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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아주냐고? 바로 내가 아니까

완벽함을 향한 태도에 대하여

by 장효진

페이디아스는 고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을 담당한 조각가였다. 어느 날, 그의 작업을 본 아테네의 재무관은 조각상 뒷면까지 정성껏 조각하는 그를 향해 물었다.
“그 누가 이 뒷면을 본단 말이오?”
이에 페이디아스는 대답했다.
“신이 보지 않겠습니까.”

이 일화는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완벽함을 향한 노력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보는 삶의 기준을 지키기 위한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수천 년이 흐르고 우리는 또 한 명의 장인을 만난다. 대한민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 김대건 신부의 조각상을 만든 조각가 한진섭이 페이디아스와 닮았다. 그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이라는 역사적 장소에 동양인을 처음 조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일반 관람객은 결코 볼 수 없는 조각상의 뒷면까지 정교하게 깎고 또 다듬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보지 못하겠지만, 나는 본다.”
그의 손끝에서 완성된 김대건 신부상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도였고 다짐이었다.


이 두 장인의 일화는 우리에게 한 가지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누가 보지 않아도 정성을 다하고 있는가?”

일과 가정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워킹맘의 삶은 때때로 쉴 틈도 없다. 회사에서는 성과를 내야 하고, 집에서는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딸이 되어야 한다. 하루의 끝에는 온몸이 무겁고, 마음은 조금씩 지쳐간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이 정도면 됐어.’
‘어차피 누가 알아주지도 않잖아.’
‘나는 그냥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아.’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비로소 행복지도에서 말하는 “완벽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포인트일지 모른다.

완벽은 결과가 아니라 자세다.

누군가가 보지 않더라도, 나만은 알고 있는 그 한 걸음. 그 한 걸음을 내딛는 우리가 바로 완벽을 향해 가는 사람이다. 매일은 아니라도 어떤 날 하루정도는 자신이 한 일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삶.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고, 기꺼이 정성과 열정을 들일 줄 아는 태도. 그런 태도가 쌓여,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자유로워지고, 더 행복해진다.


워킹맘의 삶은 불확실한 조건 속에서 어떻게든 피어나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위대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우리의 시간은 세 개로 나뉘어져 있고 그 시간을 매일매일 조율해 나가며 버티기도 하고 누리기도 하면서 열심히 살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완벽함을 향해 나아가려는 태도’는 우리의 삶을 더 단단하게, 더 빛나게 만들어준다.

오늘도 바쁜 하루를 살아낸 당신에게 묻고 싶다.
“누가 그 노력을 보느냐고요?”
당신 자신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건 충분하다.

비로소, 당신의 행복지도 위에 오늘도 조용히, 정성스럽게 새겨지는 한 줄기 선. 그 선은 언젠가 당신을, 스스로도 놀랄 만큼 아름답고 단단한 삶의 중심으로 이끌 것이다.


나도 내가 무언가를 한 다음에는 가끔 운이 좋아서 나의 대충 때운 것들이 티가 나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내가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겠다. 또 가끔은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대해 쓸데없이 디테일을 더하여 무언가 극적인 결과물을 만들고 스스로 감탄하고도 싶어진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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