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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Mar 15. 2020

39800원짜리 캐릭터 장난감

가심비를 만드는 디테일의 힘

금요일부터 칩거하다 일요일 오후, 어쩔 수 없이 바깥 나들이를 갔다. 아이는 마스크를 써도 바깥바람이 마냥 좋은지 이거하자 저거하자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아이는 요즘들어 뽀로로, 콩순이는 조금 시큰둥해하고 심해를 배경으로 문어닮은 잠수함을 타고 다니는 요원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자주 본다. 늘 보는 듯한 귀엽게 생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다른 애니메이션과 달리 대장은 성인 남자 목소리의 진지한 캐릭터이고 다른 캐릭터들도 각자 제법 전문성을 갖춘 요원들로 일사분란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여전히 그렇지만 아이는 자동차류의 탈것에 심취해있어서 경찰차, 소방차, 앰뷸런스 뿐만 아니라 헬기, 경비행기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난감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초)록이, (빨)간이, (노)란이와 파란 버스들과 차고지를 패키지로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 어린이이기도 하다. 땅과 하늘로 모자라 이제는 바다로 눈을 돌리더니 바닷속 잠수함에 정신을 집중하고 만것이다.


시간이나 보내자고 들렀던 마트 2층 어린이 완구류 코너에서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던게 화근이었다. 하필 최애캐릭터 대장과 작은 잠수함이 패키지로 묶인 장난감을 마주한 것은 아이에게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마트입구에서 아이를 카트에 앉혀놓았기 망정이지 손잡고 입장했다면 더 큰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터에 아이는 그 장난감을 집으로 꼭 데려가겠다는 의지로 목청놓아 울어재꼈다.


사실 4만원 돈의 장난감을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도 아닌 날에 턱턱 사주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다. 과연 그 장난감을 몇번이나 얼마나 가지고 놀 것인가를 따져보기도 하고 로열티를 감안하더라도 들어간 재료비와 구성에 비해 가격이 좀 센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등등의 합리적 소비자의 선택의 기로에서 뜸을 좀 들이다가 바톤을 신랑에게 넘기기로 했다. 아이는 울면서도 내 눈치를 보고 장난감을 살피고 있었다. 우는 아이 BGM 전화에서 다행히 신랑은 YES라는 대답을 주었고, 뭐 이거 산다고 죽는것도 아니라는 마음의 소리로 대충 결론을 내고 아이에게 '옛다'를 선사했다.


집에 와서 장난감을 뜯는데 워낙 꼼꼼하고 튼튼하게 포장이 되어있어서 쉽게 장난감을 꺼낼 수 없었다. '이거 원가에 포장비도 만만치 않겠는데' 뜯다보니 슬슬 성질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장난감 틈새로 케이블 타이를 넣어 포장박스에 안전하게 고정하는 작업을 무려 다섯번이나 해놓았다. 물론 이뿐아니라 전시용에 맞게 투명 플라스틱 앞판그외 주변을 감싸는 종이 박스를 단단히 조립하고 테입으로 마무리까지 해야 비로소 하나의 장난감이 상품으로 완성ㄷ것이었다.


아이는 온통 장난감에만 눈을 들이고 먹이 앞 맹수마냥 이 해체작업이 마무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이 포장재가 마치 하나의 구성품인냥 아까워 버리지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도 장난감에 꼭 맞게 설계되고 나름의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하나의 부품인데 마지막 주인을 만나고나면 이렇게 안쪽 알맹이는 아이에게, 바깥 쭉정이가 되어 버려지는. 운명이 갈리고 마는구나싶었다. 참 동심없는 발상이기는 하지만서도.


가성비를 염려했던 몇시간 전이 무색하게 아이는 온갖 장난감을 가지고 나와 인사를 시켜주듯 섞어놓고 놀고 있다. 급기야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대로 잠수함을 들고 화장실로 가더니 물속에 첨벙하고 집어넣었다. 자세히 보니 물속에서 장난감은 둥둥 움직이고 있었다. '아 물속에서 프로펠러를 돌리며 움직이는 기능이 있었어' 비싼 이유가 또 있었다 싶었다.


보물이나 되는양 짜증나기 직전으로 포장을 해놓더니 그래도 이런 숨은 기능이 있었고 장난감 디테일도 썩 나쁘지 않았으며 나중에 다른 요원들이 함께 탈만한 공간을 남겨두는 이 무시무시한 장난감을 보자니, 앞으로 내가 회사든 사업이든 벌여놓아야 하는 일들에서 콘텐츠와 미디어, 도입과 절정의 균형에 대해 배울 점이 참 많다 싶었다. '만들고자 한다면 이렇게 해야지. 끝날때 까지 끝난게 아니지.'


그래, 엄마도 이렇게 한수 배우고 아이도 육해공 풀패키지 장난감 월드를 완성하고... 39800원이면 뭐 나쁘지 않은 금액이다 싶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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