스에서 본 어떤 감동적인 사연에 살을 붙여서 이야기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수업시간 교과서 귀퉁이에 로켓을 그리고 그 로켓이 우주로 향하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허무맹랑한, 금세 잊혀지는 어떤 감각적 잔상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글과 그림 혹은 생각의 덩어리를 만들어내고 나면 내 일상에서 중요한 재료를 하나 생산해 낸 뿌듯함 같은 것이 있다. 그 중에 그림도 하나이다.


좋은 기회로 알게 된 지인들 중에는 서양화, 일러스트, 미학을 전공한 작가님들이 있다. 서예가이면서 시인인 선생님이나 국문학을 전공한 캘리그래피 작가님도 있다. 이들이 자기 생각을 글과 더불어서 이미지로 표현해내는 작업들을 지켜보면 가끔씩은 그들의 상상력과 기발함에 머리가 띵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이와 성별을 뛰어 넘어, 그들의 친구와 연인과 아이를 위한 글과 그림 혹은 무언가 필요를 위해 만들어낸 다양한 작업물을 보면서 흥미롭게 시작한 다양한 활동들이 얽혀가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목격한 것이다.



내가 경험한 그림그리기에는 '드로잉 레시피'라는 워크숍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드로잉 레시피는 연기자로 연극과 영화 곳곳에 인상적인 연기로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는 지성은 작가와 함께 신촌에서 열었던 드로잉 워크숍이었다.


다양한 그림도구를 준비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재료, 방법과 순서를 제시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그 형식 속에서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이었다. 이런 제한적인 도구와 순서를 작성한 구조화 된 형식이 오히려 부담없이 도화지에 선을 그리고 채색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자유로움, 거침없음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실 김치찌개 끓이는 레시피는 단순하다. 그렇지만 각 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김치의 상태와 주방장의 취향에 따라 김치찌개의 맛은 전혀 다른 것들이 되곤 한다.


내가 그리는 행복의 모습과 내가 생각하는 열정과 사랑 그리고 우정이나 평화 혹은 불안과 짜증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 속에서 지금 당장의 나의 모습을 투영시켜 나를 바로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쩌다가 가끔은 아이와 함께 무작정 그림을 그릴 때가 있다. 아이는 자기가 고안한 귀엽고 유치한 캐릭터를 곧잘 그리고 색칠도 하고 그 캐릭터에 맞는 옷과 악세서리를 덧붙여 그리는데 주저함이 없다. 나도 그 옆에 그 것들을 조금은 더 반듯하고 세련된 선으로 어디서 본듯한 것들을 빠르게 그린다. 아이는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면서 자기 그림의 비툴비툴한 선들을 아쉬워하지만 나는 내 아이의 쉴새없이 만들어지는 수많은 선 들 속에서 자유와 기쁨을 느낀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의 모습을 찾고 그것에 집중하고 그 방식을 좀 더 궁리해보다보면 다른 사람들까지도 공감할 수 있는 어떤 형태가 나오는 것이다.


가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를 알지 못하겠다면 언어로 표현하기보다는 그저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같은 자연으로부터 내 주변의 어떤 대상이나 색깔과 선으로 표현해보는 방식으로 되돌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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