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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Dec 03. 2020

옹졸한 마음에 물을 줘야지

외나무다리의 멍청한 두 마리 염소

정크푸드라 깎아내릴지는 몰라도 맥도널드는 내 소울푸드다. 아침부터 아이와 씨름을 하다가 겨우 어린이집에 출근시켜 놓고 돌아서면 아이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일종의 해방감이 든다. 정신머리가 하나도 없다가 레드썬 하고 싶은 날에는 맥도널드로 질주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머릿속에는 오늘 해야 할 일을 그려보면서 오늘의 메뉴를 골라보았다.

'그래 오늘은 조금 매콤하게 상하이 치킨 버거로 하자, 아침이니까 음료는 라테로 바꿔야지'

드라이브 스루 주문을 하고 순조롭게 돌아 나오는 길에 어떤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면서 나에게 '미안'손짓하고는 주차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춘 채로 내 라테가 식을까 봐 좀 빨리 비껴줬으면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장은 딱 한자리가 남았고 앞쪽에 평행주차해 둔 탓에 주차를 쉽게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 길을 막아선 그 차는 경차였고 너무도 프로페셔널하게 내게 손짓으로 가로막으며 후진주차를 시작했다.

그런데 차가 좀처럼 주차를 못하고 있었다. 급기야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빵! 빵!'

내 차는 경유차라서 시동을 켜고 있으면 다소 시끄럽고 라디오를 듣고 있었으며, 내 라테에 정신이 팔려서 처음에는 경적을 울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경적을 울릴 이유도 없었다. 혹시 뒤에서 나는 소린가 싶어서 백미러를 보았지만 다행히 내 뒤에 기다리는 차는 없었다.


경적을 울린 차는 주차하다가 멈춰 선 차였다. 자기가 주차하기가 힘드니 나더러 뒤로 물러서라는 뜻이었다.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고 내게 짜증스럽게 이야기했다. '누가 내 길을 막고 있는데.' 순간 짜증도 나고 어이가 없었다. 길을 막아선 건 저쪽이고 나는 나오던 길에 그대로 멈춰 서서 충분히 뒤에 있었고 그 차는 내게 전진할게 아니라 사선으로 후진해서 두어 번 접어야 하는 위치에 서있었는데 말이다. 이건 내 생각이고 그쪽은 내가 공연히 길을 비껴주지 않는 고약한 운전자로 보았을까. 아침부터 이게 무슨 힘 빠지고 열받치는 일이란 말인가. 경적을 울릴게 아니라 정중하게 부탁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뒤로 후진을 해주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앞쪽 평행주차했던 사람이 주문한 햄버거 포장을 들고 나와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는 눈빛으로 우리 두 차를 바라봤다. 순간 얼굴에 열이 올랐다. 모양새가 외나무다리에서 서로 비껴주지 않고 버티고 있는 염소로 보일까 싶어서였다.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운전이 미숙한 저쪽 운전자가 편안하게 주차할 수 있는 아량을 보였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순간 밀려오는 욱하는 심정으로 싸울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이었다. 결국 똑같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결국 그 차는 정말 낑낑대면서 주차를 했고 나는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의 소울 푸드를 들고 나는 우아하게 아침을 맞으며 오늘의 일을 하나씩 해치울 의욕이 한풀 꺾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사람은 나의 길을 막은 차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옹졸한 나를 들켜버린 것이 속상하고 그 상황에서 더 현명하게 했어야 할 행동과 생각에 대해 곱씹었다.


아.

내 메마르고 옹졸한 마음에 물을 줘야지.

좀 식어서 후루룩 넘어가는 라테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스스로 좀 대견스럽 내 마음보야 무럭무럭 자라라 좀.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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