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효진 Apr 13. 2020

게을러질 용기가 필요해

평일오후 아무나 되어보기

월요일 연차다. 연차소진 휴무라 딱히 일이 있어서 쉬는 날이 아니다. 아이는 어린이집 등원해서 육아에서도 자유로운 이 얼마만의 휴식인가. 계획을 미리 짜두거나 급한 일이 생겨서 쉬게 되는 날이 아니고서는 이런 날은 남들 보통의 일상에서 떨어져 나와서 나홀로 여행자가 된 느낌이 든다. 남들바쁜 출근시간을 지나 한가로운 시간에 집을 나서면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없는지 텅빈 거리를 만난다.


어영부영 오전시간이 지나가니 슬슬 긴장감이 생긴다.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나의 자유시간의 데드타임이므로 조바심이 생기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정신없이 지나온 일상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에 대한 계획이나 생각을 미뤄왔던 것들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의 성장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것도 내 몫인데 아이의 사진첩을 갱신한 지가 얼마인가 까마득하다. 남편과 손잡고 오붓하게 데이트를 해본적도 얼마인가싶고 나와 가족의 건강검진을 따져보는 정말 중요한 일도 미뤘다. 아무리 철두철미하게 계획적인 사람이라 할 지라도 길고 짧은 계획 안에서 중간중간 갱신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갱신할 시점에는 구렁이 담넘듯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재부팅을 요하는 컴퓨터처럼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어쩌면 멍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열심히만 살지말고 좀 현명하고 똑똑하게 살고싶은데 재부팅할 시간이 없어서  잘 안된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일상은 스톱된 채로 꾸역꾸역 회사생활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회사에서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인적물적시간관리 보고를 한다. 반복되는 일을 할 때 최소한의 리소스를 들여서 처리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한다. 이때 확보되는 시간은 다른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히는데 쓴다. 적절하게 내가 한 일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티를 내는 부지런함도 필요하다.


아 그런데 몇달을 계속해서 부지런하기만 하면 좀이 쑤셔서 못살겠다. 불합리하거나 효율이 낮은 일을 좀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짬이 필요한데 그 짬을 낼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니 인지부조화로 능률이 나빠진다. 시간이 없어 편지를 길게 쓴다던 어느 시인의 글처럼 비효율적인 일을 무턱대고 하기 싫어 죽겠는 심정으로 '부지런히' 하고만 있는 기분이다. 새방식을 만들고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인지 따져볼 여유없이 무턱대고 원래의 방식을 요구하는 경직된 문화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간 나름의 방식으로 일을 해냈고 성과를 내보았지만 생색내는 것이 조금 부족했는지 그저 일이 일을 벌어들일 뿐이었다. 조금 후회스럽다.


예전 일요일 저녁이 되고 텔레비전에서 개그콘서트가 시작되니 '주말에 아무것도 한게 없네'라는 혼잣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동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때서'라는 묻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해야만한다는 강박이 그 순간부터 조금 깨졌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는 생각도 그 시점부터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 내게는 게을러질 용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아무것도 좀 하지 말고 더 잘할 수 있는 걸 생각해보지 그래' 더 행복하고 더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여유가 생기게 될 그런 게으름이 절실하다. 그리고 그를 위해 사소한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매거진의 이전글 이어폰은 좀그래도 마스크는 괜찮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