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나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 5
누가 이런 말을 했다. '게으른 J보다 부지런한 P가 낫다.' 나는 J성향이면서 J답지 못한 날이 그런 날보다 많다. 무기력이나 번아웃같은 변명거리가 있겠으나 일단 나는 게으른 성향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나 스스로에 대한 것이나 주변을 가꾸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떤 마지노선이라는 것은 있어서 그 선을 넘을 것 같으면 조금이라도 되돌려 놓는 습성이 있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다가 어느날 기운이 좀 차오르면 힘껏 되돌려 놓는 것이다.
이 기준선 자체가 사람들 사이는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도덕적 기준이나 외형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이 높은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수준이 비교적 낮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충돌하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이런 경우에, 어른들이나 사회적으로 더 명망 높은 사람들 그리고 다수의 의견을 따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느낄 때에는 무척이나 자괴감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의 성향은 서로 다르고 그것을 서로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서로의 기준을 무작정 따르라고 하는 것은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수준이라는 것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수준 이상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하기야 그 상식의 수준이 또 다르기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란이 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적어도 내 기준 자체가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주팔자, 명리학, MBTI, 오늘의 운세같은 것들에게서 이런 유연함을 읽을 때가 있다. 왜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게 받아들일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데 먼저 내가 주눅이 들었을까. 저 사람은 어떤 이유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일까 하는 식의 생각에서 이런 사람들의 성향과 기질같은 것들로 분류해둔 것들이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기 좋아하는 성향, 계획적이고 판단을 근거로 무언가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직업이 맞고 시기적으로 옮겨다니는 것이 좋은 사람 등등 신기하게도 사람의 인생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늘어 놓는다.
이런 것이 편하고 그것에 기대어 나의 미래를 따라가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왜 그런 고민과 불안을 가졌는가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찾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나라는 사람을 바로보고 내가 볼 때 나의 멋진 부분과 그렇지 못하다고 여기는 부분을 바로 볼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나의 멋진부분을 키워볼수 있고 어떤 사람은 무난하게 단점이라 여기는 부분을 수정하는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삶이 만들어질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관계는 서로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밖에 없으며 누구에게나 맞고 좋은 것들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그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나에 집중할 수 있는 냉정함을 깨닫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어떤 성향으로 어떤 생각으로 어떤 행동을 가지는 지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따라붙게 된다. 나의 하루를 돌이킬 때 어떤 생각과 판단과 감정으로 하루를 보냈는가를 보면, 나를 바로 마주하게 된다. 그것들이 쌓이면 나 스스로 마치 내 속의 엄마가 나를 타이르거나 칭찬하듯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게 된다.
감정일기라는 것은 꼭 특별한 노트를 준비하고 매일 그것을 일정 분량을 채워야 하는 숙제가 아닌 것이다. 나의 감정과 그것을 통해 연결되는 생각과 행동들을 내 안의 엄마의 다정한 눈으로 보듬을 수 있는 시간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일기는 그저 내 마음 속에 있어서 잠깐의 명상으로도 써내릴 수도 있겠다.
나는 가끔씩 그날의 나의 생각과 감정이 맞닿는 것들이 있으면 그것을 블로그에 기록하기도 한다. 오늘 본 드라마의 한 장면, 최근에 다시 보았던 영화의 주인공이 했던 말, 어제 잠들 기 전 읽었던 책의 어떤 구절을 그대로 따옴표 안에 묶어 나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또 오늘을 어떻게 보냈는가를 채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인 바로 내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마음이 우울하고 내가 너무 게으르고 계획도 대책도 없다고 여긴다면 그 와중에도 마음 두고 시선 가던 무언가를 떠올려 보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열심히 살았던 어떤 시점의 내가 지금의 나를 지탱하면서 하지도 않은 예쁜 행동이 하나는 별견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조금이라도 기운이 나고 시간이 있다면, 미래의 내가 받아 쓸 수 있느 기특한 습관과 일을 해보면 좋겠다.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고 여행을 가고 집안을 가꾸고 가족들에게 다정한 눈빛을 보내는 식의 사소한 것들이다.
나에게 보내는 감정일기는 다만 어둡고 숨겨야 하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에 대한 존재를 확인하는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이다.
자주 내 얼굴 사진을 찍고 또 자주 내 생각의 한 문장을 적어보고, 또 자주 내가 보고 읽는 것들의 인상적인 문구를 기억해내고 그러면서 나의 감정은 스스로를 키워내고 있고 또 위로하고 있는 내 안의 엄마로 나를 키워나가고 있을 것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