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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Mar 11. 2020

원조김밥은 과식을 부르지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

'간단하게 김밥이나 말아먹지'


라는 말은 주먹을 부른다.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수 없다. 그렇다해도 간혹 김밥을 만들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기본 재료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핵심 재료가 없다면 (김과 쌀, 내 경우는 달걀) 어쩔수 없이 가서 사와야 하며 대체 가능할  같은 재료의 냉장고 토굴 미션도 따른다. 한두줄 먹을거라면 김밥재료 사러가는것 보다 김밥 한줄 사오는게 훨씬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김밥천국 보편화된 그 시점부터 공인된 사실이다.


게다가 삼십분여 노동 집약으로 완성한 김밥은 어째 들인 공에 비해 너무 단촐하다. 공력대비 그럴싸하기로 따지자면 배추 깻잎 몇 장에 저민 소고기와 겹쳐 꽂꽃이하듯 돌려 넣고 육수 부어 돌돌돌 끓인 밀푀유나베상극인 음식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오늘 아침 신랑은 떳떳하게도 그놈의 '간단하게'를 붙여서 김밥을 주문했다. 그제 마트에서 김밥재료 세트를 사둔걸 안다는 였다.  재료도 있겠다. 바쁜 평일 제대로 챙겨먹이지 못한 터에, 얄미운 신랑도 신랑이지만 우리 딸래미 동그리 김밥 오물오물 먹일 생각에 까짓것 손 걷어부치고 보니 가슴이 다 설레었다.


일단 고슬밥을 지어 소금 참기름 비비고, 계란 지단도 두툼넙적 부쳐서 두줄씩 넣고 반토막 남은 당근을 채썰어 볶았다가 아껴서 넣고 마트표 김밥 패키지(단무지 우엉 햄 맛살)를 챙겨넣고는 신나게 둘둘 말았다. 오랜만인데 김말이를 쓰지 않아도 김이 터지지 않을만큼의 적당한 악력조절로 재료들을 정중앙에 배치하면서 말아내는 능력은 좀 뽐낼만 하다고생각했다. 시금치가 없어서 부추를 한줄씩 소심하게 넣고 보니 아쉬운대로 적녹황흑백 조합이 내가 아는 그 김밥이 완성되었다.


3센티 지름에 얄팍하게 썰어 배식된 김밥이 눈깜짝할 사이에 부녀에 의해 4줄 반이나 사라졌다. 문득 어릴때 재료 준비하는 엄마 옆에서 햄이며 지단을 주워먹다가 김밥이 말리면 썰리기도 전에 손에 쥐고 앉은자리에서 몇 줄이고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김밥 한 줄에 거진 밥한공기가 들어가는데, 김밥 만큼은 한 두 줄로는 성에 안차는건 다 똑같은가 보다. 각기 두고 보면 반찬으로도 많은 양인데도 그렇게 한데 똘똘 뭉쳐있으니 정말 만만해 보여 그런가.


참치, 소고기, 진미채, 새우튀김 등 정말 다양한 속재료들이 김밥에 들어가는데 이런 것들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한줄먹고는 그만이다. 대신 메인 메뉴없이 슴슴한채로 비슷한 애들끼리 뭉쳐있는 원조김밥은 가끔 냉장고 사정에 따라 오뎅이 추가되었다가 무쳐둔 시금치 나물이 되었다가 선수 교체는 있을지언정 한줄로는 왠지 아쉬워서 계속해서 먹게된다.


패키지에 들어있던 김 10장 중 3장만 남겨두었으니 총 7개의 김밥을 말았고, 나는 꼬다리만 먹었을 뿐이지만 배가 불렀다. 예쁜 동전모양 김밥은 우리 딸이랑 신랑이 야무지게 먹었으니 평일의 부채는 조금 변제되었고... 괜히 왠지 일요일 낮 2시가 더 나른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렇게 만만하고 몇줄이고 더 먹게 되는 김밥만큼이나 무난하지만 성능좋은 사람이면 좋겠다. 라면같이 다른 것에 곁들여도 좋고, 어디든 가지고 나가기도 편하고 영양소 골고루 들어있어서 건강 걱정도 덜어주는 김밥같은 사람말이다.


프랑스 여행중 벼룩시장에서 김밥팔던 한국교민이 한글로 한국사람은 20프로 할인해준다는 팻말 글귀에서 김밥맛도 보기전에 감격하고 말았던, 젊은시절 아르바이트에서 사장이 매일매일 알루미늄 호일로 둘둘말린 간식으로 챙겨주던, 그보다 앞서서 매해 뽐내기 각축전이 되버리는 초등시절 소풍 점심시간의 기억 속에 수십줄의 김밥이 남아있다.


나도 누군가의 머릿속에 김밥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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