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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Jun 08. 2020

그래도 치킨은 맛있네

희소성의 법칙

신도시의 신축 아파트 단지는 그야말로 하루하루 새로운 일상이다. 허허벌판이던 땅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도로가 생기고 공원이 들어서며 서서히 변화를 맞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새로운 이 곳에 살기 시작한 지 곧 1년이 된다. 대부분 아파트들이 그러하듯 주변 인프라와 자연환경 등 앞으로 살기 좋은 주거단지의 면모를 선전하고 바로 코앞 다른 아파트 단지와 차별점을 만들어 절대 집값에서 뒤쳐지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같은 것이 있는 곳이 바로 신도시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사정이 겹치면서 동네장사하기 팍팍하다보니 단지내 상가가 잘 채워지지 않았는데 얼마전에 치킨집이 하나 문을 열었다. 광고를 대대적으로 하거나 메이저급 브랜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프랜차이즈 치킨집이라서 공사를 할 때부터 아파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기대감이 한 껏 올라왔었다. 나는 맛집이라도 줄서서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오픈날은 피해서 먹고 싶었는데 남편은 또 그거 한번 먹어보자고 재촉했다. 미리 주문하면 괜찮겠지 했건만 한시간 후에 오라던 치킨집은 찾으러 가서도 장장 40분가까이 기다려서야 치킨을 받아올 수 있었다. 100분이나 걸려 받아든 치킨이라니... 수원 통닭거리에서도 이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맛만 없어봐라'


쫄쫄 굶어 저녁시간 지나서야 손에 든 치킨은 오픈기념이라고 넣어준 서비스 사이드 메뉴에 오픈 떡이 함께였다. 남편은 치킨 가지러 간 내가 한참이 지나서 돌아오니 나름 미안한 기색은 있었으나 치킨에 정신이 팔려 나의 기분에는 아랑곳 하지 않았고. 오픈과 동시에 시식을 이었고 나름 맛있고 괜찮다는 말을 이어하다가 나중에 다시 시켜먹자는 말로 마무리지었다.


그래 정말 다행히 치킨맛은 괜찮았다. 양도 너무 적당하고 양념도 적당히 칼칼한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약속한 시간에서 40분을 오가지도 못하게 꼼짝없이 기다리게 한 것에 분이 덜 풀렸다. 오픈빨이라는 말도 있고 이미 기대감이 한층 고조된 상황에서 예측 가능한 상황이기도 했다. 다만 아르바이트생이 앵무새처럼 한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한시간에 30-40분씩 기다리고 서있는 손님들을 보면서 주문이 밀려서 오븐에 들어가면 적어도 얼마는 더 걸릴 것 같으니 댁에 가셨다가 나오시면 좋겠다거나 하는 식의 상황에 대한 공유만 있었어도 덜 화가 났을 것 같다. 기다리는 손님들이 민망해서 원. 가게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손님들보기도 뻘쭘하고 참.


시간이 좀 지나니 그래도 그가게 사장은 오픈하고 얼마나 더 정신이 없었을까도 싶다. 나름 오픈했다고 신경써서 주문하지 않은 사이드메뉴까지 만들어 넣느라고 시간이 더 지체가 되었는데 속은 갑갑하고 손님들은 밀려들고 아마 그날 정신이 쏙 빠졌을 것 같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나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너무 오래기다렸다는 말은 있었어도 대놓고 화를 내거나 불평을 한 사람은 없었고 치킨 맛도 괜찮아서 다음에 또 가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우리 상가 들어온 가게이니 우리가 많이 팔아줘서 오래 오래 잘 장사하도록 해주자는 댓글도 달렸다.


슬리퍼 바람으로 걸어 나가서 파라솔 앉아서 먹는 치킨이 얼마나 좋으냐며 멀리 걸어가거나 시켜먹는 것 말고 이런 소소한 호사가 어디냐며 훈훈한 댓글이 올라오니 문득 희소성의 법칙이 떠올랐다. 즐비한 맛집 골목 어귀에 사는 사람들은 그 웅성거림이나 혼잡함이 싫겠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먹거리 골목이 가까운것이 얼마나 권리인지. 하물며 먹세권이라는 말도 있을 지경이니 말이다. 다행히 맛도 괜찮은 집이 생겼으니 괜한 갑질, 진상으로 나가 떨어지지 않게 잘 해주자는 이런 댓글들이 웃기면서도 조금 슬펐다.


어디가서든 사랑받고 잘 지낼 수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떤 특정한 때에 어느 새로운 곳에서 유독 사랑을 받고 케어받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게 특권이 되었든 또 그 관심이 너무 부담이 되었든 모든 이들에게는 설레고 지켜주고 싶은 그래서 서로 더 조심해야 하는 순간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은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시작인 듯하다. 그렇게 서로에게 배려하면서 맞춰 나가고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겠지.


이로서 3가지 치킨집의 목록을 만들었고 돌아가면서 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 바삭한 후라이드맛집, 얇은 튀김옷이 매력인 닭집, 그리고 오븐에 담백하게 구워낸 치킨집.


그래도

당분간 단지내 치킨은 조금 멀리할 것 같다. 소심한 복수로.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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