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의 미학
동생네 사는 아파트는 오래되어서 지하주차장이 없다. 입출입구 차단기도 없어서 아무차나 들어갈 수도 있다. 앞서 몇번 방문했을 때는 휴일 낮이기도 했거니와 곳곳에 빈 공간이 있어서 주차하는데 스트레스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들렀을 때에는 주차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 한켠의 담벼락 옆 넉넉한 공간이 있어 바짝 붙여서 주차를 했다. 신나게 수다를 떨고 동생네 집에서 점심저녁 먹고 집으로 가는 중에 차 유리창에 붙은 불법주차 스티꺼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뭐야'
조수석 앞쪽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출발해서 집에 반쯤 갈때까지 눈치채지 못하다가 길 한가운데서 발견한 것도 기가차지만, 그동안 한번도 문제 없다가 오늘따라 왜이런건가 싶어서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집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서 다짜고짜 차앞 유리창 앞쪽으로 달려나갔다. 노란색에 빨간 빗금이 그어놓고 불법주차라고 씌여있었다. 그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방문자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붙이기전에 전화라도 하지. 다짜고짜 저놈의 스티커를 붙인것 보니 성질도 나고 이 꼴로 여기까지 운전해온 것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아이는 곤히 차시트에서 자고 있길래, 얼른 분을 참고 스티커를 떼어 내는데 모서리에서 조심조심 벗겨지던 스티커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는지 주욱 찢어지고 말았다. 내 마음과 함께.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모서리를 살살 긁어서 아까보다 세심하게 강약 힘을 줘가며 스티커를 때보았지만 마찬가지로 반도 못가서 끊어지듯 찢어지고 말았다. 이미 스티커 끈끈이와 딱달라붙어있는 종이쪼가리들이 얼룩덜룩 말이 아닌 상황이 되었고, 불편하게 자고 있는 아이가 짠해서 깔끔하게 떼어 내고 집으로 올라가기에는 시간을 더 지체할 수도 없었다.
내가 스티커를 떼려고 아둥바둥하고 있는 와중에 몇몇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나갔고, 맞은편 아파트 출입구앞에는 차를 기다리는지 어떤 사람이 서서 수상한 행동을 하는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못본채 하면서 다시 차문을 열고 이것저것 물건을 챙기고 자는 아이를 안아 내리면서 '나 이차 주인이요.'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무거운 짐에 아이까지 들쳐업고 들어가는 무거운 마음의 입주민은 출입구 바로 앞에 떡하니 세워둔 모닝을 마주했다.
'아 이 차는 아파트 잘 만나서 이런 노른자 자리에 마구잡이 주차를 하고도 멀쩡하구나'
더더군다나 내가 차를 세운 바로 건너 앞쪽에는 주차 공간이 서너개가 비어있었다. 어디 주차할 데가 없어서 임시로 빈 곳에 억지로 세운 차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사하게 이런 사고방식으로 주차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문제다. 기존부터 주차딱지 이야기는 오고가는 상황이었는데 늦은 시간 퇴근하고 집앞에 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저 멀리 주차하고 걸어 들어가는 것이 귀찮다는 것도 있고, 가구수 대비 1.6대가 넘는 주차장이지만 정말로 주차할 데가 없기도 한 때가 있다는 댓글들도 본 것 같다. 그럼에도 차들이 빈번하게 오가는 길목이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은 주차를 피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주차장은 주차한 차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가는 주행차들이 있으므로 중간중간 사람들이 다니다가 사고가 나기 쉽기 때문에 정해진 주차공간 이외에 주차는 위험하다.
아마 나는 다음에 동생네 아파트에 가서는 주차를 정해진 구역에만 하고 필요하면 경비실에 방문해서 방문허가를 받을 셈이다. 스티커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는채로 짜증스런 기억이 생긴 것이 분하지만 스티커 덕에 결국에는 그렇게 될 것이었다. 모두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규정이 채 마련되지 않아서 그 짜증스러운 스티커를 붙이지 않는 우리 아파트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의 편의를 봐주는 속좋은 아파트가 되었다. 어른이나 상식을 기대하기보다는 합의된 규칙을 통해 서로 쿨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쉽고 빠르다는 것에 떨떠름한 생각이 스친다.
얌체같은 차주들은 주차장 예절을 꼭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끈적한 스티커 자국이 덕지덕지 남은 꼴사나운 차유리창을 마주하기 싫다면 말이다. 흥!
비로소 장효진.