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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Nov 18. 2019

홍시를 기다리며

설렘과 조바심

시댁에 다녀왔다. 참기름, 김치, 쌀을 챙겨주셨고 감이 유명한 지역답게 홍시해먹으라며 알굵은 녀석으로 땡감을 여나무개나 넣어주셨다.

홍시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집에 나뿐이라서 이 단단한 녀석들이 부드러운 푸딩처럼 야들야들해질때까지 책임은 온전히 내게있다.

 예전에 이웃집에서 받아온 녀석들을 매일 매일 들여다보다가 이쯤이면 되었겠다 싶어서 깎아먹고 떫어 뱉어낸 게 서너개여서 결국 제대로 익기 전에 모두 아작이 난 걸 기억한다. 이번에는 기어코 손톱에 들여도 예쁘고 입술에 올려도 예쁜 고운 주홍색으로 완성된 홍시를 만들고 마리라.


집에 와서 짐을 부리자마자 신랑 주먹만한 감들을 마른 수건으로 대충 닦았다. 빈 김치통에 하나하나 열맞춰 넣어두고 뚜껑은 닫지 않고 베란다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신경을 끄자고.


바쁜 일상이 늘 그렇듯 지나고 설거지를 하다가 세탁기가 자기 일을 끝냈다고 소리를 냈다. 기계적으로 세탁기에 섬유유연제를 넣고 나오던 찰나, 감이 떠올랐다. 녀석들 잘 있었냐. 감들은 옹기종기 예쁘게 앉아있었다. 다만 딱딱하고 반지르르하던 모습이 어째 톡하고 손대면 터질것만 같은, 껍질이 간신히 안쪽 젤리들이 일렁일렁 가두고 있는 그 영롱한 자태로 변신해서 나를 반기고 있었다. 손으로 살짝 만지니 폭신폭신 우리딸 엉덩이같다.


두손으로 하나를 눈높이까지 들어올려 쳐다보았다. 검은 점들이 콕콕콕 찍혀서 매력점이나 되는양 의기양양하게 나를 내려보는 것 같았다. 내가 너를 먹을거야. 고맙다.


물에 먼지를 흘려보내고 밥그릇에 담아서 신랑 보라는듯 소파앞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았다. 껍질을 조심스럽게 벋기고 숟가락으로 야무지게 한입 떴다. 쫄깃한 식감이 부드럽고 달콤하고 향긋했다. 이맛을 왜 모르나 몰라. 신랑은 시큰둥하고 아직 어린 딸은 아는 과일이 포도사과딸기바나나가 전부다.


옆집에서 주었던 그 감에 비해 이 감은 애정도 관심도 사랑도 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멀쩡히 제 몫의 행복을 내게 주고 있었다. 과연 내가 주는 사랑과 관심의 빈도와 시간이 상대방에게 그만큼 크게 전달될까. 꼭 비례해서 사랑과 관심이 작용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러한대로 그대로 둔다면 알아서 여물고 알아서 제값을 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을. 그것을 내 조바심이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 홍시를 먹으며 생각했다.


이 홍시하나로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그 설렘을 담아둘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조금 뿌듯한 밤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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